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3B6B0><colcolor=#fff> 정의채 鄭義采 | |
출생 | 1925년 12월 27일 |
평안북도 정주군 | |
사망 | 2023년 12월 27일 (향년 98세) |
학력 | 덕원신학교 고등부 (졸업) 가톨릭대학교 (신학 / 학사) 우르바노 대학교 (철학 / 석사) 우르바노 대학교 (철학 / 박사)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약력 | 아시아가톨릭철학자협의회(AACP) 회장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상임고문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소장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부학장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소장 천주교 명동대성당 주임신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 한국 가톨릭철학회 회장 아시아 가톨릭철학회 회장 한국가톨릭 교수협의회 특별고문 |
세례명 | 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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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 신부.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원로 신학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2. 생애
그는 1925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나 1953년 28세에 사제품을 받고,[1] 부산 초량 본당과 서대신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다.이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1961년 부터 1984년까지 가톨릭대 신학부[2]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84년부터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불광동 본당과 명동 본당 주임신부를 지냈으며 1988년 학교로 돌아가 총장으로 근무했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서강대 석좌교수를 지냈고 도중인 2005년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3] 중세의 대표적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명저 <신학대전> 번역 작업 착수를 주도하였으며,[4] 그 외에도 다수의 신학 관련 저서들을 남겼다.
3. 사망
2023년 12월 27일 오후 5시 15분경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8세.4. 관련 문서
[1] 고향이 공산화된 후 월남하였는데, 6.25 전쟁까지 겪는 어려움 속에서 간신히 사제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제발 단 한번이라도 사제로서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여러번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무려 90세가 넘도록 살면서 사제 활동을 했으니 그의 소원은 확실히 이루어진 셈이다.[2] 現 가톨릭대 성신교정[3] 몬시뇰이란 '나의 주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가 어원이다. 교황이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 중 공로가 큰 성직자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교황의 명예 전속사제와 교황 명예 고위성직자 두 가지가 있다. 후자는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 가톨릭 고위 성직자에 대한 총체적 경칭이다.[4] <신학대전>이 워낙 방대한 서적이라서 그의 생전에는 초기 일부가 번역되었고, 지금도 후배 학자들이 이어서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