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존 인물
- 이타가키 다이스케 - 도사 번(現 고치현) 출신 정치인
- 이타가키 신 -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터
- 이타가키 유스케 - 작곡가, 편곡가, 기타리스트
- 이타가키 케이스케 - 만화가
- 이타가키 토모노부 - 게임 프로듀서
- 이타가키 파루 - 만화가. 위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딸이다.
- 이타가키 미즈키 - 배우
- 이타가키 리히토 - 배우
-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郎) - 2차 세계 대전의 일본 장군으로 만주군 참모로 활동하면서 만주사변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후 육군 대신까지 오르게 되었고 패전 직전에는 제 7 방면군 사령관으로 싱가폴에 있던 중 예비역에 편입되었고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체포된다. 체포 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 세워졌는 데 재판 결과 전범으로 인정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 이타가키 다이스케 - 보신전쟁 당시 토사번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부대인 신충대(迅衝隊) 소속 총독 겸 대대 사령으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보신전쟁 중 콘도 이사미가 이끄는 갑양진 부대와 싸워 이긴 적도 있다.[1] 이후 메이지 유신 정부측에 참여하면서 사이고 등과 함께 정부 고문으로 활동하였는 데 사이고와 함께 정한론을 주장하다가 무효화하자 자리를 사퇴 이후 일본 자유민권 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암살범의 공격을 받고 '이타가키는 죽어도 자유는 죽지 않는다'는 명언을 하면서[2] 이후 일본 국회의 기반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참고로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국회의사당(일본)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 이타가키 노부카타 - 일본 전국시대 카이국의 무장. 다케다 노부토라, 다케다 하루노부 2대를 섬긴 중신. 노부토라의 폭정으로 그 아들인 하루노부(훗날의 신겐)를 옹립하여 노부토라를 스루가로 쫒아냈다.[3] 이후 다케다 가문의 중신으로 하루노부를 보좌하다 1548년 무라카미 요시키요 군과 벌어진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전사한다.
2. 가상 인물
[1] 해당 사건을 통해서 신센구미가 사실상 괴멸.[2] 하지만 그는 이때 죽지 않고, 이후로도 내무대신 등을 역임하였고 80이 넘어서까지 장수했다.[3] 당시 스루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통치 하에 있었는데, 요시모토는 노부토라의 사위였다. 즉 하루노부의 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