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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37:53

차병규

성명 차병규(車丙奎)
이명 차병규(車炳奎)
생몰 1884년 1월 7일 ~ 1945년 9월 9일
출생지 평안남도 대동군 김제면 이인리
사망지 평안남도 대동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병규는 1884년 1월 7일 평안남도 대동군 김제면 이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 김제면 원장시장에서 심응무(沈應武), 임이걸(林利杰), 고덕린(高德麟)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장터에 모이자, 헌병대는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하자, 사천 헌병주재소장 사토와 헌병보조원들은 달아났다. 이때 차병규 등은 달아나는 사토를 추격해 붙잡아 처단했고, 헌병보조원들도 찾아내 모조리 처단했다. 이후 그들은 시위를 벌이다가 잡힌 동지들을 전원 구출했다.

그러나 차병규는 사토를 쫓아가던 중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평양 기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살인, 방화, 소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지냈고 1945년 9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차병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