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 인화 고령인수부명 항아리(粉靑沙器 印花 高靈仁壽府銘 壺). 15세기 중엽. 높이 18.5cm 일본 세카이도(靜嘉堂)문고 미술관
파일:분청사기 진해인수부명 인화문 접시.png
분청사기 진해인수부명 인화문 접시(粉靑沙器 鎭海仁壽部銘 印花文 楪匙), 15세기 중엽. 지름 14.6cm /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인화문 '진해인수부'명 접시(粉靑沙器 印花文 鎭海仁壽府銘 碟匙), 15세기 중엽.
'삼가인수부(三加仁壽府)'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마상배(粉靑沙器印花菊文′三加仁壽府′銘馬上杯), 15세기 중엽.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분청 인화 의령 인수부명 대접(粉靑印花宜寧仁壽府銘大楪)
「울산인수부」가 새겨진 분청사기 줄 무늬 대접(粉靑沙器印花繩簾文′蔚山仁壽府′銘鉢), 15세기, 높이 7.8cm, 입지름 18.7cm, 바닥지름 5.5cm, 국립중앙박물관
「군위인수부」명 분청사기합. 국립청주박물관
「언양인수부」명 분청사기인화문대접. 국립청주박물관
1. 개요
조선 정종 혹은 세조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분청사기들. 당시 관청이었던 인수부(仁壽府)의 이름이 새겨진 자기들로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등 전국에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2. 내용
인수부(仁壽府)는 1400년(정종 2)에 처음 만들어진 관청으로 약 10개월간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다 해체되었다. 이후 조선 세조 시기에 들어와 1455년 창설된 덕녕부(德寧府)가 1457년 인수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1464년 이전에 다시 혁파되었다. 따라서 인수부의 존속 기간은 정종 때 10개월과 세조 때 8년간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극한으로 발전된 분청사기 생산 기술에 따라 매우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었던 세조 때에 대량생산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인수부명이 새겨진 분청사기는 이 기간에 생산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분청사기의 편년 연구에 유효한 자료가 된다.조선 정종 때 10개월, 세조 때 8년 사이에 만들어진 한국의 분청사기들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지금도 남아있는 유물이 매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