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헌 李堯憲 | |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 1766년 |
한성부 훈도방(現 서울특별시 중구) | |
사망 | 1815년 (향년 50세) |
한성부 | |
자 | 계술(季述) |
호 | 소소옹(笑笑翁) |
시호 | 숙렬(肅烈) |
본관 | 전주 이씨 |
가족 관계 | 조부 - 해흥군 이강(海興君 李橿) 부 - 이명걸(李命杰) 모 - 남양 홍씨 부인 - 정부인 반남 박씨(貞夫人 潘南朴氏)[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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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관.2. 생애
성주목사를 지내는 이명걸의 아들로 한성부 훈도방에서 태어났다. 1785년 무과에 급제해 오위도총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선전관 등 여러 보직을 거쳤고 순조가 즉위하고 좌, 우승지를 지냈으며 외직으로 이동해 황해병사, 경기수사, 영변부사에 재직했다. 다시 내직으로 복귀해 포도대장, 어영대장, 병, 형조참판을 지냈다.1811년 평안병사로 재직하던 시절 형이 황주목사로 부임해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자 양서순무사로 임명되어 군정권으로 중앙군을 총괄했으며 박기풍, 유후원을 중용해 평안도로 보내 난을 진압하게 했다.
정주성 공방전 당시 함락이 지지부진해 본인이 참가하길 요청했으나 반려되었고 전사한 가산군수 정시의 관이 한성을 지날때 제문을 작성했다. 난이 진압되고 나서 한성판윤, 금위대장을 역임했고 1814년 형조판서로 재직 중 1815년 사망했다. 경기도 파주 자곡면 어은동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