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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2:41:50

제갈과

諸葛果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3. 미디어 믹스

1. 개요

촉한의 여성으로 제갈량의 딸.

2. 정사

《제갈충무후문집諸葛忠武侯文集》에는 충무후(제갈량)의 딸의 이름이 과(果)라고 하는 것이《집선록(集仙錄)》에 보인다고 했다. 명나라 시대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10권 제6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제갈량은 (자식) 3남 1녀를 부르자 마중나가서 참배했다고 감개무량했는데, 제갈균은 "형 3명(제갈근, 제갈량, 제갈탄)이 각각 3국에서 출사했으니 우리 가문이 번성할 것 입니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주역에 나오는 안위불위(安不忘危, 편안한 가운데서도 늘 위험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늘 스스로를 경계하여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처함을 이르는 말)라는 말을 아는가? 내가 말을 들으니 제갈각 이 조카가 성정이 강조(剛躁, 강하고 조급함)하니 가문의 자제를 보존하지 못할 것이라 했네, 제갈탄은 고집이 있고 꾀가 적으니 아마 끝을 잘 맺지 못할 것이네, 나의 책임도 무거우니 몸소 나라를 지킬 것이네. 이 딸(제갈과)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늘 이 아이에게 액운과 싸우는 법을 가르친다네. 그런 즉슨 봉사(奉事)하고 꾸준하여 나중에는 반드시 선과를 증명할 것이니 그런 까닭에 이름을 과(果)라고 하였네."

제갈량의 딸은 선과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한다고 하여 이름을 과(果)로 하였다. 청나라 시대의 《제갈충무후문집(諸葛忠武侯文集)》 1권 인용 《조진관기(朝真観記)》에 따르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제갈량의 딸은 이곳에서 전란을 피하여 마침내 선도를 닦고 우화승천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시대에 성도 근처에 그녀를 모시는 사당이 지어졌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제갈과의 용모가 아름답고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성도의 조진관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근대 역사학자 장숭침(張崇琛)은 제갈과의 존재에 대해 신빙성을 부정했다.[1] 당장 저기 역대신선통감에 나오는 기록만 봐도 제갈탄이 제갈량과 형제지간이였다는 이야기와 자식이 3남 1녀였다는 이야기를 봐선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명나라 기록이니.

3. 미디어 믹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는 공명의 딸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갔고 그녀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는 언급이 있다. 하여간 일단 미인인 여캐는 어느 시대에도 인기가 있는터라 각종 삼국지 서브컬쳐 매체에서 제갈첨은 나오지 않아도 제갈과가 대신 나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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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요란 대전란!! 삼국지 배틀'에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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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대전 4에서 등장해 무력 6 / 지력 9의 지장으로 코스트는 2. 우월한 몸매와 더불어. 전법 7을 소비로 하는 천녀의 진뇌는 적장을 도살할 수 있을 정도로 고성능. 여성 카드 중 가장 높은 지력 보유자. 유비의 전법과 섞일 경우. 스펙은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그 외에 복병 / 매력 특성이 있다.


[1] 장숭침저,《무후정촉제갈량세가(武侯鼎蜀諸葛亮世家)》,길림인민출판사, 1997년, 237-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