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2-07 23:05:23

이대행

{{{#white 이대행
李大行
}}}
자온(子溫), 홍도(弘道)
본관 원주 이씨
출생 1539년(중종 34)
전라도 해남현
(현 전라남도 해남군)
사망 1592년(선조 25)
관직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
배우자 영인(令人) 해남 윤씨
슬하 2남

1. 개요2. 일생3. 가족4. 추모5. 참고문헌6. 기타

[clearfix]

1. 개요

이름은 이대행(李大行)이며 자(字)는 홍도(弘道)이다.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 이영화(李英華) 현손(玄孫)이며 조부(祖父)는 정로위(定虜衛)선략장군(宣略將軍) 이정(李楨)이며 부(父)는 장사랑(將仕郎)순릉참봉(順陵參奉) 이경보(李景輔)이다.

2. 일생

1539년(己卯) 中宗(중종 34) 전라도 해남현(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이경보(李景輔)와 어머니 영인(令人) 해남윤씨(海南尹氏) 윤사(尹泗)의 따님사이에서 1남2여 중 아들로 태어났다.

1583년(癸未) 宣祖(선조 16)9월 별시(別試) 무과(武科)에 병과(丙科) 308위로 급제하여 선략장군(宣略將軍:종4품 무관의 품계) 행 훈련원 판관(行訓練院判官:종5품)에 제수되었다.
이대행(李大行)은 예지(叡智)가 총명(聰明)하며 행동(行動)이 과감(果敢)하여 거리낌이 없으며, 효제(孝悌)와 충의(忠義)의 뜻이 깊어 나라를 걱정하는 의분(義憤)에 복받쳐 한탄(恨歎)하는 마음을 늘 가졌으며, 사사로운 일은 돌보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평소 뜻이 잘 맞아 친하게 지내던 4촌 형제들과 함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將軍)의 막하(幕下)에서 군기(軍機)를 모사(謀事) 할 때 큰 지략(智略)을 갖춘 인물임이 드러났다.
그 뒤 당숙부(堂叔父)으로 충청수사(忠淸水使) 이계정(李繼鄭) 장군(將軍)이 무주 조방장(茂朱助防將)에 제수(除授)되어 “무주(茂朱)는 왜적(倭敵)이 호남(湖南)으로 침투(浸透)하는 길목이요 나라의 목덜미와 같은 요충(要衝)이니 굳게 지켜 근왕(勤王)하라”는 임금의 특별(特別)한 당부(當付)를 받고 부임(赴任)하면서 이대행(李大行)과 더불어 적(敵)을 물리칠 수 있는 작전(作戰)을 세우고자 불렀다.
이에 국난(國難)을 당하여 힘든 때 이므로, 그날로 길을 떠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가는 도중에 전라도 만경현(현 전라북도 김제시)에 이르러 갑작스러운 병을 돌아가시니 그때 나이 39세였다.
그의 죽음을 두고 사람들은 “하늘이 이런 기재(奇才)를 내리시고서는 천리마(千里馬)나 용(龍)과 같은 힘과 재주를 펼 기회(機會)는 주지 않았는고?”라고 탄식(歎息)하며 애석(哀惜)해 하였다.

3. 가족

배(配)는 영인(令人) 해남윤씨(海南尹氏) 윤사(尹泗)의 따님으로 슬하(膝下)에 2남을 두셨으니 첫째 아드님은 원종공신(原從功臣) 참봉(參奉) 종덕(宗德)이시고 둘째 아드님은 종의(宗義)이시다.

4. 추모

이대행(李大行)은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에 배향(配享)되어 매년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한다.

5. 참고문헌

한국한 자료센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주이씨대동보(1991)
원주이씨 강릉공파의 인물과 유산(비천당/김성태 저/2021)

6. 기타

이대행(李大行) 홍패(紅牌)
파일:이대행(李大行) 홍패(紅牌).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