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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9:50:37

잔 가스토네 데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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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메디치 왕조
코시모 1세 프란체스코 1세 페르디난도 1세
코시모 2세 페르디난도 2세 코시모 3세
<rowcolor=#fff> 메디치 왕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잔 가스토네 프란체스코 2세 레오폴도 1세
<rowcolor=#fff>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부르봉파르마 왕조(에트루리아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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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페르디난도 3세 레오폴도 2세 페르디난도 4세 }}}}}}}}}
<colbgcolor=#d91801><colcolor=#FFF>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잔 가스토네
Gian Gastone de' Medici, Granduca di Toscana
파일:Richter,_Franz_Ferdinand_-_Official_portrait_of_Gian_Gastone_de'_Medici.jpg
출생 1671년 5월 24일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피티 궁전
사망 1737년 7월 9일 (향년 66세)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피티 궁전
재위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1723년 10월 31일 ~ 1737년 7월 9일
배우자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안나 마리아 프란치스카 (1697년 결혼)
아버지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 데 메디치
어머니 마르그리트 루이즈 도를레앙
형제 페르디난도, 안나 마리아 루이사
서명
파일:잔 가스토네 데 메디치 서명.svg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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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스카나 대공국대공. 메디치 가문 출신의 마지막 토스카나 대공이다. 그의 사후 토스카나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2. 생애

1671년 5월 24일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 데 메디치와 오를레앙의 마르그리트 루이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외할아버지인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에게서 따와 잔 가스토네라고 이름지어졌다. 어머니 마르그리트 루이즈는 잔 가스토네가 4살 때 프랑스로 돌아가버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차남이라 관심을 못 받으면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랐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고 다정했으나, 우울한 성격에 모든 걸 귀찮아했다고 한다.

후계자를 공고히 하고 싶어했던 코시모 3세는 장남 페르디난도가 자식을 가지지 못하자 잔 가스토네를 작센라우엔부르크의 안나 마리아 프란치스카와 결혼시켰다. 노이부르크 궁정백의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두었기에 생식 능력이 보장되어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동성애자였던 잔 가스토네는 아내를 싫어했고, 자식을 보지 못했다. 그는 종종 동성애인이자 시종인 줄리아노 다미를 데리고 유럽의 대도시를 여행했다. 그곳에서 잔 가스토네는 도박과 술, 동성애를 즐기며 문란한 생활을 했다.

1713년 10월 31일에 후계자 페르디난도가 사망하자 방탕한 차남에게 대공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코시모 3세는 총명한 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신성 로마 황제 카를 6세의 반대로 잔 가스토네를 후계자로 지명해야 했다. 잔 가스토네는 대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에 후계자가 되자 엉뚱하게도 누나를 탓했다. 그리고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생활을 하며 술독에 빠져지냈다.

1723년에 아버지 코시모 3세 데 메디치가 숨을 거두면서 잔 가스토네는 쉰이 넘은 나이에 대공이 되었다. 당시 토스카나 대공국은 경제가 무너지고 국고가 바닥나 쇠락하고 있는 상태였다. 잔 가스토네는 아버지가 만든 부당한 법령을 없애고 세금을 줄였으며, 부랑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선하는 등 사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몰락하고 있는 나라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무력해진 잔 가스토네는 죽은 형의 아내에게 정치를 맡기고 다시 방에 틀어박혔다. 유일하게 그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시종 줄리아노 다미였다. 다미는 대공을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해 남창을 데려와서 바쳤다. 잔 가스토네는 남창들과 정사를 즐기며 자주 문란한 연회를 열었다. 이 남창들은 대공을 즐겁게 해줄 때마다 대공이 던진 루스피라는 동전을 받았기에 여기서 이름을 따와 루스판티라고 불렸다. 루스판티들은 대공의 뒷배를 믿고 민가를 습격하면서 재산을 모았다.

1731년경부터 대공의 건강은 크게 안 좋아졌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때를 놓치지 않고 토스카나 대공국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1733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고 그 결과 빈 조약이 체결되면서 로렌 공작 프랑수아 에티엔이 토스카나 대공국의 후계자로 지정되었다. 1737년 잔 가스토네가 사망하자 합스부르크의 군대는 피렌체를 점령했고, 토스카나 대공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