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성격도 3단계 변신을 거쳤다. 어려서는 조실부모하고 무서운 친할머니 아래서 그저 ‘네네’하며 수동적이고 눈물 많던 소녀였으나, 자라서는 정 많은 낙준을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려 나가다 잠깐이었지만 홀시어머니의 짧고 굵은 시집살이를 경험했다.
허나 그 시집살이가 부족했던 것인지 사고로 남편이 몸져눕게 되자 하루아침에 남편 대신 집안의 가장이 되어 풀꽃 같던 소녀적 천성이 점점 나일론 빨랫줄마냥 질겨지고 굳세어져 갔다. 현재는 험한 일수 바닥에서도 침 깨나 뱉고 다닐 만큼 말 그대로 ‘실전압축근육’으로 꽉 들어찬 백전노장의 파이터가 되었고, 본인의 굴곡진 삶과 일수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거리의 철학자가 되었다.
다년간의 일수 경험으로 자신만의 360도 전방위 우산 방어 기술을 구축할 만큼 잔머리도 꽤나 뛰어난 편. 그러다 나이 팔십에 죽음을 맞게 되고 남편이 기다리는 천국엘 가게 됐는데..
이게 웬일? 지가 말한 대로 이 나이 그래도 천국엘 왔더니... 낙준은 자기만 팔팔한 젊은 모습이다. 이런 망할 놈의 시츄에이션이라니...
굴곡진 삶에 비해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만년 소년. 일단 해숙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그것이 젊어 누운 자신을 대신해 가장이 된 해숙에 대한 미안함이든 욱했다 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해숙에 대한 두려움이든 간에 낙준 눈엔 해숙이 그저 이쁘기만 한다.
소싯적엔 잘생긴 얼굴 덕에 동네에서 깨나 인기가 있었지만, 신성일처럼 영화배우할 만큼은 아니었다는 게 정설. 가벼운 입에 비해 생각은 무거운 편이고 서글서글한 성격에 평판도 좋다. 죽어서 곧 찾아올 해숙을 위해 이쁜 집도 짓고 문패도 달아놓고 설레는 맘으로 기다렸건만...
꽃다운 나이의 해숙이 대신 팔순의 할머니 해숙이 와버렸다. 도대체 왜??? 살면서 못해 본 아내와의 하고픈 일들이, 같이 나누고픈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해숙은 기력이 달려 모든 일에 냉소적이다.
원래 해숙의 일수 고객 중 인성 끝판왕이었던 영애 아버지의 육아 포기로 평생을 해숙과 낙준을 부모처럼 여기고 자랐다. 다시 말해 해숙을 부모이자 스승처럼 따르는 해숙 집안의 업둥이(?)라고나 할까? 매점 강아지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해숙 옆에서 보고 배운 기술로 전투복인 용 점퍼만 걸치고 나서면 그날은 시장 좌판 다 쪼개지는 날이다. 하지만 점퍼의 불 뿜는 용 자수에 뜨거움에 지지 않을 만큼 사랑에도 진심인 그녀. 연애에 있어선 일명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에, 좌회전 우회전 없는 직진 쿨녀.
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알고 있는 갓파더적 존재이며 지상에서 망자들에 대한 염원들에 대신 답을 해주는 소원 수리자의 역할도 한다. 천국의 유일한 노인인 해숙에게는 유달리 격 없이 따뜻하게 대해 준다. 똑같은 얼굴을 한 센터장의 쌍둥이 형은 염라로 지옥을 관할하고 있다.
어렸을 적 미아가 되어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둔 불쌍한 영혼. 길을 잃으면 교회 앞에서 기다리라는 부모의 말을 기억하고 죽고 나서도 교회 앞을 전전하다가 어느새 목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사역자라는 일에 열의는 넘치지만 목사를 하기에는 꽤나 다혈질. 게다가 해숙이라는 만년노장과 붙는 말싸움에서는 백전백패여서 해숙과 목사의 시작은 소위 요새 말하는 ‘혐관’(서로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관계).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탓에 먹어본 것도, 해본 것도 제대로 없던 그가 해숙으로 인해 제2의 인생을 맞은 듯 온갖 경험들을 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