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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22:46:54

조지 투포우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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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eorge_Tupou_I.jpg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1. 개요

조지 투포우 1세는 통가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2. 생애

1797년에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고 1845년의 대관식 날짜인 12월 4일이 오늘날 생일처럼 알려졌다. 출생지는 통골레레카(Tongoleleka)로 추정하나 정확하진 않다. 출생지가 통가타푸(Tongatapu)나 리푸카(Lifuka)란 주장도 있다.

원래 이름은 타우파하우(Tāufaʻāhau I)였다.

아버지 투포우토아(Tupouto'a)는 투이 카노쿠폴루(Tuʻi Kanokupolu)[1]이 되기를 원했으나 통가타푸의 고위 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 했고 하급 귀족 출신의 강탈자로 간주되었다. 어머니 호아모팔레오노(Hoamofaleono)는 하파이(Haʻapai) 출신으로 통가타푸의 생활에 불안감을 느꼈다. 남편이 출신 부족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투포우토아는 자신의 아버지 투쿠아호(Tuku'aho)가 암살된 데 복수하고자 했다. 이런 관계가 엮이면서 부족장들은 투포우토아를 인정하지 않았다.

1820년에 아버지가 죽고 조지 투포우가 이를 계승하였다. 아버지가 겪던 갈등도 그대로 계승했는데 39대 투이 통가(Tuʻi Tonga)인 라우필리통가(Laufilitonga)와 대립하였다. 투이 통가는 종교적 지도자의 의미가 강했는데, 라우필리통가는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을 얻으려고 하였다. 1826년 조지 투포우는 벨레타 전투(Battle of Velata)로 투이 통가를 패배시켰다.[2]

1797년부터 영국의 개신교 종파들은 통가에 선교사를 보냈다. 당시엔 주민들의 반감으로 선교사 3명이 사망하였다. 1826년 웨슬리안 감리교 선교회의 2차 선교사 파견으로 감리교가 자리를 잡았다. 당시 헤아파이 군도의 타우화아하우 추장이었던 타우파하우는 감리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름도 조지 3세에서 따서 조지라고 고쳤다. 영어론 조지라고 했고, 통가말로는 음차하여 시오아시(Siaosi)라고 하였다. 1831년에 세례를 받았다. 통가는 전통적으로 지도자를 신격화했기 때문에 왕의 개종은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관련기사

1845년 12월에 조지 투포우 1세는 대관식을 치렀다. 1852년에는 마지막 독립 부족장인 타카이 모 파에(Takai Mo Fa'e)를 패퇴시켜 통가를 정치적으로 통일하였다.

그의 치세에서 1835년 바바우(Vavaʻu) 지역에선 농노제가 폐지되었다. 1839년에는 통가의 첫 성문법인 Vavaʻu Code를 선포하였다. 1875년에 통가의 헌법을 선포하였다.

태평양의 섬나라였던 통가를 정치적으로 통합시키고 근대화시켰다.

1남 3녀를 두었는데 모두 본인보다 먼저 사망했다. 그래서 1880년대에는 손자들이 계승자였는데 손자들마저 먼저 사망하면서 증손자가 계승권자가 되었다. 조지 투포우 1세는 1893년 95세의 나이로 수영을 하다가 사망하였다.

손자들이 사촌간 결혼을 하면서 얻은 증손자인 타우파하우 왕자가 시아오시 투포우 2세, 즉 조지 투포우 2세로 즉위했다.

3. 가족관계


[1] 직책명으로 번역하기 어려워 그대로 표기.[2] 여담으로 라우필리통가의 아내는 이 시기에 시아오시와 바람이 났다. 이 사람이 통가 왕국의 첫 왕비인 살로테 루페파우이다.[3]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뉴질랜드에서 사망했다.[4] 사촌인 시아오시 파타헤이 토우타이토코타하와 결혼하였다.[5] 아버지인 테비타 웅가가 1879년 사망하면서 왕세손으로 1885년까지 있었다.[6] 형인 윌리아무가 1885년에 사망하면서 왕세손이 되었고 1889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했을 때 누나 엘리시바 공주도 사망하여 엘리시바 공주의 아들인 시아오시가 왕세증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