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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9:16:51

최진한

최진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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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한문배
(1984)
김광훈
(1985)
박항서
(1986)
정해성
(1987~1988)
최진한
(1989~1990)
<rowcolor=#ffffff> 6대 7대 8대 9대 10대
이영진
(1991~1992)
구상범
(1993)
최영준
(1994)
윤상철
(1995)
이영익
(1995~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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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영
(1997)
김봉수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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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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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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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2001)
손현준
(2001)
최윤열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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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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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
(2007~2008)
김치곤
(2009)
박용호
(2010~2011)
하대성
(2012~2013)
김진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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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진
(2015)
차두리
(2015)
오스마르
(2016)
곽태휘
(2017)
신광훈
(2018)
<rowcolor=#ffffff> 31대 32대 33대 34대 35대
고요한
(2018~2020)
기성용
(2021~2022)
나상호
(2022)
일류첸코
(2023)
오스마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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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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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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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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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파일:최진한.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최진한
崔震澣 | Choi Jin-Han
출생 1961년 6월 22일 ([age(1961-06-22)]세)
경상남도 진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삭녕 최씨 (朔寧 崔氏)[1]
신체 174cm
학력 진주중학교 (졸업)
진주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2]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럭키금성 황소/LG 치타스 (1985~1991)
유공 코끼리 (1991~1992)
감독 관동대학교 (1993~1999)
대한민국 U-23 대표팀 (1999~2002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1999~2002 / 트레이너)
대구 FC (2003 / 수석코치)
전남 드래곤즈 (2005 / 수석코치)
FC 서울 (2007~2009 / 유스 감독)
FC 서울 (2010 / 2군 감독)
경남 FC (2011~2013)
부천 FC 1995 (2014~2015)
옌볜 베이궈 (2018)
중국 U-25 대표팀 (2019~2020 / 코치)
네이멍구 중여우 (2020)
위난 유쿤 (2022)
국가대표 11경기 (대한민국 / 1984~1987)

1. 개요2. 선수 경력
2.1.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경남 FC 감독3.2. 부천 FC 감독3.3. 중국 무대
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경남 사천시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사천FC 최진한 축구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를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고 전국대회 우수상까지 받으며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발휘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연세대와 명지대에서 제안이 왔다. 하지만 “용꼬리보다 뱀 머리가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최 감독은 명지대를 선택, 명지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5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입단 첫해에는 5경기 출장에 그쳤으나 1986 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LG에서 프로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7시즌 동안 142경기 21골을 기록하며 팀의 K리그 2회 우승에 기여하였다. 특히 1990 시즌은 27경기 6골 5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MVP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1991년 여름 유공으로 이적하였고, 18경기 12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고, 1992년 17경기에 나서 2경기 1도움을 기록하였고, 1992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2.1. 국가대표 경력

1981년 명지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인정받은 최진한은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988년까지 11경기에 출장하였으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활약했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1993년 관동대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대표팀 트레이너와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았는데, 이때 그는 당시 성인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히딩크 감독을 만나게 되고, 히딩크는 최진한의 훌륭한 멘토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최진한은 올림픽팀 코치라 히딩크 감독과 함께 일할 수 없었만 그는 용감하게 히딩크 감독을 찾아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 배울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는데, 히딩크 감독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최진한은 대표팀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게 됐다.

히딩크 감독이 하는 전술은 정말 새로웠는데 체계적인 선수 관리, 계산된 체력 운동, 전술 등은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고, 히딩크 감독이 그의 제안을 승낙해 그의 지근거리에서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훗날 그는 회상했으며, 최진한이 41살에 만난 히딩크 감독 덕분에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대구 FC의 코치를 맡은 뒤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스페인 프로 축구팀에 있으면서 선진 축구 전술과 관리를 배웠다.

