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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4:47:25

장진(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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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津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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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교주자사이며 자는 자운(子雲)으로 형주 남양군 사람.

2. 생애

주부가 죽자 교주자사로 파견되었다가 자신의 부장인 구경(區景)에게 살해당했으며, 이 일로 인해 유표뇌공을 보내 장진을 대신하게 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장진이 죽은 것을 알고 사섭에게 황제의 봉인이 찍힌 조서를 내려 사섭을 수남중랑장으로 임명해 교지의 7개 군을 다스리게 했다. 허정이 교주에 있을 때 조조에게 보낸 탄원서에 따르면 이전에 낙양에 있을 때 왕실을 도울 뜻이 있었다고 언급된다.

강표전에서 손책우길을 죽일 때 "옛날 장진이 성인의 가르침을 버리고 한나라의 법률을 폐하며, 도가의 책을 읽고 제사를 지내면서 교화를 돕는다고 운운하다가 끝내 남이(南夷)에게 살해당했다"고 언급했다. 지림에서 손책이 우길을 죽인 것과 함께 손분을 장사태수에 제수하면서 장진의 영릉, 계양으로 업으로 삼게 했다고 언급하는데, 배송지가 이를 보고 287년에 왕범이 이주준추를 올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201년에 장진이 오히려 교주목이 되었으며, 강표전의 허망함은 지림에서 운운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즉, 손책이 장진보다 먼저 죽었다는 것이다. 장진에 대한 오류는 연의에서도 수정 없이 반영됐다.[1][2]


[1] 다만 사섭이 이전부터 교지태수로 친족을 태수로 임명하는 족벌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손권에게 종속되기 시작한 것이 201년이라는 점에서 충돌된다는 점이 있다.[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작가가 착각했는지 손책이 교지태수 장진이 아닌 황건적 장각을 언급하는 대사로 바뀌었다. 작가가 만화를 그리며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요시카와 에이지 판본에서는 장진이라고 확실하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