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이토 히로부미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2. 작중 행적
조슈 3걸의 일원. 1882년 시점에서는 헌법 공부를 위해 유럽에 유학 간 상태였다. 인성 문제 때문에 이노우에와 야마가타는 이토를 싫어하며 여색을 밝히는 것도 원 역사랑 똑같다.1883년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야마가타로부터 강백산이 주도하는 조선의 군사개혁에 대해서 듣는데 덕국(프로이센)에서조차 듣도 보도 못한 병영국가라고 경악한다. 야마가타가 영국과 프랑스가 금광 때문에 우리를 방해한다 쳐도 몇 년 갈 것이며, 일본도 유신 10년차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10년 동안 뭐 얼마나 달라지겠냐, 한번 잿더미가 되면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리는 게 가능할 것 같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야마가타에게 어리석다고 비판한다. '이 개혁안은 몇 번이나 잿더미가 되는 걸 상정하고 쌓아올린 것'이라며 강백산의 개혁안의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하는데, 조선군의 해당 개혁안이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비전을 상정한 총력전 체제라는 것을 간파하면서, 아마 조선의 개혁안이 동시대 타국과 달리 느긋하고 백성들에게 이해와 타협을 일일이 요구하는 것도 그를 위해서라고 평했다.
이대로 야마가타의 계획대로 무작정 군대를 몰고 쳐들어갔다가는 오히려 고슴도치에게 가시를 찔려서 위험해질 거라 판단해 한동안 유화책으로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며 문관인 자신도 이걸 간파하는데 정작 무관인 야먀가타가 이를 간파하지 못해 안타까워한다.[1] 그리고 이노우에를 찾아가서 자신이 직접 조선에 가겠다고 결심하는데, 양복을 입은 모던보이들과 반쯤 헐벗은 시골 사람들이 '왜 우리는 조선처럼 안 해주냐, 유신이 화족만을 위한 나라고 천황의 나라도, 인민의 나라도 아니라면 우리는 왜 이 체제를 믿고 따라야 하냐'고 항의하는 걸 보고도 일단 무시한다.
이후 주조선 일본공사로서 조선으로 파견되어 같은 배를 타고 조선에 오게 된 주조선 영국 공사 해리 파크스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조선에서 곧 총선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일반 국민들이 뭐 얼마나 관심 가지겠냐고 심드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파크스는 일본에서의 경험으로 조선의 변화에 서양인 흑막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묄렌도르프의 말로 조선의 선거가 영국처럼 해학적이라는 말을 듣고 이미 흥미가 갈 대로 가버려서 실패. 조선이 파크스에게 신규 총기 도입을 원한다고 하자 다른 국가의 군납 계약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일본의 협력 약속까지 덤으로 하여 채권을 내주기로 했고, 이에 이토가 일본의 소총과 호환이 되는 탄약을 쓰라는 조건을 내세운다. 강백산은 이 조건을 핑계삼아서 한반도의 탄약 규격을 미터법으로 맞추며 '고마워, 박문아' 드립을 친다.[2]
이후 조병창 사보타주는 조선에 파견된 고문단원들이 심정적으로 조선의 편을 든 탓에 발생한 나비효과로 불가능해졌고, 이토 본인도 조선 육조거리에 가스등이 밤 늦게까지 켜지는 것을 눈부시다며 내심 조선을 동경하는 분위기로 바뀌는 중으로, 메이지 유신의 초창기부터 활동한 1세대 유신 노괴 입장에서, 화족들의 놀이터로 변한 일본과 달리 조선이 열정적으로 민선 후 제헌을 논의하고 연구하는 것을 보면서 초창기 유신의 열정을 떠올린 모양.
