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2일 ~ ([age(1948-05-12)]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여주(驪州)[1].2. 생애
1948년 5월 12일 경상북도 경주군 외동면(현 경주시 외동읍) 신계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주시 탑정동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경주 영지초등학교, 경주 신라중학교, 경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 경북과학대학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하였다.경주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유성건설 대표이사, 동신건설 문화재 담당이사, 경북사격연맹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무소속 정증, 이재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임기 동안에 경주시의회에서 경북고속철도관철특별위원회 위원장, 보건사회문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무투표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무소속 최진하, 이재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임기 동안에 제4대 경주시의회 전반기 의장을 지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7명의 후보가 난립한 끝에 1위로 당선되었다. 그러던 2008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경상북도 경주시 선거구에 출마한 김일윤 친박연대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는데, 이때 김일윤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이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살포하다 적발되자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를 낙선하게 할 목적으로 해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통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후 2009년 3월 26일 오전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250만원이 선고된 원심이 확정되면서 시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외이사, 한국수력원자력 비상임이사를 지냈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선거구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95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회 의원) | 경북 경주 탑정동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445표 (52.94%) | 당선 (1위) | 초선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회 의원) | 무투표 당선 | 재선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회 의원) | 경북 경주 탑정동·황남동 | 2,692표 (49.82%) | 당선 (1위) | 3선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북 경주시의회 의원) | 경북 경주 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