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부터 1969년까지 영국에서 수입해서 운용했다. 일부 아일랜드군 소속 처칠은 롤스로이스 미티어 엔진을 탑재하는 개수를 받았다. 1969년에 모든 처칠 전차를 퇴역했으며, 전투공병전차 및 교량전차를 제외하면 처칠 전차를 운용했던 국가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운용했다.
250여대 정도가 렌드리스로 공여되었다. 처칠 전차는 소련측에게 꽤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소련군 보고서에 따르면 "장갑 방어력은 독일 전차와의 전투에서 높은 평가를 발휘할 것이다. 40t의 덩치에 걸맞은 맷집을 가지고 있으나 무게로 인해 야전 회수와 정비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탑재주포의 위력은 KV-1에 맞먹는 수준이다. 속도와 항속거리는 동등한 수준이다."[1] 등의 적절한 평가를 받았다. 이 전차들은 다름아닌 "근위 독립 돌파 중전차연대"에 포함되어 쿠르스크 전투에까지 참여했고, 이중 47, 48 근위 독립 전차연대는 스탈린그라드 탈환작전에도 참가한 부대다.[2] 다만 처칠 전차는 전쟁이 끝난 뒤 "반공주의자 처칠의 이름이 붙은 전차다"라며 전량 폐기당했고. 냉전이 끝날 때까지 47, 48연대의 전차종은 비밀에 붙여졌다.[3]
[1] 속도는 KV-1이 카탈로그상 처칠보다 좋았으나, 실제로 야지에서 운용했을 경우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항속거리는 KV-1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는 외부연료탱크를 장착한 뒤의 수치다.[2] 소련군에서 근위는 전공 높은 부대의 명예칭호이다.[3] 비밀 해제 이전까지 공식 선전자료는 KV-1 전차였다고 전해졌다.[4] 드물게 6파운더가 달려있는 처칠 VII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