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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01:06:30

루이지 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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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리바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세리에 A 로고.svg
1966-67 · 1968-69 · 1969-70 · 1972-73
베스트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UEFA_Euro_1968.svg.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1969 Ballond'or
수상
잔니 리베라
2위
루이지 리바
3위
게르트 뮐러
1970 Ballond'or
수상
게르트 뮐러
2위
바비 무어
3위
루이지 리바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68
}}} ||
루이지 리바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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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역대 득점 순위 Top 3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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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colcolor=#000,#fff> 순위 선수 국적 득점
1 실비오 피올라파일:UEFA ITA.png 274
2 프란체스코 토티파일:UEFA ITA.png 250
3 군나르 노르달파일:UEFA SWE.png 225
4 주세페 메아차파일:UEFA ITA.png 216
4 조제 알타피니파일:UEFA ITA.png파일:UEFA BRA.png 216
6 안토니오 디 나탈레파일:UEFA ITA.png 209
7 로베르토 바조파일:UEFA ITA.png 205
8 치로 임모빌레파일:UEFA ITA.png 196
9 쿠르트 함린파일:UEFA SWE.png 190
10 주세페 시뇨리파일:UEFA ITA.png 188
10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파일:UEFA ITA.png 188
10 알베르토 질라르디노파일:UEFA ITA.png 188
13 가브리엘 바티스투타파일:UEFA ARG.png 183
14 파비오 콸리아렐라파일:UEFA ITA.png 182
15 잠피에로 보니페르티파일:UEFA ITA.png 178
16 아메데오 아마데이파일:UEFA ITA.png 174
17 주세페 사볼디파일:UEFA ITA.png 168
18 루이지 리바파일:UEFA ITA.png 166
19 굴리엘모 가베토파일:UEFA ITA.png 164
20 로베르토 보닌세냐파일:UEFA ITA.png 162
21 루카 토니파일:UEFA ITA.png 157
2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파일:UEFA SWE.png 156
22 필리포 인자기파일:UEFA ITA.png 156
22 로베르토 만치니파일:UEFA ITA.png 156
25 루이스 비니시오파일:UEFA BRA.png 155
25 카를로 레구초니파일:UEFA ITA.png 155
27 이스트반 나이에르스파일:UEFA HUN.png 153
27 에르난 크레스포파일:UEFA ARG.png 153
29 아드리아노 바세토파일:UEFA ITA.png 149
30 오마르 시보리파일:UEFA ITA.png파일:UEFA ARG.png 147
}}}}}}}}}}}} ||

칼리아리 칼초 영구결번
No. 11
}}} ||
이탈리아의 前 축구인
파일:Luigi Riva.jpg
이름 루이지 리바
Luigi Riva
출생 1944년 11월 7일
이탈리아 왕국 롬바르디아주 레지우노
사망 2024년 1월 22일 (향년 79세)
이탈리아 칼리아리
국적
[[이탈리아 왕국|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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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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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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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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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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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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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신체 180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행정가
소속팀 AC 레냐노 (1962~1963)
칼리아리 칼초 (1963~1976)
행정가 칼리아리 칼초 (1986 / 회장)
이탈리아 축구 연맹 (1988~2013 / 이사)
이탈리아 대표팀 (2006 / 기술 고문)
칼리아리 칼초 (2019~2024 / 명예 회장)
국가대표 42경기 35골[1] (이탈리아 / 1965~1974)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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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칼리아리 칼초 - 11번 영구결번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5. 사망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6.3. 수훈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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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별명은 천둥번개(Rombo di Tuono).

선수 경력 14년 중 13년을 칼리아리 칼초에서 보내면서 구단 최초이자 유일한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다.[2] 또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역대 최다 득점자로 등극하며 유로 1968 우승에 공헌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1962-63 시즌 3부 리그 소속의 레냐노에서 프로로 데뷔했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 1년만에 칼리아리 칼치오로 이적했다. 당시 2부 리그 소속이었던 칼리아리에서 리바는 주전 공격수로 나서며 팀의 승격을 이끌었고 세리에 A에서 첫 시즌 32경기 9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알렸다. 리바는 1975-76 시즌 은퇴하기 전까지 칼리아리에서만 활약했으며 비교적 약팀에 불과했던 칼리아리에서 득점왕을 4차례나 차지했다.

