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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9 23:10:19

존 뷰포드

존 뷰포드
John Buford
파일:1000011444.jpg
본명 존 뷰포드 주니어
John Buford Junior
출생 1826년 3월 4일
미국 켄터키주 우드퍼드 카운티
사망 1863년 12월 16일 (향년 37세)
미국 워싱턴 D.C.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소장[1]
복무 기간 1848~1863
학력 녹스 칼리지
미국육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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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켄터키주 우드퍼드 카운티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할아버지는 로버트 E. 리의 아버지인 헨리 리의 밑에서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전적이 있고 아버지역시 군인이였다. 녹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848년 졸업해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1용기병연대 소속이였으나 2연대로 변경되었고 수 전쟁, 유타 전쟁에 참가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북군의 편에 섰고 워싱턴 DC 수비대에 복무하다가 1862년, 존 포프 장군 휘하로 북군 버지니아군의 제2군단 기병여단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2차 불런 전투에 참가했다. 뷰퍼드는 전투 후반에 기병 돌격을 감행했으나 적의 포탄에 무릎 부상을 당했다. 상처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남부의 신문들은 그가 죽었다고 보도했다.

회복 후 포토맥군 소속 조지 매클렐런휘하 기병참모로 임명되었다. 이후 조셉 후커 휘하 포토맥군 예비 기병여단장이 되었다. 챈슬러즈빌 전투에 참가했고 게티즈버그 전투당시 포토맥군 제1기병사단장으로 제일 먼저 전장에 도착해 교전 첫 날부터 게티즈버그와 그 주변의 구릉지대를 먼저 장악한 쪽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신의 기병대를 모두 말에서 내리게 하여 전투 준비를 하는 한편 1군단장 레이놀즈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뷰포드의 빠른 판단이 북군 승리에 기여한 셈이다.

7월 1일 헨리 히스가 이끄는 2개 여단을 상대해 공격을 저지했고 이후 양 군의 증원군이 세메레티 언덕으로 몰려들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이후 메릴랜드주 에머츠버그로 빠져 재편성 후 출전은 없었다. 이후 버지니아주 워런턴까지 추격했고 계속 이어지는 버지니아 전역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전투 중 부상으로 감염된 장티푸스로 인해 워싱턴 DC의 조지 스톤맨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후 소장으로 추서되었다.

3. 여담



[1] 추서계급 생전 준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