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長興 虎溪里 別神祭와 洞契文書. 조선 숙종 28년인 1702년부터 현재까지 약 320년간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 지역을 통해 전해지는 한국의 고유 제례행사와 관련 기록물. 현재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전남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서 1702년(숙종 28)부터 지금까지 약 300년의 역사를 두고 기록되어 온 마을 공동체 의례 및 별신제 관련 기록물과 문화행사이다.장흥 호계리 동계문서의 경우 1715년(숙종 41)에 대동계를 만든 내력을 담은 대동창계(大洞刱契)라는 책과 함께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1702년부터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서 그해 선정되었던 제관과 결산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마을의 풍물을 마련할 때 부의를 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그 내역을 기록한 책, 동계안, 집강록, 제관록, 홀기, 마을의 재난을 구제해 달라는 등장 상서, 풍물 부의책, 향도제감절목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적 15책, 상서 2건, 절목 1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신제는 호계리 지역에서 해마다 행하는 전통 마을제사로, 1700년대 초 관제(官祭)의 형식이 어떤 형식으로 민간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속 행사이다. 원래는 별신제와 당산제를 병행해왔으나 당산제는 폐지된 반면 별신제는 170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남도문화제 등을 통하여 고전 민속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3. 외부 링크
4.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3호
호계리 별신제와 동계문서는 장흥 부산면 호계리에서 전승되어온 마을 공동체 의례와 마을 및 별신제 관련 기록물로서 조선시대 마을 형성 이후 오늘날까지 계승·유지되어 오고 있다. 특히 동계문서는 조선시대 후기(1702년께 별신제 / 1715년 대동계[동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매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역사 자료이며, 마을공동체 의례의 연혁과 변천을 알 수 있는 희귀 자료이다.
별신제는 전남지역에서는 흔한 용어는 아니지만, 장흥 호계리 지역에서 매년 모시는 전형적인 마을제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전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당산제와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제의(祭儀) 형식은 유교식 제차로 진행되는데 제차, 제물, 제관 등이 <국조오례의>의 길례에서 볼 수 있는 관제(官祭)의 형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서 호계리 별신제를 통하여 관제가 민간화되어가는 양상을 알 수 있다. 호계리에는 별신제와 당산제가 병행되어 오다가 당산제는 폐지되었지만 민간신앙화된 별신제는 지금도 살아있는 마을문화의 하나로서 매년 수행되고 있다. 장흥 호계리 별신제는 170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관련 자료가 현존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도문화제 등을 통하여 민속예술성이 확인되었고, 전문가들의 마을 조사 보고서와 논문 등을 통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정리되었고, 별신제보존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장흥 호계리 동계와 별신제 관련 문서는 조선시대 후기(별신제 1702년께 / 대동계[동계] 1715년)부터 전해오는 공동체 기록물(동계안, 집강록, 제관록, 홀기, 풍물 부의책 등 관련 문적 17책과 상서 2건, 절목 1건)로서 동계창설과 운영 등 마을사의 변천, 그리고 공동체 제의인 별신제의 운영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숙종 41년(1715)에 대동계를 만든 내력을 담은 <대동창계(大洞刱契)>라는 책과 함께 지금도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서 그해 선정되었던 제관과 결산 내역을 기록하는 문서가 결책되어 보관되어 있다. 또 예전 마을의 풍물을 마련할 때 부의를 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그 내역을 기록한 책, 제관록, 그리고 홀기 등 문적도 전하고 있다. 이들 문서들은 지금까지 300년의 역사를 두고 기록되어 온 것들로서 별신제 뿐만 아니라 마을사 전체를 조명해 줄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지금도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면 ‘대동계’라는 마을총회를 열어 별신제의 결산은 물론 이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별신제는 전남지역에서는 흔한 용어는 아니지만, 장흥 호계리 지역에서 매년 모시는 전형적인 마을제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전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당산제와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제의(祭儀) 형식은 유교식 제차로 진행되는데 제차, 제물, 제관 등이 <국조오례의>의 길례에서 볼 수 있는 관제(官祭)의 형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어서 호계리 별신제를 통하여 관제가 민간화되어가는 양상을 알 수 있다. 호계리에는 별신제와 당산제가 병행되어 오다가 당산제는 폐지되었지만 민간신앙화된 별신제는 지금도 살아있는 마을문화의 하나로서 매년 수행되고 있다. 장흥 호계리 별신제는 170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관련 자료가 현존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도문화제 등을 통하여 민속예술성이 확인되었고, 전문가들의 마을 조사 보고서와 논문 등을 통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정리되었고, 별신제보존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장흥 호계리 동계와 별신제 관련 문서는 조선시대 후기(별신제 1702년께 / 대동계[동계] 1715년)부터 전해오는 공동체 기록물(동계안, 집강록, 제관록, 홀기, 풍물 부의책 등 관련 문적 17책과 상서 2건, 절목 1건)로서 동계창설과 운영 등 마을사의 변천, 그리고 공동체 제의인 별신제의 운영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숙종 41년(1715)에 대동계를 만든 내력을 담은 <대동창계(大洞刱契)>라는 책과 함께 지금도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서 그해 선정되었던 제관과 결산 내역을 기록하는 문서가 결책되어 보관되어 있다. 또 예전 마을의 풍물을 마련할 때 부의를 했던 사람들의 명단과 그 내역을 기록한 책, 제관록, 그리고 홀기 등 문적도 전하고 있다. 이들 문서들은 지금까지 300년의 역사를 두고 기록되어 온 것들로서 별신제 뿐만 아니라 마을사 전체를 조명해 줄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지금도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면 ‘대동계’라는 마을총회를 열어 별신제의 결산은 물론 이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