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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2:26:35

전방삭

전방삭(全方朔)
자: 일진(日進)
호: 규암(葵庵)
출생: 1545년(인종 1년)
사망: 1598년(선조 31년) 7월
본관: 천안 전씨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주요관직: 훈련원(訓鍊院) 부정(副正)
가족: 할아버지 진사(進士) 전청(全淸), 아버지 부사(府使) 전윤부(全潤富)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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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관. 임진왜란 당시 부정(副正) 건공장군(建功將軍) 으로 혁혁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선정되고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추증되었다.

2. 생애

보성군 우산리 택촌에서 태어났고 시조 백제 개국 십제공신(十濟功臣) 전섭(全聶)과 중시조 고려 개국 공신 충달공(忠達公) 전락(全樂)의 후손이다.

학문과 예의범절이 모범 된 가정에서 태어나 범상하지 않은 체구에 이구동성으로 장군감이라 했다. 예측대로 무술을 연마하여 30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조선의 훈련원(訓鍊院)에 근무했다.

남들보다 빠른 승진으로 1592년 건공장군(建功將軍:종3품)에 오르던 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훈련원을 사수했다.
왕가가 위태함에 피신 후 전쟁이 느슨하여 어가가 환궁하여 왕세자 광해군이 군량미 확보와 병력 동원차 각 지방을 순회할 때 호종(扈從)하다 뜻 한 바 있어 세자의 윤허로, 무예를 연마하던 청년 시절 보성의 궁터와 마장 그리고 열선루(列仙樓)에서 자주 만났던 전라좌수영 이순신 관하에서 군무를 도왔다.

1597년 이순신이 모함에 하옥되자 군영은 와해되어 귀향하여 보성의병을 창의하여 정규군에 못지않은 전술을 연마한 결과 타의 의병과는 달리 전술이 뛰어난 실력이기에 고향 보성과 인근 흥양(고흥) 낙안 순천 등지로 침입한 왜적을 8회에 걸쳐 섬멸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1598년 고향인 보성군 죽전벌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사후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605년 선조 임금으로부터 선무원종공신으로 책록되고 어모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宣武原從功臣錄券」
「湖南節義錄」
「宣武功臣追慕錄」
「湖南地方壬辰倭亂史料集」
「光州全南五亂忠義士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