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 개요
유사(游士)[1]와 협객(俠客)을 합친 유협들의 집단이라는 말이지만 실상은 권력의 공백기에 나타난 사적인 폭력 집단이다. 일종의 자경단과 유사하다.적당히 힘있고 젊은데 선비가 되거나 농사를 짓기도 싫은 젊은이들이 모여, 마침 세상이 어지러우니 일반인들을 힘으로 보호해 주며 적당히 대가를 받고, 사람들간의 은원 문제도 해결해 주고 하며 생활하던 무리들이다. 대표적인 집단의 두목이 유방. 그는 후에 중국까지 통일했고 중국 왕조 역사상 최초의 백성 출신 황제가 되었다.[2]
중국은 일찍부터 관료제가 발달했지만, 현실적인 행정력의 한계로 인해 광대한 영토 전역을 중앙집권적으로 제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연히 변방의 유력자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백성들을 수탈하거나 괴롭히는 폐해가 일찍부터 드러나게 되었고 대중적으로 그에 대항하는 저항자로서 의(義)를 중시하던 협객을 영웅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유협전통은 단순히 범죄에 대한 기준이 현대와 다른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고, 이런 협객들은 중국의 가장 전통적인 대중적 영웅상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협객 문서 참고.
시바 료타로의 설명에 따르면 유협은 '법을 무시하고 /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사람들을 돕는' 사나이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국가 통제가 완전히 무너진 사회나 시대에는 힘 없는 민초가 기댈 곳이 사적 무력 외에는 전무하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이러한 유협 집단은 이후 무협물에 등장하는 문파의 원형이 되었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의병 전 유협 집단의 우두머리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3]
[1] 여기저거 떠돌아 다니며 유세하는 선비집단.[2] 유방 이외의 초대 황제들의 사례를 보면, 대개 이미 명망 높은 귀족이나 전공을 세운 무장이나 군벌, 지역 호족 출신으로서 강력한 기반을 갖추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유방보다 못했던 흙수저 중 흙수저 황제가 바로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 주원장. 말직이나마 벼슬도 있고 최소 굶주리고 살았다는 얘기가 없는 유방과 달리 주원장은 째지게 가난해 부모 묘지도 마련못하고 탁발승으로 빌어먹었다.[3] 사실 유비, 관우, 장비 뿐 아니라 원소, 원술, 조조 등도 한때 이런 유협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런 원소, 원술, 조조 등은 자기 가문의 이득과 보호 등도 담당해야 했으므로 더더욱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