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colcolor=#008558><colbgcolor=#fff72a> 이름 | 자이미 지아우메이다 Jamie de Almeida |
생년월일 | 1920년 8월 28일 |
사망년월일 | 1973년 5월 17일 (향년 52세) |
국적 | 브라질 |
출신지 | 브라질 제1공화국 상피델리스 |
포지션 | 레프트 윙 하프 |
소속팀 | 세체 지세템브루 (1939)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40) CR 플라멩구 (1941-1950) |
국가대표 | 15경기 1골 (1942-1946) |
감독 | CR 플라멩구 (1946) CR 플라멩구 (1947) CR 플라멩구 (1950) CR 플라멩구 (1950-1951) CR 플라멩구 (1953) CR 플라멩구 (1958) CR 플라멩구 (1959)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61-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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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지아우메이다가 처음 축구계에 데뷔할 때 포지션은 센터 하프백이었다. 그러다 그는 CR 플라멩구 이적 후 레프트 윙 하프로 포지션을 바꿨고 더 발전된 기량을 선보였다.그는 1940년대 플라멩구의 주장으로 팀에 헌신하면서 40년대 초반 플라멩구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의 3연패를 이끌었다.
선수 커리어 후반기에는 플라멩구의 선수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2.1.2. 국가대표
지아우메이다는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1942년, 1945년, 1946년까지 총 3번 참가했다. 하지만 브라질은 이 기간에 대회 준우승 2번에 그쳤다.2.2. 이후
선수 은퇴 이후 지아우메이다는 친정팀 CR 플라멩구와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의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에서 감독 커리어를 보냈다.알리안사 리마에서 지아우메이다는 성공적인 감독 커리어를 쌓았고 페루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테오필로 쿠비야스를 프로 무대에 데뷔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아우메이다는 1973년 5월 17일, 리마에서 뇌혈전증으로 사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지아우메이다는 선수 시절에 경고나 퇴장을 한 번도 받지 않은 깔끔한 플레이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그에 걸맞게 절제되고 모범적인 플레이를 펼친 선수였다. 이로 인해 지아우메이다는 10년 이상 경고나 퇴장을 받지 않은 선수에게 브라질 국가 스포츠위원회가 수여하는 프레미우 벨포르트 두아르테(Prêmio Belfort Duarte)를 수상하기도 했다.4. 뒷이야기
- 자이미의 여동생 레일라 곤잘레즈(Leila Gonzalez)는 브라질에서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인류학자,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자이미 지아우메이다 필류(Jayme de Almeida Filho)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CR 플라멩구에서 뛰었고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3회: 1942, 1943, 1944(CR 플라멩구)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준우승 1회: 1951(CR 플라멩구)
5.1.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준우승 2회: 1945, 1946
5.2. 감독
-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1962, 1963, 1965(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2회: 1961, 1964(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