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강윤(崔康潤) |
생몰 | 1901년 8월 9일 ~ 1959년 7월 2일 |
출생지 | 전라남도 함평군 |
사망지 | 전라남도 함평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강윤은 1901년 8월 9일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당시 서울 안국동에 거주했으며,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발발하자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3월 4일 김종현(金宗鉉)·채순병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의 참여를 호소하는 취지문 4백여매를 만들어 배부하였다. 다음날에도 계속하여 남대문역전 광장에서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펄럭이며 다수의 적포(赤布)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이다 3월 9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다 1959년 7월 2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최강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6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