그리고 2004년 유학에서 돌아와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전남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를 맡았으며 전남에서 허정무 감독이 수석 코치를 맡기며 많은 권한을 줬고, 히딩크 감독에게서 선진 축구를 배웠다면 허정무 감독에게선 한국형 축구를 배웠다고 한다.

2007년 FC 서울의 18세 이하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당시 손흥민 선수를 만났다고 하며,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와는 대학 선후배 사이이었던 터라 손흥민 중학교 때부터 눈여겨보고 고등학교 진학과 FC 서울 2군 훈련을 돕는 등 멘토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FC 서울의 2군팀 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였다.

3.1. 경남 FC 감독

파일:20120925.01010114000001.01L.jpg

2011년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며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첫시즌이었던 2011년은 8위로 마쳤고, FA컵에서는 준우승이라는 파란을 일으키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2012시즌에는 윤빛가람, 김주영 등 주축 멤버들의 이적으로 전력이 크게 약화됐을 뿐더러 메인스폰서 STX가 매년 40억 원씩을 후원하던 금액을 대폭 삭감하고, 경남도청은 구조조정을 이유로 코치진에게 사직서를 내게 하고, 2군 선수단도 없앤다는 말까지 흘러나오는 등 팀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으며,설상가상으로 8월 들어 5경기를 남겨두고 1무 2패에 그치며 상위그룹 자력 진출 가능성이 어려워지는 듯 했지만 스플릿 라운드 이전 마지막 경기인 광주 FC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리그 8위로 올라서며 극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진입했다.[3]

이렇듯 열약한 경남을 이끌고 준수한 성과를 선보이자 이에 홍준표 구단주는 최진한의 지도력을 인정, 2013시즌 1년간 경남 지휘봉을 더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3 시즌 팀이 하위권으로 쳐지자 2013년 5월 22일 성적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였다.

3.2. 부천 FC 감독

2014년 2월 5일 부천 FC 1995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부천 구단은 곽경근 전 감독의 선수 선발 비리 문제로[4] 팬들과 구단 그리고 선수단 모두 혼란에 빠졌던 상황이었고,이런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어떻게 추스를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2014시즌 초 유진회 골키퍼 코치가 선수를 폭행해 퇴진하는 사건이 터지며 선수단 기강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해당 코치가 기존부터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제대로 된 조치나 제재 없이 방관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부천 구단이 긴급운영위원회를 열고 사건의 책임을 물어 최진한 감독을 경고조하기도 했다.#

또한 성적까지 부진하며 정규리그 36경기 중에 6승 밖에 거두지 못했고, 승점은 30점도 넘기지 못하는 부진한 결과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으며, 2015년에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그 해 5월 29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3.3. 중국 무대

이후 2018년 왕선재 감독의 후임으로 옌볜 베이궈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2018년 말 과거 올림픽 대표팀 코치 시절 인연이 되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중국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부임하며 다시 한번 히딩크 사단에 합류하였지만, 히딩크 감독의 경질과 더불어 코로나 19 확산으로 훈련을 하지 못하자 2020년 2월 귀국했다.

파일:2020090201000213900010771.jpg

2020년 9월 중국 갑급 리그 소속 내이멍구 중여우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같은 중국 청소년 대표팀 코치였던 이운재최진철을 코치로 데려왔다.

하지만 2021년부로 팀이 해체되면서 팀의 마지막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

4. 여담

파일:20120925.01010114000001.03L.jpg

[1] 부사공파 23세 진(震) 의(義) 진(振) 항렬.#[2] 석사 학위 논문: 蹴球競技에서 勝負킥과 패널티킥의 防禦를 위한 GK의 效果的인 準備姿勢에 관한 硏究(1986)[3] 그것도 시도민구단 중 유일하게 상위 스플릿에 이름을 올렸다.[4] 이는 누명으로 밝혀졌지만 곽 감독은 해당 사건으로 이미지가 크게 나빠져 프로 무디에 못 돌아오고 대학교 감독으로 생활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