1885년 말 조선이 개성에서 증권거래소를 연다는 소식과 일련의 상황을 전해 듣고는 우리는 철도주에만 집중하고 국채는 포기하자며, 곧바로 버블이 터져서 조선이 망할 거라고 비웃는데, 자신들은 여기까지 온다고 내전에 테러에 온갖 난리를 쳤는데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조선만 별다른 고생 없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아서 그동안 내가 바쳐온 청춘과 고생은 뭐냐고 이를 갈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조선 채권을 매입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직후 파크스가 일본 정계의 흑막으로서 그걸 무조건 방어하라고 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3]
여기에 프랑스가 조선장에 뛰어든 것에 빡친 서태후와 그런 서태후가 물귀신으로 끌고 온 이홍장까지 조선장에 뛰어들면서 밑도 끝도 없이 조선에 퍼부어야 하는데 이쪽에서 먼저 뺄 수도 없자 어쩔 수 없이 파크스에게 중재를 요청한다. 초대 조선컵 개막식에서 파크스는 이토에게 이후 80만 엔까지만 투자하라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채워 넣어주겠다고 해서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동시에 파크스로부터 일본은 영국과 프랑스처럼 조선과 건전한 경쟁이나 하고 조선을 도시락으로 잡아먹을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는 경고를 듣는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겠냐는 파크스의 말을 듣고 일본과 조선과의 관계를 영국과 프랑스 간 관계로 비유하며 항변하다 무의식적으로 조선을 일본과 대등한 국가로 여긴다는 것을 눈치채고 당황한다. 파크스도 당연히 눈치채고 미소를 짓는 건 덤. 그리고 조선 경마장에 뛰고 있는 경마들이 일본이 그토록 애타게 요청했으나 영국이 주거나 팔 생각도 안 하던 영국산 명마를 파크스가 조선에게 그냥 선물로 준 것을 보고 놀란다. 해당 경마대회가 음력설에 맞춰 진행된 것을 보고 과거 일본에게는 음력을 버리고 그레고리력을 강요했던 것을 떠올리고, 일본한테는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양반이 조선에게는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냐고 질투심을 느낀다.
심지어 그나마 우량주로 보고 철도주에 투자했던 것조차 미국의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가 끼어들면서 헛수고가 되고 마는데, 조선이 우리를 배신했다며 길길이 날뛰는 미우라를 겨우 달래고 본인이 직접 김홍집과 담판에 나선다.[4] 밴더빌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김홍집에게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너희도 조선을 산업화를 위한 쌀 바구니로 쓰려던거 아니냐'는 김홍집의 팩트폭력에 침묵한다. 직후 쌀 무역과 직결된 남부 노선은 내줄 테니 북부 노선은 미국에게 양보하고 둘이 합자회사를 세우라는 김홍집의 제안은 거절하나 조선이 대륙과 같은 철도 규격을 쓰고 있다, 즉, 조선 말고 청나라를 파먹으라는 김홍집의 미끼에 순간 흠칫한다.[5]
기회가 오는 대로 청나라와 일전을 치를 것이라 암시하는 김홍집의 발언이 현재 조선이 진행 중이며 일본도 군사고문단을 통해 끼어든 조선군의 군제개혁과 맞물려 파크스가 그동안 조선을 편애한 이유가 청나라와의 전쟁에 조선을 앞세우기 위함이라고 결론,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조선을 질투한 게 우스꽝스러웠다고 허탈해한다.[6] 이후 본격적으로 김홍집과 협상에 들어가는데, 합자회사는 조선 내에서만 운영할 것과 만주, 하북, 복건의 철도 노선, 그리고 진작에 식민지로 점쩍어 놓은 대만을 요구하며 그 대신 일본에 쌀을 싸게 파는 조건으로 각종 자재를 지원해 조선의 식량 증산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은 김홍집이 거절하긴 했지만 얼마 후 '신촌협회'라는 이름도 못 들어본 협회에서 일본에서 수출한 자재들을 전부 사들이고 차관도 이쪽에서 전부 떠안는 대신 '신촌협회'가 추진 중인 '신촌운동'에 거래처가 얼마나 이바지했는가를 평가하여 쌀값을 차등 인하해주겠다고 역제안이 들어온다. 지역 의회와 향촌 사회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한 농업 현대화 계획이라는 말에 '농노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냐'고 비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다른 관료들도 이게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푸념하고 그냥 넘겨버린다.
