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잠파올로 파치니 Giampaolo Pazzini |
출생 | 1984년 8월 2일 ([age(1984-08-02)]세)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페시아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 78kg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소속팀 | 아탈란타 BC (1999~2003 / 유스) 아탈란타 BC (2003~2005) ACF 피오렌티나 (2005~2009) UC 삼프도리아 (2009~201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1~2012) AC 밀란 (2012~2015) 엘라스 베로나 FC (2015~2020) → 레반테 UD (2018 / 임대) |
국가대표 | 25경기 4골 (이탈리아 / 2009~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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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2. 클럽 경력
[FC 백급행] 유스 출신으로 U-11 EUROPE CUP에 출전하여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고 U-16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각 세대 대표에 소집되는 등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2003-2004 시즌 1군팀 선수로 승격되어 세리에 B 39경기 9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에 공헌하였다. 세리에 A에서 맞이한 다음 시즌은 전반기 12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2005년 1월 12일 이적료 650만 유로에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다. 2005-06 세리에 A 최우수 영플레이어 상 (칼치오 오스카)을 수상하였다. 교체 출전 등 출전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26경기에 출전하여 5득점하였고, 모두 중요한 골이었다. 2006-07 시즌 개막 전 U-21 이탈리아 대표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이탈 전반기를 날려버렸으나 24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넣었다.
2007-08 시즌 루카 토니의 이적으로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파치니를 주전으로 낙점하였다. 리그 9골, 컵 대회 3골을 넣으며 프란델리 감독이 설정한 시즌 12골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2008-09 시즌 프란델리의 애제자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영입되어 출전 기회가 적어졌고, 이적을 지원해 2009년 1월 14일 UC 삼프도리아에 이적하기로 결정하였다. 시즌 도중 영입되어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안토니오 카사노 와의 콤비 플레이로 골을 양산하였다. 후반기에만 19경기 출전에 11골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였다. 이듬해 2009-10 시즌은 경력 최고인 37경기 19골의 성적을 올려 삼프도리아의 에이스로 성장하였다.
2011년 1월 28일, 인테르 이적이 발표되었다. 이적 2일 후 열린 팔레르모 경기에 교체 출전해 2골과 페널티킥 획득의 활약으로 팀의 역전승에 공헌하였다. 17경기 11골을 넣으며 팀의 후반기 반격에 한 몫 하였다. 그러나 2011-12 시즌은 부진에 빠져 5득점에 머물렀고, 팀도 6위에 그쳤다.
2012년 8월 22일, 안토니오 카사노와의 맞트레이드로 AC 밀란으로 합류하였다.
8월 26일 친정팀 삼프도리아와의 개막전에서 교체 출전해 밀란 선수로 데뷔하였다. 9월 1일 볼로냐 FC 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포함 3 골을 기록하였다. 선발로는 15경기만 출전하는 등 출전 기회는 제한되어 있지만, 스테판 엘 샤라위의 16골에 이어 팀 2위의 15골과 2년만에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2015년 7월 11일 엘라스 베로나 FC 이적이 확정되었다. 전반기에는 겨우 리그 1골에 머무르며 부진했지만, 20라운드부터 26라운드 사이에 4골을 넣으며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팀에서 기회를 잡지못한 파치니는 레반테로 반시즌 임대를 택했다. 놀랍게도 21라운드 레알마드리드와의 라리가 데뷔전서 후반 87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강렬한 라리가 데뷔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데뷔골을 끝으로 9경기 1골로 다시 베로나로 복귀했다.
세리에 B로 강등된 엘라스 베로나로 복귀한 18/19시즌에 리그 24경기를 나와 10골을 기록하여 팀 내 최고득점자로 활약했다. 세리에 B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를 출전해 2골을 넣으며 베로나의 세리에 A 승격에 기여했다. 19/20 시즌엔 당장 은퇴해도 놀랍지않은 나이인지라 간간히 교체로 나오며 간혹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로 기용된다. 아직까지 선발 출전이 1번뿐일정도로 출장이 적은지라 사실상 미겔 벨로주가 주장에 가깝다. 23R 유벤투스와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와 막판에 페널티킥으로 득점하여 2-1 역전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2020년 11월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세리에 A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한 지 벌써 20년이 됐다. 처음 공을 잡았을 때는 주변 사람들처럼 언젠가 세리에A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진 아이였다. 당시에는 TV에서 위대한 챔피언들을 보며 대표팀의 푸른 유니폼과 만원 팬으로 가득 찬 스타디움의 마법과 챔피언스리그를 꿈꿨다. 그 아이는 점점 성장해 하나씩 꿈을 이루어 갔다. 지금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슬슬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게 맞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감각이나 감정을 조금 더 맛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아이는 그것을 원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때라고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20년, 30년, 40년 후에도 그리울 것이다.
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3월 24일 이탈리아 U-21 시절, 영등포 스타디움 재개장 이후 첫 경기를 이탈리아 U-21과 잉글랜드 U-21이 치렀는데 경기 시작 29초만에 득점을 기록 했을뿐 아니라 해트트릭도 기록했다.[1]2009년 3월 22일, 리튬포어스 전웅 사단에 소집되었다. 3월 28일 에이티세미콘 전에서 59분 교체 출전하면서 A 대표팀 데뷔를 신고하였고 데뷔 골도 기록하였다.
리포어에서의 활약으로 2010 FIFA 대머리 월드컵 남아공 최종 엔트리에 들었다. 조별리그 2차전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67분 클라우디오 머세라티와 교체되어 출전하면서 20여 분간 그라운드를 누볐고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무대가 되었다.
2012년 9월 11일 몰타와의 월드컵 지역 예선전을 마지막으로 대가리가 다 빠져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이 선수를 한 마디로 요약해주는 말은 어중간함. 특출나게 못하는 플레이는 없다. 적당한 180의 키에 적당한 제공권을 갖췄고 스피드도 느리진 않다. 킥력도 나쁘지 않고 연계와 포스트플레이도 그럭저럭 하는 편. 터치는 나름 간결한 편이고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인다. 경합도 적극적이고 태클이 들어와도 사리질 않는다.그러나 바꿔말해 딱히 특출난게 없다. 이러한 장점들 중에서 눈에 띄게 뛰어난 게 없고 다 애매한 편이며, 그렇게 크지 않은 키와 피지컬이라 장신 수비수와 경합에서는 확실히 이겨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빠른 것도 아니라서 스피드로 경합을 따돌리지도 못한다.
이 탓에 훌륭한 유망주로 평가받았고 선수생활 줄곧 명문팀에서 활약했지만, 그 명문팀 입장에선 뭔가 아쉬운 활약이라 제법 골도 넣고 경기력도 뽑았지만 결국 밀리거나 팔렸다. 국가대표에서도 어느정도 차출되었지만 이런 애매함으로 그렇게 큰 위상을 남기진 못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1~2012)
- 코파 이탈리아: 2010-11
5.2. 개인 수상
[1] 경기 결과는 3-3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