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이병국 李炳國 | |
<colbgcolor=#0087be><colcolor=#fff> 출생 | 1882년 9월 15일 |
충청남도 천안시 | |
사망 | 1949년 4월 8일 |
충청남도 천안시 | |
최종 당적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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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2]2. 생애
1882년 9월 15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1919년 사이토 총독 암살 협력 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5년간 복역했다.1945년 해방 후 법조계에서 활동하다가 1949년 제헌 국회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이듬해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다음은 여러분도 아시는 일입니다. 우리 국회의원 가운데에 충남 천안에서 선출되어 온 이병국 의원이 급한 병환으로 4월 8일 상오 9시 40분돼서 졸연(卒然)히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읍니다. 여기에 대해서 국회로서 조의를 표해서 오늘 자기 고향인 천안에서 장의식을 거행하게 됐읍니다. 우리는 국회가 성립된 이래로 우리 국회의원 가운데 불행히도 사망하신 분은 이병국 의원이 제일입니다. 우리 다 같이 잠시간 동안 일어나서 조위를 표하기 위해서 묵념하기를 바랍니다." (일동 묵념) -국회 의장 신익희- |
3. 제헌 국회 활동
- 1948년 6월 26일 국명을 대(大)한민국을 태(太)한민국으로 하자 제한하였고, 헌법에서 「영토」를 「국토」라고 하자 제안하였다.
- 1948년 9월 24일 양곡매입법의 반대하였다.
- 1949년 4월 4일 본회의에 참석한것이 확인되었다.[3]
- 1949년 4월 12일 신익희 의장이 그의 사망소식을 알렸으며 제헌 의원들이 그의 죽음을 기리며 묵념하였다.
- 1949년 4월 14일 김동원 부의장, 이종린 의원, 최운교 의원, 송진백 의원, 김옥주 의원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것을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