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柳仁雨, ? ~ 1364. 고려 말기의 무신.2. 생애
1356년(공민왕 5) 밀직부사로서 동북면병마사가 되어 쌍성총관부를 격파하고 옛 땅을 수복하였는데, 이때 그 곳의 토호였던 조돈[1]과 이자춘, 이성계 부자가 호응을 했다.이후 1358년 수사공 상서좌복야가 되었고, 이후 판개성부사(1359년)이 되었다. 그러다가 1362년 찬성사로서 하성절사(賀聖節使)로서 원에 보내졌다가 이듬해 원에서 덕흥군을 옹립하려는 최유와 함께 요양행성의 군사 1만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하다가 최영과 이성계의 군대에 가로막혔고, 다음 해 고려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2]
[1] 趙暾, 1308 ~ 1380. 과거 고종 때 지역 수령을 죽이고 원에 항복해 쌍성총관부의 관리가 된 조휘의 손자로 조소생의 숙부가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고려를 배반한 조부나 조카와는 달리 고려에 귀부하여 충숙왕을 섬겼으며, 이때 조카에 의해 감금되었지만 탈출한 이후 이자춘, 이성계 부자와 함께 내응해 수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후에 공부상서, 예의판서, 검교밀직부사 등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조인벽이 태조와 매형-처남 관계가 되는 등 집안은 조선 초기에도 권세를 유지했다.(고려사 열전)[2] 그리고 원으로 도망간 최유는 10만의 군대로 고려를 정복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다른 신하들이 그의 간악함을 폭로했고, 이에 고려로 압송되어 처형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