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Петербургская повесть[2]
1. 개요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19세기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푸쉬킨에 의해 1833년 10월 볼지노에서 집필되어 1834년 일부 발표된 서사시이다. 머리말, 서시, 1부, 2부 그리고 작가가 붙인 주석으로 구성되어있다. 서시에서는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찬양하며, 1부와 2부에서는 주인공 예브게니[3]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검열[4]로 인해 온전한 출판은 1917년[5]에 이루어졌다.부제에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이야기라고 붙여져 있듯이 이 소설의 배경이자 중심내용은 페테르부르크[6]이다. 표트르 대제는 1705년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천도했다. 모스크바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도시이지만,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을 향한 창을 내겠다는 욕망으로 세워진 인공 도시인것이다. 이곳은 지형도 그닥 좋지 않았고[7], 홍수가 자주 일어났다.[8] 자연력을 거슬러 세워졌지만, 자연력인 물 앞에 꼼짝없이 당하는 석조도시가 페테르부르크의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공성과 연관된 또 하나의 괄목할 만한 특징은 환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1830년대 문학서클의 말처럼 페테르부르크는 '공중에 매달린 도시.'이다. 아무런 근본없이 세워진 이 도시는 공중에서 갑자기 툭 떨어진것 처럼 신비한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암시된다. [9]
이 처럼 자연과 인공 또한 도시를 세운 차르와 그곳에서 고통받는 개인의 대립쌍이 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2. 줄거리
페테르부르크 콜롬나에 사는 가난한 하급 관리인 예브게니는 페테르부르크 바실리 섬에 사는 약혼녀 파라샤와의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엄청난 홍수로 인해 높이 솟아있는 사자상에 올라타게 되고, 약혼녀가 있을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홍수가 끝나고 찾아가보니 약혼녀의 집과 약혼녀가 휩쓸려간 상태였다. 예브게니는 광장에 서있는 표트르 1세의 청동기마상에게 삿대질을 한다. 그리고 청동기마상이 자신을 쫓아오는 환영을 보게 된다. 그때 이후로 그는 청동기마상을 쫄면서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네바강에 시체로 떠오르게 된다.3. 분석
서시에서는 송시처럼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것에 대해 '사랑한다'고 표현하면서 찬미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즉, 서시는 찬미와 아이러니적 요소 모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표트르 대제는 아프리카인인 푸쉬킨의 외증조부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을 러시아로 데려온 장본인이다. 간니발은 표트르 대제에게 총애받아 노예에서 해방되어 프랑스 유학을 가고 학문적인 성과를 높이 이루었던 학자였으며 노예 출신임에도 대제의 총애로 귀족이 되었다. 푸쉬킨은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푸시킨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혈통이야말로 소설에서 그가 비판하는 표트르 대제가 만들어준 것이다.[10]
이 점을 고려해볼 때, 푸쉬킨은 이 소설에서 이중적인 태도로 표트르 대제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페테르부르크를 세운 것과 개인의 행복을 파괴하게 만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다.
[1]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가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다. 남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이 표트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내세우기 위해 1778년에 세운 동상이다.[2] 작가가 붙인 부제이다. 뜻은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이다. 작중 내용에서 페테르부르크가 중심이 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3] 1830년에 완성된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과 이름이 일치한다. 하지만 그 예브게니와는 다른 모습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낭만주의의 잉여인간의 전형이라면, 청동기마상의 예브게니는 가난한 관리로 자연파의 특징인 작은 인간(Маленький человек)의 형상이다. 작은 인간의 전형은 푸쉬킨으로부터 태동하여 자연파 작가 고골에서 절정을 이룬다. 고골의 단편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바슈막츠킨이 대표적인 작은 인간이다.[4] 푸쉬킨은 유형시절부터 검열에 시달렸다. 심지어 1825년 러시아에 있었던 제카브리스트난 이후에는 황제가 직접 검열하기도 했다. 본인이 동의하기도 했지만. '예언자' 를 던졌어야 했어.[5]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출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6]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와 연관지어 읽으면 재미있다. 정말?.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의 도시기호학 논문을 추천한다.[7] 늪지대였다. 페테르부르크를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죽어갔는데, 그래서 뼈 위에 세운 도시라고도 불린다.[8] 실제로 1824년 기록적인 대홍수가 있었다. 이 사건도 창작의 배경이 된 듯 하다.[9] 하지만 여전히 삐까뻔쩍하다. 월세가 90만원이라는 얘기가[10] 표트르 대제가 푸시킨의 외증조부 간니발을 총애하여 대부가 되어주고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유학보내서 학자로 만들어주고 귀족 직위까지 주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