야마가타가 민권론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려는 헌병과 이를 제지하던 구 막부군 출신 경찰의 충돌을 명분으로 공안정국을 일으키자 분노하여 야마가타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려고 하던 그때[7] 강백산의 부름으로 강백산을 찾는다.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야마가타를 어떻게 끌어내릴 거냐는 강백산의 질문에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으나 '지금 청나라와의 전쟁이 걸린 중한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면 조선도 일본을 배제한 채로 철도 공사를 이어나갈 수 밖에 없다'고 통보하자 솔직히 야마가타를 끌어내리는 게 어렵다고 고백한다. 이에 강백산으로부터 야마가타를 끌어내릴 계책이 있으니 지한파의 대표로서 시위를 주도한 대동구락부를 이끌고 조선의 군민공치를 일본에 소개해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야마가타가 손 대지 못 하게 귀국길에 주일본 전권공사도 딸려보내고 경호 인력도 제공해주겠다는 강백산의 추가 제안에 격한 모욕감과 굴욕감을 느끼고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무력은 야마가타가 갖고 있는데 빈손으로 귀국하면 어떻게 야마가타를 몰아낼 거냐는 강백산의 외통수에 민권론자들과 구 막부군을 자기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면 된다고 판단, 총리가 되기로 결심하여 조선의 철도산업을 위해 일부 지분을 양보해 조선철도공사를 설립하고 대동학 연구와 제도와 법제를 논의하기 위해 양국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는 합의로 강백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초대 주일본 조선공사로 부임하게 된 유길준과 경호 인력으로 데려온 구 막부군 출신 군사고문단원들과 함께 영국 동양함대 소속 배를 타고 일본으로 귀국, 고베에 내려 기차를 타고 도쿄로 온다. 야마가타는 이토를 곧장 도쿄로 데려와 이토가 환영인파와 만날 시간을 주지 않으려 했으나 참 우연스럽게도 때마침 고철을 노린 철도 도적단이 철로를 망가트려 기차 운행을 지연시키고, 경찰들은 그 철도 도적단 수사에 미온적이고, 그렇게 기차를 타고 도쿄로 오는 동안 역마다 정차하면서 조선에서 실시 중인 여러 개혁안을 일본에 도입하겠다는 약속으로 환영인파를 몰고 다닌다.[8]
결국 도쿄에 도착해 야마가타를 실각시킨 후 헌병의 역할을 대거 축소해 야마가타과 조슈벌의 손발을 잘라버리고 헌병과 경쟁관계였던 고등경찰도 칼질하는 척 하며 공안조사청이란 간판으로 갈아끼워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은 후 민의를 등에 업고 군민공치를 실현하겠다는 요청을 메이지 덴노로부터 받아내 총리대신으로 취임, 마침내 일본의 최고권력자로 등극한다.
당초 청나라와의 전쟁시 조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조선과 맺은 밀약과 달리 조청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청나라의 공격으로 시작되자, 일본 본국이 입헌혁명의 여파로 아직 혼란스럽고 조선이 먼저 청나라에 선전포고했다는걸 핑계로 조선에 대한 지원을 차일피일 미룬다. 청나라를 혼자 상대하게 된 조선이 지원을 애걸하며 전후 전리품의 권리를 더 많이 차지하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조선 자체의 여력도 줄이려던 계획이었으나 조선이 자체적으로 청군을 밀어내자 동맹의 신의도 잃고 지한파라는 명망도 잃은 꼴이 되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자 뒤늦게 참전하고 조기총선을 약속한다. 이토와 대연정으로 손을 잡은 민권론자들까지 왜 진작에 청나라가 종이호랑이인걸 알아차리지 못 하고 조선 공략에만 매진하고 있었느냐고 이토를 성토하면서 실각 위기에 몰렸으나 '자신은 객관적인 국력을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뿐 조선이 예상 외로 잘 싸운거다'라고 변명하고는 역으로 청나라와의 전쟁은 중국 대륙에 군민공치를 전파하기 위한 성전이며 일본군이 출정한 이유는 군벌정권을 타도하고 군민공치를 퍼트리기 위함이라고 선동하면서 재신임에 성공한다.
