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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5:06:08

인종익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원우(元友)
본관 교동 인씨[1]
출생 1871년 2월 28일
한성부 북부 안국방 안국동계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125번지)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종교 천도교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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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3.1 운동 당시 전라북도 전주군충청북도 청주군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71년 2월 28일 한성부 북부 안국방 안국동계(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125번지)에서 아버지 인영환(印永煥, 1827. 10. 13 ~ 1877. 11. 5)과 어머니 해주 최씨(1827. 5. 29 ~ 1890. 5. 20)[2]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경성부 수송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60번지로 이주했다.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해 천도교 종단에서 경영하던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이때 천도교 종단 기관지인 《천도교월보(天道敎月報)》의 월보과장이었던 이종일은 보성사의 활판계장으로도 재직 중이었다. 1919년 2월 28일 이종일로부터 3.1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목적으로 앞서 인쇄한 기미독립선언서 2000여 매를 전라북도 전주군의 천도교구실과 충청북도 청주군에 전달, 배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곧바로 경기도 경성부를 떠나 3월 1일 전라북도 전주군에 도착했고, 곧 전주면 읍내 천도교구실에서 김진옥(金振玉)·배상근(裵祥根)을 만나 가지고 있던 기미독립선언서 중 1,700여 매를 전달하였고 이를 사람의 통행이 많은 곳에 배포하도록 당부하였다. 김진옥은 이후 전주군 천도교구장 한영태(韓永泰)를 비롯해 민영진(閔泳軫)·조성덕(趙聖德)·김성문(金成文)·김영호(金永浩) 등에게 부탁하여 전주면 읍내에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하도록 하였다. 이어 3월 2일 충청북도 청주군에 도착한 뒤에는 직접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하려고 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청주경찰서에 구금되고 말았다.

그 뒤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고,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미결 구류일수 중 60일이 본형에 산입되었을 뿐 공소가 기각되었고, 이에 상고했으나 1920년 4월 8일 같은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의 행적 및 사망년월일, 사망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미비해 알 수 없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직무공파(直武公派) 56세 종(宗) 항렬.[2] 최봉조(崔鳳朝)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