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用藏
(? ~ 1372)
1. 개요
고려의 인물.2. 행적
이용장은 홍건적의 난으로 고려의 수도 개경이 함락되자 대호군(대장군)으로서 개경을 탈환하는데 공을 세워, 1363년 3월에 경성수복이등공신이 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덕흥군이 요양행성의 지원을 받아 고려 왕위를 요구하며 침입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이용장은 동북면에서 홀면병마사(忽面兵馬使) 전이도(全以道), 이희(李熙), 한방신(韓方信) 등과 함께 혼란을 틈타 변경을 노략질하던 여진족들을 격파했다.이용장은 이후 제주목의 목사 겸 제주만호부의 만호로서 제주도에 부임했다. 그런데 1372년 4월 2일[1]에 목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용장은 비서감(秘書監) 유경원(劉景元), 권만호(權萬戶) 안방언(安邦彦) 등과 함께 살해당했다. 판관(判官) 문서봉(文瑞鳳)도 이 때 이용장과 함께 죽었다고 보고됐지만 실제로는 도망쳐서 죽음을 면했으며, 반적들을 처단한 제주 사람들로부터 권지목사(權知牧使)로 추대돼 이용장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1] 양력으로는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