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회 林檜 | |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 1562년 |
사망 | 1624년 (향년 68세) |
경기도 광주목 경안역 (現 경기도 광주시 역동 68번지) | |
자 | 공직(公直) |
호 | 관해(觀海) |
본관 | 평택 임씨 |
가족 관계 | 증조부 - 임만근(林萬根) 조부 - 임준(林畯) 부 - 임정수(林貞秀) 모 - 이진남(李震男)의 딸 부인 - 정철의 딸 아들 - 임득붕(林得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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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문관.2. 생애
임정수의 아들로 정철 문하의 인물이였다. 1582년 성균관에 입학했지만 양친이 세상을 떠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있던 시점에 양모가 사망하며 상을 치렀다. 1611년 50세의 나이로 별시문과의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이 되었으나 이이첨, 정인홍에게 모함당해 사직되었다. 1613년 다시 관직으로 돌아왔으나 다시 정인홍의 모함으로 정기룡, 임서와 함께 양산으로 유배되었다.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해 예조정랑으로 조정에 복귀했으며 군기시첨정을 거쳐 신흠의 추천으로 광주 목사로 부임해 남한산성의 축성을 감독했다.
1624년 이괄의 난 당시 이괄군이 정충신, 남이흥이 이끄는 관군에게 무악재에서 패배하고 한양의 백성들이 등을 돌리자 남쪽으로 향했다. 광주목을 통과하자 군사들을 이끌고 이괄군을 막아섰다. 하지만 정예군인 이괄군을 막기엔 부족했고 패배해 전사했다. 사후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나주의 정렬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