직후 자기 혼자 조선군이 호응할 거라 멋대로 착각하고 청군에게 덤벼들었다가 패해놓고는 조선이 배신한 바람에 졌다고 날조한 야마가타의 패전 보고를 받는데, 이걸 그대로 언론에 보도해봤자 국내 여론은 전쟁을 그만두는게 아니라 저번의 패배는 야마가타의 졸렬한 지휘 때문이라며 역으로 주전론에 힘을 실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누적되는 피해와 민심 악화를 직접 감당해야건 이토 본인인지라 아예 전후 사정을 바꿔 이노우에와 짜고 야마가타가 지난 날의 행적에 대한 속죄를 위해 수구반동 군벌수괴 이홍장을 붙잡아 조선인들 앞에 무릎꿇리기 위해 출정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했다고 대대적으로 날조한다. 여담으로 이 때 자기만 당할 수 없다는 듯 동료들을 조선타락시킨다는 묘사가 일품.
오쓰 사건에서는 한국이 청해함을 파견한 것을 오쓰 사건을 예지해서 보냈을 리는 없으니 사전에 청해함이 러시아 황태자의 방일을 방해할 건수로서 파견했지만 사건을 듣고 태세전환을 했을 것이라는 본인의 입장에서는 논리적이지만 틀린 결론을 내리고 이를 갈며 동양연합함대의 사령부 건설로 인해 일본 동해함대가 잡아먹히고 쓰시마, 사도, 오키노시마까지 한국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며 러시아의 압박을 위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이를 갈려는데 민태호는 이번에 호위를 위해 몸을 던진 오쿠노미야 켄시가 사범직을 제수받았었다며 그는 조선인이니 조선인이 일본인의 칼을 맞은 바람에 조선에 도움을 요청했다라는 명분을 던져주자 이게 한국에 더욱 목걸이가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오쓰 사건의 모든 대비를 마치고 조선에 도움도 요청해둔 총리라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러시아와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한국은 전함과 순양함까지 진수했다는 이야기를 유길준에게 들으며 속이 쓰려하지만 영국의 동양 챔피언으로 선정되어 온갖 지원을 받아가며 함선을 구매하거나 진수할 수 있는 한국과 다르게 쌩돈을 들여서 새롭게 건조해야하는 상황이라 건함 경쟁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9] 그리고 동양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도고 헤이하치로를 임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색한다.[10] 하지만 러시아가 만주를 치는 것이 손해이니 일본을 공격한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전함을 찍어내 동해를 최전선으로 만들게 되면서 기습해야하나라며 고민하게 된다.
다행히 심양전투와 울도해전 양측에서 해동군이 대승을 거두면서 건함 경쟁으로 파산하는 건 면했지만, 북만주와 몽골을 넘어 시베리아, 중앙아시아까지 해방시키자는 의회의 여론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육군 주력인 한국과 만청이 종전협상에 들어가자 일본이라도 시베리아로 진격하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국에서는 일본 여론은 일본이 알아서 하라고 외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토 히로부미가 겉으로만 확전을 요구하면서 소리치고, 뒤로는 전선이 종결되면 그제서야 어쩔 수 없었다고 욕받이가 되어 무마시키기로 한다. 그 후에는 어차피 영국이 한국, 만청, 일본을 다시 갈라칠 테니 한국을 압도하고 해동의 장자 포지션을 노리기로 한다.
그러나 정작 영국이 보어전쟁으로 대외적으로 망신을 당하면서 한국을 조련할 입장이 아니게 되었고, 일본도 한국을 넘보지 못하고 계속 아시아주의가 팽창하는 걸 두고볼 수밖에 없었다. 대본영에서 남벌가라는 군가까지 만들고 작계까지 짜는 게 유행하는 상황에 답이 없었는데, 당연히 이토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 나눠먹은 남아시아에 들이박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러던 중 주일공사 윤치호가 찾아와 서토국주(원세개)가 사실상 남아시아 출병을 확정지었다는 것과, 해동 창설 당시 한국, 만청, 일본이 맺은 상호방위 조약을 보고는 홀린 듯이 해볼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해 결국 출병을 결정한다.
