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제임스 에드워드 더글러스 (James Edward Douglas) |
출생 | 1898년 1월 12일 뉴저지 이스트뉴어크 |
사망 | 1972년 3월 5일 (향년 74세) 뉴저지 포인트플레전트 |
국적 | 미국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88cm |
등번호 | -[1] |
소속팀 | 해리슨 SC (1922-1923) 뉴어크 스키터스 (1923-1925) 뉴욕 자이언츠[2] (1925-1927) 폴리버 마스크맨 (1927-1928) 필라델피아 필드 클럽 (1928) 브루클린 원더러스 (1928-1929) 폴리버 마스크맨 (1929) 뉴욕 자이언츠 (1929-1930) 뉴어크 아메리칸스 (1931-1932) |
국가대표 | 9경기 (미국 / 1924-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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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축구인. FIFA 월드컵 최초의 클린시트 기록자다.2. 생애
2.1. 클럽
지미 더글러스는 9살 무렵 뉴어크의 센트럴 주니어스라는 클럽에서 축구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14년 간 아마추어 팀에서 주로 활동했고, 해리슨이라는 클럽에서 처음 ASL에 발을 들여놓았다.1923년 이후 각각 2년씩 뉴어크, 뉴욕 자이언츠에서 활동하였는데, 뉴욕 자이언츠로 옮길 때 계약 문제가 겹쳐서 잠시 뉴욕 자이언츠에서는 뛰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는 그 이후 당시의 많은 미국 선수들이 그랬듯 저니맨 생활을 하였고 1931년 뉴욕 아메리칸스에서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더글러스의 첫 국가대표 출전 기록은 1924년 올림픽에서 찾을 수 있다. 에스토니아를 만나 1대0 신승을 이끌어내며 MOM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다음 경기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였고, 결국 우루과이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채 3대0으로 패배의 쓴 맛을 보고 말았다.더글러스는 또한 초대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의 3경기에 모두 참가하였고 벨기에를 상대로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클린시트도 기록하였다.
그러나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부상을 입게 되었다. 당시 경기 규정 상 대체 골키퍼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 무릎 부상인지라 운동 능력이 크게 떨어진 더글러스를 빼고 다른 필드 플레이어에게 골키퍼를 맡기느냐, 아니면 부상 입은 채로 경기에서 아예 빠지느냐의 갈림길. 그래도 아예 못 뛸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고, 한 명이 빠지는 것 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더글러스는 경기를 끝까지 뛰었다. 이렇게 미국은 더글러스의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에게 6대1로 대패하였고 올림픽에서의 복수도 실패하였다.
월드컵 이후에는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4대3으로 패배하였고, 더글러스는 통산 9회의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과 3개의 클린시트 기록을 남겼다.
2.3. 은퇴 이후
더글러스는 1954년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고, 1972년에 뉴저지의 포인트 플레즌트에서 사망하였다.3. 뒷이야기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더글러스는 축구로 돈을 받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4. 수상
4.1. 클럽
- 미국 축구 리그 우승 1회: 1929(폴리버 마스크맨)
4.2. 국가대표
- 월드컵 3위 1회: 1930
4.3. 개인
-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