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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21:54:41

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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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3b3ae><colcolor=#000> 장률
张律 | Zhang Lu
파일:attachment/장률/Zhang_Lu.jpg
본명 장뤼 (张律, Zhāng Lù)[1]
출생 1962년 5월 30일 ([age(1962-05-30)]세)
지린성 지린시
국적
[[중국|]][[틀:국기|]][[틀:국기|]]
민족 조선족
직업 영화감독, 소설가, 교수
학력 연변대학 (중국문학과)
1. 개요2. 생애3. 필모그래피4. 수상 내역5.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중국영화감독, 소설가, 교수이다.

2. 생애

1962년 5월 30일 지린성 지린시조선족 간부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연변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대한민국중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한 <후쿠오카> 이후의 두 작품은 중국에서 제작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 전공 교수로 2018년 6월까지 강의한 바 있으며, 2019년 3월부터 다시 연세대학교 글로벌인재대학 소속 교수로 강의했다. 지금은 교수직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강의로는 영화연출론, 영화연기론, 문학과 영화, 영상작가론(대만 3인3색) 등이 있다.

영화감독 데뷔 과정이 좀 재미있다. 원래 딱히 영화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본디 소설가로 인지도가 있었던 사람이다. 연변대학 중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의 중문학 교수까지 되었고, 이후 베이징에서 소설을 쓰며 1986년 등단하였다. 개인적으로 서양 작가 중에는 카프카를 좋아했다고 한다. 1989년 이후에는 소설 쓰는 것을 그만 두었는데, 계기 중 하나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고 나서 "이 사람이 다 썼는데 내가 또 뭘 쓰겠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이건 대외적인 이유고 정성일이 밝히길, 천안문 사태 당시 민주화에 관한 기고를 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교수직도 짤리고 창작 활동을 금지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의 10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화 찍던 친구랑 술 마시고 싸우다가 홧김에 "영화는 아무나 찍을 수 있다"라고 말을 던졌고, 결국 말을 지키기 위해 단편 <11세>를 찍었는데 그만 베니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받아 호평을 들었다. 이에 자신감이 붙고 같은 소설가 출신 감독인 이창동의 지지에 힘입어 디지털 카메라로 데뷔작 <당시>를 찍고 로카르노 영화제에 가게 되면서 감독업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망종>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수상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조선족 출신인지라 주인공들이나 영화의 배경이 대부분 경계와 관련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 역시 외국인 노동자를 다룬 필름이다.

건조한 스타일로 꿈도 희망도 없는 한국/중국/조선족 자치구 하층민들의 암울한 삶이 주이지만, 의외로 코미디에도 관심이 많고 재능이 있다. 좋아하는 한국 영화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그래서인지 2014년에는 <경주>라는 로맨스 코미디(?)를 만들었는데 그의 코미디 본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실제로도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이후로는 중산층 한국 지식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교적 영화 색채가 밝아진 편이며, 홍상수 영화와 닮아간다는 평이 많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상당히 빨리 찍는 축에 속한다. 2009년 발표한 <두만강> 이후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풍경>부터 매해 1편 이상의 영화를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두만강>을 제외하면 모두 제목이 두 글자로 이뤄져 있다.

캐릭터 이름 짓는데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이름이 많다. 심지어 이리에서는 배우 이름에서 캐릭터 이름을 따오기도.

인터뷰에 따르면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그 현장에서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있었던 참혹한 광경들이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하며 언급을 꺼리는 편. 또 중국 영화계의 폐쇄성과 폐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은 그런 체제 바깥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실제로 초창기부터 한국 자본의 투자를 받았고,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아예 한국으로 넘어와서 영화를 찍고 있다. 중국 정부에 호되게 탄압당한 일화와 중국 영화계에 대한 강한 비판을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아웃사이더적인 고립감을 느끼다가 한국행을 택한듯 하다. 때문인지 장률 영화는 중국에서 1편도 개봉하질 못했다.

2009년만 해도 중국 영화계의 주목받는 신예로 꼽혔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한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하는 감독이 되었다. 영화의 국적에 대한 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장률 영화 대부분, 특히 초기작들은 수위도 높은 편이고 중국 사회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하는 스타일이라서 검열이 심한 중국에서 개봉하기 힘든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1년에 개봉한 <야나가와>는 간만에 중국 출신 배우들과 작업한 영화다. 진링의 13소녀천성장가로 유명한 니니가 주연을 맡았다. 사실상 중국에서 처음 작업해서 개봉한 <야나가와>는 중국 내에서 좋은 평을 받았으며, 덕분에 니니는 이 영화로 중화권 3대 영화제중 하나인 금계장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정성일 평론가가 관심을 가지는 감독 중 하나. 인터뷰 혹은 대담도 자주 했다.

3. 필모그래피

연도는 네이버 영화를 기초로 함.

4. 수상 내역

5. 외부 링크


[1] 한국 한자음으로는 장률[2] 하얀 등대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