그러나 군정청 사령관으로 보낸 야마가타가 도고 해군 사령관의 경고조차 무시하고는 남양 전역을 대동아 해방전쟁으로 몰아넣기 위해 암약했고, 뒤늦게 이를 눈치채고 한국에 협조를 요청하여 사태를 진압한 후 야마가타를 체포하여 송환한다.
송환된 야마가타를 청문회에 불러내 끝장내려 했으나, 그 전에 그가 자결하면서 흐지부지 된다. 야마가타가 죽고난 후 어쨌든 한국 덕에 일본이 남양의 해방자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육군은 필요없고 해군을 최대한 확장해 서구 열강과 경쟁해야 한다면서 끝까지 한국 뒤통수 치는데만 집중한 그를 비웃는다. 물론 자신 역시 야마가타처럼 광대 노릇을 했지마는 최소한 죽을 때까지 권력자로서 편히 죽을 거라고 하면서 길을 나선다.
3. 기타
작중 언급에 따르면 조슈 3걸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자랑하며 관종 기질 있는 샌님으로, 천황이 총 맞아 죽으면 대체재를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야마가타보다는 현실 파악을 하는 편이지만 그런 이토도 결국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된다.한때 정열적인 혁명가였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고압적인 독재자로 타락한 인간이라 서술된다. 이토가 조선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있다.
해리 파크스를 상대로는 거의 천적에 가까울 정도로 맥을 못 춘다. 워낙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큰손이고 파크스도 이토의 속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 읽어내는데, 파크스의 입장에서 이토는 아직 어린애라고. 파크스를 노괴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자신들을 모질게 갈군다고 질색하면서도 파크스가 자신들보다 조선에 더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자 서운함과 질투를 느끼는 등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파크스도 조선을 더 귀여워하는 것과 별개로 일본은 오랫동안 자신이 가꿔온 나라다 보니 애착 자체는 있어서 가능하면 둘이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지만 영국도 이웃나라와 딱히 친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잡아먹으려 들지 말고 영국이 주변국에 장난치는 수준만 하라고 일본의 입장에서도 유익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토가 조선의 상황을 알 만큼 알면서도 조선을 몰락시키려 드는 것도 현실 파악을 못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은 내전이고 테러고 온갖 고생을 했는데도 지지부지한데 혼자 기존 체제의 정상화만으로 큰 부작용 없이(?) 의회와 총선을 도입하면서도 느긋하게 농업-경공업-중공업 순서의 산업혁명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한 조선을 보고 자신이 그동안 해온 온갖 고생이 죄다 부정당하는 듯한 좌절감과[11] 영국에 의한 산업화를 먼저 겪었던 입장에서 부모에게 엄격하게 교육받았던 자녀가 동생이 생긴 뒤에 부모가 동생을 더 오냐오냐하는 모습을 보고 질투하는 쪽의 감정에 더 가깝다. 이토가 조선을 잡아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고 파크스가 보인 반응은 경멸이 아닌 딱함이었다고 묘사되는 걸 보아 파크스도 그런 이토의 심정을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점차 자의로든 타의로든 조선(한국)에 목줄이 잡히고 있는데 야마가타의 폭주를 막기 위해 조선의 힘을 빌려 입헌 혁명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저 조선이 좋았을 뿐인 일본인으로 몰리는데 이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주변의 다른 녀석들도 조선 타락시켜주겠다는 언급에 오쓰 사건에는 아예 조선의 왕에게 목줄이 잡혀버리는 일임에도 조선의 요청대로 하는 등 점차 조선타락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역사에서 그랬듯이 여기서도 호색한인 모양으로 요시히토가 러시아에서 하렘 멤버들을 죄다 데리고 와서 일본 황실이 뒤집어질 때 사내답다며 칭송했다고 한다.
