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인 최승범 崔勝範|Choi Seung-beom | ||
출생 | 1931년 6월 24일 | |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1] | ||
사망 | 2023년 1월 13일 (향년 91세) |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아중요양병원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호 | 고하(古河) | |
직업 | 시인, 교수 | |
학력 | 남원농업고등학교 (졸업)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 석사 · 박사) | |
본관 | 삭녕 최씨 | |
가족 | 배우자 신일림(辛一林), 3남 최강섭·최가산·최영섭 | |
약력 |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지부장 한국언어문학회장 고하문예관장 전북대학교 교수 전주 UNESCO 상임이사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전북지부장 전라북도 도정자문위원 대한교원공제회 이사 전주지방법원 조정위원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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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이자 시인.2. 생애
전라북도 남원군 사매면 서고리 449번지에서 최성현(崔成賢)ㆍ홍덕순(洪德順)을 어버이로 출생. 여섯 살 때 벌써 할아버지 최장우(崔壯宇)로부터 추구(推句)[2]를 배우고 할머니로부터 고전 소설을 듣고 자랐다. 이듬해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소학(小學)을 배웠으며 훗날 그가 시인이 된 것이 바로 이러한 교육 덕분에 그 마음밭에 씨앗이 뿌려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948년 남원농업고등학교[3] 재학시 문예부 활동을 하며 문사의 꿈을 키웠고 결국 1949년 명륜대학(전북대학교 전신)에 입학하였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전 보병 제11사단에서 복무한 후, 전북대학교에 복학하여 학업에 열중하였다.1952년 전북대 초대 문리과대학장으로 온 시조시인 이병기에게 배웠고, 신석정에게서 시론을 학습했다. 1953년 전북대 학부를 졸업한 다음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학부 때부터 기자로 일해온 전북대학교 대학신문사 편집주임을 맡아 신문 제작에 능동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던 1958년 '현대문학' 6월호에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시조시 '설경', '소낙비'를 실으며 등단했다. 이후 교수가 되어 대학에선 후학 양성에 힘쓰는 동시에 고전문학 등을 연구했고, 1969년 지역 동인지 '전북문학'을 창간했다. 또한 전북대학교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보직을 합리적이고 원활하게 수행함으로써 대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그는 1996년 40여년간의 교수직에서 정년하였다. 이후 같은해 고하문예관 관장으로 부임했고 2010년에 고하문예관 자리를 한옥마을로 옮겼다. 그는 2020년대까지 원로 작가로서 시조의 맥을 이으며 문학계 활동에 전념했고 실제로 2021년 스물두 번째 시집인 ‘자투리’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