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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23:15:56

윤창호(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윤창호
尹書龍|Yoon Chang-ho
파일:윤창호(독립운동가).jpg
출생 1921년 3월 16일
대한민국 평안남도 진남포 비석리
(現 진남포 비석동)
사망 1967년 5월 26일 (향년 4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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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colcolor=#fff> 부모 부친 - 윤진원
모친 - 이득옥
학력 진남포상공학교 (전학)
평양상업고등학교 (중)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1990)
건국포장(1977)
대통령표창(1963)
군사 경력
복무
한국광복군
1941년 ~ 1945년
주요 보직
한국광복군 징모처 제6분처 소속 화중지구 전방공작원
한국광복군 제3지대 화중지구 특파공작대장
한국광복군 제3지대 남경지구 군사특파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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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여담4.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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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1921년 3월 16일 평안남도 진남포부(鎭南浦府) 비석리(碑石里)에서 부 윤진원 모 이득옥의 2남2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은 윤서용(尹書龍)이다. 1941년 진남포상공학교를 마치고, 의병항거하다 불구가 된 부친의 교화에 만주로 단신망명 독립군에 투신하였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 독립군 활동을 펼치다 1943년 3월 중국북경에서 광복군으로 현지 입대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지시로 화중지구 전방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 징모처(徵募處) 제6분처에 편입되어 제3지대 창설 기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화중지구 서주, 천진지역 전방공작원으로 특파 학도병을 대거 탈출시키는데 도모하였다. 이와 함께 애국 동포를 모집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초모 공작 및 광복군의 공작 거점을 확보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비밀 지하 조직망을 확장하고 군자금을 조달하며 병력 초모를 통해 일본군 첩보를 탐지ㆍ폭파하는 등의 게릴라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같은 공작활동으로 광복군 제3지대 확장개편에 일조하였다.[1]

1944년 김학규가 중국군과 협의하여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단에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약칭 한광반)을 설치하자 50여명의 동지와 함께 입대하여 5개월간의 교육훈련과정을 마치고 1기생으로 졸업, 중국군 준위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9월~10월 한인 청년 이윤하(李允夏)·이정수(李廷秀)·홍순명(洪淳明)·김광언(金光彦) 등과 접선하였고, 이들은 곧 제3지대의 근거지인 푸양으로 가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로 정식 편성되자 화중지역 공작책임자로 임명되어 부하를 인솔하고 쉬저우 · 칭다오[靑島] · 지난[濟南] 등지에 잠입하여 초모공작 · 군자금조달 · 일본군 정보수집공작 · 일본군 군사시설 파괴공작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3월에는 중국중앙군 유격대와 협의하여 귀덕역(歸德驛) 구내에 정차중인 일본군 탄약수송열차와 귀덕역 군수 유류창고를 공습하여 폭파시켰고, 4월에는 미군 · 중국군과 정보수집공작에 참여 하였다.

이같은 활동중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8.15 광복으로 임시정부 환국이후, 남경지구군사특파단 부단장으로 중국에 남겨진동포들의 생명과 신변보호, 광복군의 훈련, 중국과의 협력(일본군 무장해제 등)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6년 6월 남경지구 특파단의 잔류동지와 광복군 공작 활동에 우호조력자였던 동포, 중국인 등과 함께 귀국한 후 1947년 임시정부 사정국 인천지구 총책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3년 전쟁이 휴전되고 강원도 춘천에서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기위해 춘천시의 협조와 친인척의 참여, 춘천역 앞 주둔중이던 미군부대의 원조와 협조를 받아 춘천보육원을 설립 운영하였다.

1967.5월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일만에 서울 삼양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고인의 유해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3. 여담

4. 관련 인물


* 위 내용은 윤창호의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거쳐 2024년 제2차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역사답사팀의 '독립운동가 위키 정보 수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1944년 1월 광복군 제3지대 소속인 윤창호와 백운룡(白雲龍)이 일본군 점령 지역의 일본군 동태 파악 및 군자금 조달 등의 활동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