[1] 산업혁명은 그 특성상 약자와 가난뱅이의 피고름 위에서 성립되는 고약한 괴물인데, 피고름을 줄여가면서 농업, 경공업, 중공업 순으로 진행한다면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중공업화부터 하고 있는 일본보다 전반적인 산업화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 조선과 친해지면 속도를 내느라 중간중간 생략해버린 부족한 점들을 채울 수 있고, 일본의 체급이 조선보다 큰 만큼 경제적으로 묶이게 되면 일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조선의 총력전 체제가 완성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에 지금처럼 야마가타를 비롯한 군부가 조선을 계속 도발하면 역효과가 날 거라고 우려한다.[2] 이때 일본의 소총은 무라타 소총으로, 프랑스제 소총의 조악한 복제품이기 때문에, 프랑스 소총의 규격에 맞춘 미터법 규격이다. 미국에서 금맥을 이용해 쇼핑해온 윈체스터 소총은 야드파운드법 규격이라 호환이 안 되는데, 강백산은 이 윈체스터 소총을 중앙과 지방의 훈련용으로 돌려서, 총기의 유출, 복제를 유도하려고 한다. 중앙 조병창은 일본의 간섭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테니 결과적으로 지방의 불법 복제된 소총이 서브 플랜으로 작용하는 셈. 다만 그래도 탄약을 통제하는 중앙 정부. 즉 조선 정부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모든 총을 제어할 수 있으니 일본이 조병창에 장난을 치면 이렇게 복제된 사제 총기로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장난치지 않으면 조병창에서 생산되는 총기로 전군을 무장시킬 수 있으니까 강백산으로서는 어떻게 굴러도 이득밖에 남지 않는다.[3] 최악의 경우에는 폐번치현 당시 일본 정부가 떠맡은 각 번의 빚 240만 엔에 맞먹는 200만 엔까지 지출해야 할 상황이라, 10만 엔밖에 준비를 못한 이토의 입장에서 나라 망하라는 소리냐고 정신이 아득해질 만했다. 제대로 말을 듣기 전부터 '파크스'라는 이름만 듣고 온몸을 부르르 떠는 장면이 압권.[4] 만약 이때 조선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안 내놓으면 야마가타의 뜻대로 조선에 쳐들어가게 방조할 생각이었는데, 여차하면 무력으로 빼앗는 것이 전통적인 야마토식 해결법이라고.[5]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장으로서 조선과 중국의 가치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조선을 무력으로 장악하는 게 힘들 거라 생각하는 이토의 입장에서 무리한 조선정벌과 일미합작 철도를 통한 중국 경제 침투 중 어느 쪽이 이득으로 보일지는 명확하다.[6] 원 역사에서 조선을 배후기지로 쓰고 일본이 전쟁에 나선 건 일제가 주축이 되기 위해서였지 객관적으로 육로로 이어진 조선과 섬나라인 일본 중 어느 쪽이 배후기지가 되고 어느 쪽이 군사작전을 하는 게 효율적인지는 뻔하다.[7] 조슈 3걸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조슈 3걸뿐이고 본인의 사직으로 야마가타를 몰아내려던 이노우에는 구 막부군의 흑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직으로 야마가타의 강경 진압을 찬성하는 꼴이 되어버리면서 야마가타를 막을 사람이 일본을 떠나있었던 덕분에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난 이토밖에 없었기 때문.[8] 정작 본인은 조선과 손을 잡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졸지에 일본 최고의 친한파 인사가 되어버렸다. 이를 두고 독자들은 예전에 작가가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왕 그리고 황제의 이토 최면빔에 대한 복수라는 드립을 쳤다.[9] 주 전장은 만주 북부이니 일본에게 있어서 정말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육군 일부를 차출해 보내는 정도의 생색과 육군의 활동 장소를 보장해주는 정도면 충분한데 해군은 그렇지 않기 때문.[10] 한국인 사령관이라면 한국이 시키는대로 해야하지만 일본인 사령관이라면 일본 함선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항을 묶어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11] 일본은 영국식 입헌제도로 유신하기 위해 실권이 없어진지 한참된 천황을 끌어왔을 뿐 막부를 비롯한 기존 정치체계를 사실상 일소시키고도 화족과 사무라이 등의 구체제의 기득권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