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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7:07:35

존 피츠앨런(초대 아룬델 남작)

성명 존 피츠앨런
John FitzAlan
생몰년도 1348년경 ~ 1379년 12월 15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 서식스 아룬델 성
사망지 아일랜드 해안
아버지 리처드 피츠앨런
어머니 랭커스터의 엘레노어
형제자매 리처드, 토머스, 조앤, 앨리스
아내 엘레노어 맬트래버스
자녀 조앤, 존, 리처드, 윌리엄, 마가렛
직위 아룬델 남작, 잉글랜드 원수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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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에 맞섰다.

2. 생애

1346년경 잉글랜드 왕국 웨스트 서식스 아룬델 성에서 제10대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과 3대 랭커스터 백작 헨리의 딸인 엘레노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리처드, 토머스 아룬델, 조앤[1], 앨리스[2]가 있었다.

1359년 2월 17일에 제2대 맬트래버스 남작 존 맬트래버스의 딸 엘레노어와 결혼했다. 이외의 1377년 이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찍부터 군 경력을 시작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복무했을 가능성이 높다. 1377년 4월 9일 잉글랜드 원수로 임명되었고, 평생 연간 100파운ㄷ으를 받게 되었으며, 1379년에 2배로 늘어났다. 같은 해 8월 4일에는 잉글랜드 의회에 소환되어 아룬델 남작 칭호를 받았다.

1377년 사우샘프턴에 대한 프랑스 해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참여해 그들이 도시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같은 해 11월, 브르타뉴 공작 장 4세와 우드스톡의 토머스와 함께 프랑스군에 포위된 브레스트 포위 공격을 해제하기 위해 브르타뉴로 갔고, 1378년 초 브레스트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해 가을에 노르망디로 가서 셰르부르를 방어했다.

1379년 3월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브르타뉴 공작을 지원하기 위해 브르타뉴로 떠나기로 했다. 연대기 작가 토머스 워싱험에 따르면, 1379년 가을 사우샘프턴 인근에서 순풍을 기다렸을 때, 그는 부하들이 마음껏 날뛰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이는 그해 10월 26일 아룬델 남작의 부하들이 수녀원을 침범해 수녀들을 유혹하거나 강간했으며,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지역 교회에서 성배를 훕쳤으며, 많은 주민을 납치해 배에 태웠다는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가 창설되었다는 왕실 문건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출발한 함대는 도중에 격렬한 폭풍에 휘말렸다. 배에 억지로 태워진 수녀들은 배를 가볍게 한다는 이유로 배 밖으로 던져졌다. 그러나 선박은 아일랜드 해안에 난파되었다. 일부 기록에 는 스카리프에 난파됭었다고 하고, 또다른 기록에는 클리어 아일랜드 곶에 난파되었다고 한다. 이때 파괴된 배는 25척에 달했으며, 휴 칼블리 외 8명만 살아남았고 1,000명의 승무원 및 전사는 익사했다고 한다. 토머스 워싱험에 따르면, 존은 폭풍이 닥쳤을 때 난파될 것을 우려해 해안으로 가기를 거부한 부하들을 살해하고 억지로 끌고 갔다가 풍랑에 휘말려 익사했다고 한다. 시신은 3일 후에 해안가에서 발견되었고, 루이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1] 1347 ~ 1419, 제7대 헤러퍼드 백작 험프리 드 보훈의 부인.[2] 1350 ~ 1416, 리처드 2세의 이부 형제인 제2대 켄트 백작 토머스 홀랜드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