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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3년 4월 12일 |
경기도 과천군 상서면 (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1] | |
사망 | 1949년 2월 17일 (향년 75세) |
본관 | 전주 이씨 |
서훈 | 건국포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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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73년 4월 12일 경기도 과천군 상서면(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에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월 상경하였다가 독립만세운동의 상황을 목격하고 돌아와 자신의 동네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하고, 27일 서이면 일동리(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마을 주민들에게 "다른 마을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불러 기세를 올리고 있는데 당신들은 짚신만 삼고 있어 되겠는가?"라고 권유하고, 자신의 뜻에 따르는 주민 5명과 같이 그날 저녁 8시경 일동리 서쪽 언덕 위에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후 체포된 이영래는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으나# 같은 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개월로 감형되었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9월 11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49년 2월 17일 사망하였다.
2007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