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2-14 16:38:55

전회(서진)


1. 개요2. 생애

1. 개요

錢璯
(? ~ 310년)

서진의 인물.

2. 생애

오흥군 출신이다. 305년 진민이 반란을 일으키자, 전회는 의병을 일으켜 진민을 토벌했으며, 사마월은 전회의 공적을 칭찬하여 전회를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삼았다.

310년, 서진이 영가의 난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사마월은 전회와 왕돈을 불러들여 흉노의 침공에 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회는 광릉(廣陵)에 도착할 때 유총이 이미 낙양으로 핍박했다는 소식을 접하여 결국 겁을 먹고 진군하지 못했다. 조정에서 군령에 따르도록 전회를 재촉하자, 전회는 결국 모반을 결심했다.

전회는 왕돈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전회의 음모를 알아챈 왕돈은 건업에 있는 낭야왕 사마예에게 달아나 전회의 음모에 대해 알렸다. 전회는 탁지교위(度支校尉) 진풍(陳豐)을 죽이고 곳집을 불태운 뒤 평서대장군(平西大將軍), 8주 도독을 자칭했으며, 손호의 아들 손충을 협박하여 오왕(吳王)으로 추대했다가 머지않아 손충을 죽였다. 전회는 선양현을 공격하려고 시도했고 낭야왕은 곽일(郭逸)과 송전(宋典) 등을 파견하여 전회를 토벌하도록 명했다. 이후 승상부 창조속(倉曹屬) 주기(周玘)[1]가 다시 향리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곽일에게 가세했고 전회는 주기에게 패배하여 참수된 뒤 그 목이 건강의 사마예에게 보내졌다.
[1] 주처의 장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