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소설가 조설근 曹雪芹|Cao Xueqin[1] | |
▲ 조설근의 초상화 | |
<colbgcolor=#A83232,#5A1E1E><colcolor=#FFD700,#D4AF37> 본명 | 조점(曹霑) |
별칭 | 몽완(夢阮) (자) 설근(雪芹) (아호) |
생몰 | 1724년 ~ 1763년 |
직업 | 소설가 |
저서 | 《홍루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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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의 소설가.이름은 점(霑), 자는 몽완(夢阮), 호는 설근(雪芹)이다. 소설《홍루몽》의 저자로 유명하다.
2. 생애
조설근의 집안은 팔기군 정백기 한군(한족) 포의[2]였는데, 선조는 오늘날의 랴오닝 성에 거주하다가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정복되어 팔기한군에 편입되었다.이후 조설근의 증조모가 강희제의 유모가 되면서 황실과 연이 닿게 되었고, 황실의 총애로 조설근의 할아버지인 조인(曹寅, 1658~1712)이 강녕직조(江寧織造) 겸 양회순염감찰어사(兩淮巡鹽監察御史)로 임명받으면서 조씨 가문은 번창했다. 강녕은 현재 남경 으로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강소성과 절강성을 비롯한 강남 지방이 조정 수입의 90%를 책임지는데, 강녕직조는 국영 기업체의 수장으로 조정 수입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최요직 중에 하나였다. 조인과 강희제가 1712년과 1722년에 각각 세상을 떠난 후 조씨 가문은 옹정제의 총애를 잃고 몰락했다. 사실 강희제가 6번의 남순시에 5번이나 조인의 집에 머물며 접대비용으로 가산을 완전히 탕진하여 이전부터 집안이 기울었다.
하지만 강희제의 뒤를 이어 옹정제가 즉위한 후, 조씨 가문은 옹정제의 막가파식 숙청을 피하지 못하고 부패세력으로 단단히 찍혀 몰락하고 만다.[3] 그리고 조설근의 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권력을 잃고 가문 전체가 북경으로 이주당했으며, 조설근 자신은 북경 외곽의 기인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홍루몽을 집필하게 된다. 그러나 조설근은 이 소설을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1763년에 사망하여 홍루몽이 인기소설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필사본으로 유포되던 홍루몽이 활자본으로 출간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30여년이 흐른 뒤였다.
민국시대의 학자인 후스(胡適, 1891~1962) 등의 연구로는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전적인 소설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조설근이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3. 사후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 후, 홍루몽이 청나라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조설근의 이름도 시간이 지나며 알려졌다. 하지만 정위원과 고악이 필사본들을 모아서 1791년~1792년(건륭 56년~57년)에 '홍루몽'이란 제목으로 출간했을 때는 한참 전에 조설근이 쓴 원고가 유실된 뒤였고, 두 사람이 필사본을 모을 때 유실된 내용(특히 후반부)를 말이 되게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조설근의 원래 의도가 두 사람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뒤바뀌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4]또한 조설근 자체가 생전에 유명한 작가가 아니었기에 조설근이 누구인지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초기 필사본에 평론을 단 지연재의 정체 문제[5], 조설근이 홍루몽을 쓰면서 무슨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임대옥과 설보채 중에서 누가 더 좋은지를 둔 홍루몽 덕후들의 논쟁[6] 등이 합쳐져서 중화권에선 아예 홍루몽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문인 홍학(红学)까지 생겼다.
4. 그 외
문명 5의 두 번째 확장팩인 멋진 신세계에서 위대한 작가 위인으로 등장한다.중국 드라마 대청보전에서 주인공인 조보근의 이름은 조설근에서 설을 빼고 가보옥의 보를 넣어서 붙은 이름이며, 드라마 내용도 옹정제~건륭제 시기를 배경으로 홍루몽을 패러디했다.
참고자료: 최용철, 붉은 누각의 꿈, 나남출판사
[1] 한어병음으로는 'Cáo Xuěqín'이다.[2] 원래는 팔기의 군인 신분인 기인들의 밑에서 일하는 하인들에게서 비롯된 천한 신분이나 팔기에 포함되어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기에 청나라 사회에서 실질적으로는 양민과 같은 지위였다. 청사에는 이런 포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귀족들 이상으로 입신양명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어도 조설근처럼 후대에 이름을 전한 사람이 꽤 있다.[3] 지정은제 및 옹정제 문서 참조. 남경과 강소성 뿐만 아니라 광동, 복건, 절강, 안휘, 강서 등 강남 전역의 유력 향신, 토호들이 옹정제에게 썰려나갔고, 강남을 넘어 호남과 호북, 산동 등 중국 전토에 걸쳐 이와 같은 불도저식 숙청작업이 이어졌다.[4] 그래서 홍루몽을 읽으면 중간에 앞뒤가 안 맞는 설정구멍이 종종 나온다.[5] 지연재에 대해서는 조설근의 가족설, 친척설, 지인설 등의 가설만 제기되었을 뿐 홍루몽에 평론을 단 것을 제외하면 자료가 전무하여 실존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6] 중화권에선 청나라 때부터 임대옥빠와 설보채빠가 말다툼을 벌이다가 주먹싸움으로 번진 일도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