성명 | 원명중(元明仲) |
생몰 | 1862년 ~ ? |
출생지 | 경기도 삭녕군 동면 도연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원명중은 1862년생이며 경기도 삭녕군 동면 도연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경 연기우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였고, 4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음력 4월 29일 경기도 삭녕군 동면 도연리에 거주하는 이병록(李炳祿)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거두었다. 음력 6월 15일에는 경기도 연천군 북면 하수리의 현길상(玄吉相)으로부터 군자금을 거두었다. 8월 12일에는 삭녕군 동면 유음리 정동의 현종규(玄宗奎)에게서 군자금을 거두었으며, 음력 8월 25일에는 삭녕군 인목면 덕산리 최영식(崔永植) 집에서 군자금을 거두었다.음력 9월 20일에는 삭녕군 동면 적동산리 이주식(李周植)에게서 군자금을 거두었고, 9월 27일에는 강원도 철원군 신서면 면장 김원백(金元伯)에게서 군수품으로 의류 17정을 받았다. 10월 29일에는 삭녕군 동면 어적산리 이승억(李承億)에게서 군자금을 지원 받았다.
그러다 체포된 그는 1910년 9월 1일 경성지방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12년 12월 13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원명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