1968-69 시즌 리그에서만 20골을 작렬한 리바는 팀을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인 2위에 안착시켰다. 이어지는1969-70 시즌 21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리바와 30경기에서 11골만을 허용한 짠물 수비로 칼리아리는 구단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1970년 거함 유벤투스가 리바의 영입을 원했으나 본인이 거절했고 1975-76 시즌 밀란과의 경기에서 당한 부상 때문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칼리아리 자체가 워낙에 별볼일이 없는 클럽이기 때문에 칼리아리에서만 헌신한 리바의 클럽 커리어 역시 다른 역대급 공격수들에 비해 초라한 편이다.[3]

2.2. 국가대표

1965년 헝가리를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1974년 대표팀을 떠날 때까지 42경기 35골이라는 순도 높은 결정력을 보여주며 아직까지도 이탈리아 대표팀 사상 최다 득점자에 위치하고 있다.[4]

유로 1968이 첫 메이저 대회 참가인데, 리바는 대회 베스트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70년 월드컵에는 도멘기니, 보닌세냐와 함께 공격진을 구성하며 이탈리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1974년 월드컵이 그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으며. 대회 종료 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상위 호환격인 선수로 강력한 왼발 피니시가 주무기였다. 거기에 오른발도 못쓰는 편은 아니었고 몸싸움, 헤더 능력, 슈팅 테크닉 등 뭐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공격수였다. 거기에 주력까지 빠르니 수비수들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 괜히 천둥번개란 별명을 가진게 아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칼리아리의 경영진에 합류했고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이탈리아 대표팀 기술 고문을 맡기도 했다.

2005년 은퇴한지 30년이 지난 시점, 칼리아리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던 리바를 기리기 위해 그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인 11번을 영구결번 처리했다.[5]

2019년부터는 새로이 팀을 인수한 톰마소 지울리니 회장에 의해 명예 회장으로 선임되며 구단 레전드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다.

5. 사망

2024년 1월 22일, 사르데냐섬의 자택에서 심정지를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

국가대표팀에서 터뜨린 35골 가운데 17골은 월드컵 지역 예선전 + 본선 무대에서 넣은 것으로, 전세계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다. 또한 이탈리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3개의 다른 메이저 대회 예선전[6]에서 해트트릭(혹은 그 이상)을 작렬했다.

현역 시절 부상에 시달렸던 편인데, 1966년 월드컵 직전 포르투갈과의 친선전에서는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었고 1970년 월드컵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오른쪽 발목이 골절됐다. 은퇴 사유 또한 1976년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이 완쾌되는데 실패해서였다.

2019년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에서 선정한 60년대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베스트 50에서 1위에 올랐다.#


[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2] 그의 등번호 11번은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3] 그나마 함부르크 SV에서만 뛴 우베 젤러 정도가 우승이 거의 없음에도 역대급 공격수 취급을 받는다.[4] 이마저 다른 강팀의 최고 득점자가 기본적으로 50골 이상 기록한 것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란다. 이 기록이 얼마나 낮냐 하면, 월드컵 진출 3회 이하(없으면 볼드체)인 유럽 팀 중에서 슬로베니아의 즐라트코 자호비치(35)와 똑같고, 몰타마이클 미프수드(42), 북마케도니아고란 판데프(38), 북아일랜드의 데이비드 힐리(36), 에스토니아안드레스 오페르(38), 웨일스의 가레스 베일(41), 핀란드테무 푸키(39)보다 낮은 기록이다. 이탈리아 축구가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한 암흑기와, 그로 인해 수비 지향 축구로 전향한 것 때문에 얼마나 고득점에 취약한지 알 수 있다.[5] 인테르의 전설적인 선수인 자친토 파케티의 등번호 3번도 구단주였던 그가 사망한 이후 결번처리 되었다.[6] 유로 1968 예선-키프러스전 해트트릭, 1970년 월드컵 예선-웨일스전 해트트릭, 1974년 월드컵 예선-룩셈부르크전 4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