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제6대 애슬리 남작 존 그레이 John Grey of Groby, 6th Baron Astley | |
이름 | 존 그레이 John Grey |
출생 | 1432년경 |
잉글랜드 왕국 레스터셔 그로비 | |
사망 | 1461년 2월 17일 |
잉글랜드 왕국 세인트 올번스 | |
아버지 | 제6대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 에드워드 그레이 |
어머니 | 제6대 그로비의 페러스 여남작 엘리자베스 페러스 |
형제 | 에드워드, 레지날드, 앤, 마거릿 |
배우자 | 엘리자베스 우드빌 |
자녀 | 토머스, 리처드 |
직위 | 제6대 애슬리 남작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장미 전쟁 시기 랭커스터 왕조 편에 섰다가 제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1432년생으로, 아버지 에드워드 그레이는 조모 조앤 애슬리로부터 애슬리 남작 작위를 물려받았고, 제6대 그로비의 페러스 여남작 엘리자베스 페러스와 결혼한 뒤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을 칭했다. 형제로 에드워드[1], 레지날드[2], 앤[3], 마거릿[4]이 있었다.1457년 12월 18일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애슬리 남작위를 계승했으며, 1462년 어머니가 초대 에식스 백작 헨리 보처의 4남인 존 보처 경과 재혼한 뒤 그의 후원을 받았다. 일부 사료에서는 존을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 호칭으로 의회에 소환되지 않았으며, 의회에서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을 칭한 것은 계부인 존 보처였다.
1452년경 초대 리버스 남작 리처드 우드빌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했으며, 장미 전쟁에서 장인과 마찬가지로 랭커스터 왕조를 지지했다. 1461년 2월 17일 제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에 참전했는데, 전투는 랭커스터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본인은 전사했다. 사후 큰아들 토머스 그레이가 그의 영지를 계승했다.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페러스는 1483년까지 생존했으며, 장남 토머스 그레이가 엘리자베스 페러스 사후 제7대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이 되었다.
3. 가족
- 엘리자베스 우드빌(1437 ~ 1492): 초대 리버스 남작 리처드 우드빌과 룩셈루르크의 자퀘타의 딸. 존 그레이 사후인 1464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4세와 재혼해 에드워드 5세, 슈루즈버리의 리처드, 요크의 엘리자베스 등을 낳았다.
- 토머스 그레이(1451 ~ 1501): 1461년부터 제8대 애슬리 남작, 1483년부터 제7대 그로비의 페러스 남작, 1471~1475년 헌팅던 백작, 1475년부터 초대 도싯 후작.
- 리처드 그레이(1457 ~ 1483): 그로비 기사. 1483년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정변으로 앤서니 우드빌과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