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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웹소설 축구재능 다 내꺼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2. 주인공
- 우호영
줄거리에서 설명한대로 전생에서 축구를 포기하고 후회속에 살다 2016년에 친구들과 우천 시합중 벼락에 맞고 사망했으나 탐욕의 악마 마몬의 거래에 응해 14년전으로 회귀해서 탐의 이능으로 수많은 현역, 은퇴 선수들과 다른 스포츠 선수들의 재능을 탐해서 성장한다. 그 결과 최후에 그간 탐하고 성장시킨 재능들이 통합되어 GOD 등급인 축구(G)가 된다. 그리고 그후로도 재능을 꾸준히 탐한 끝에 탐의 능력으로 상대의 재능을 성장시킨후 탐할 수 있게 되었다. 클럽 경력[1]은 브라질 상파울루 FC 유소년팀(U13→U15) →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CF 유소년팀 후베닐 B → 레알 마드리드 CF 카스티야(2군) → 레알 마드리드 CF 1군(2007 ~ 2009) → 영국 맨체스터 시티 FC(2010 ~ 2014) → 레알 마드리드 CF(2014 ~)다. 엘 클라시코 10연승이라는 전율적인 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중간에 맨시티로 이적한 건 라몬 칼데론이 무리한 영입[2]으로 팀의 재정을 말아먹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팔아넘긴 것이다. 이에 열받은 우호영은 이적한 6개월 뒤 바이백 조항을 거부하고 2014년까지 맨시티와 재계약을 했고, 나중에 칼데론이 축출되고 호르헤 발다노가 단장이 된 레알 마드리드가 무려 5억 유로[3]를 제시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장했기에 내심 금의환향을 하고 싶어하던 우호영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 우호영의 열렬한 팬이던 만수르의 허락을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화려하게 귀환한다. 사실 호영은 다양한 재능을 탐하기 위해서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저니맨을 생각하고 있었는데[4] 어쩌다 보니 마드리드 원 클럽 맨이 되었다.
본래 한국인이었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계속해서 수작을 부리고 이에 질린 호영은 국대 은퇴 선언후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 피파의 제프 블라터 회장의 비리를 뿌려 피파 차기 회장에 도전하려던 정현성을 물먹이고 스페인으로 귀화한다.[5][6] 스페인왕립축구협회와 스페인 왕실은 축구선수 우호영을 위해서 어떤 축구를 할 지, 우호영의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지와 참가할 수 있는 대회 등 우호영이 스페인에 귀화했을 때 축구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그저 호영을 대한축구협회에 묶어두고 유명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참고로 귀화 에피소드는 파벌과 편파판정에 시달린 끝에 일본으로 귀화한 추성훈의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 둘 다 한국 스포츠계의 문제로 귀화를 선택한것이기 때문. 스페인은 회귀 전과는 다르게 2008 유로와 2010 월드컵에서 모두 독일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승에 목말라있었고, 레알 마드리드와 맨시티에서 압도적인 공헌도를 보여준 우호영의 귀화에 매우 적극적인 상황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로도 출전[7]해 100m 경기에서 그 우사인 볼트를 이기고 볼트의 세계 신기록 9.58초를 9.4초로 박살낸다.[8] 유로 우승 + 올림픽 축구 금메달 + 올림픽 육상 100m 금메달을 수상한 공로로 스페인식 이름 호슈아[9] 우(joshua woo)를 받고 스페인 왕실의 결정으로 펠리페 왕세자가 진행한 서임식에서 후작 작위를 받는다. 화가 살바로드 달리,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동급이 된 것.[10] 이후 유로 2연패+월드컵 2연패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호영이 워낙 사기캐다 보니 상대팀은 선수든 감독이든 호영을 어떻게든 짓밟아 보려고 발악하지만 그 모든게 "아이고 의미 없다~" 수준. 라리가에 비해 몸싸움이 거친 영국 EPL은 물론이고 EPL도 한 수 접어주는 거친 몸싸움으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리그 선수들도 매번 물 먹인다. 대놓고 담그려는 수준의 살인 태클이 들어와도 가볍게 도망가니 상대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데 행여라도 살인 태클 시도를 하는 순간 시전자는 교묘하게 보복 당하고[11] 팀은 필패한다. 심지어 호영 하나 잡으려고 게겐 프레싱의 핵심인 4면 압박을 넘은 6면 압박이 2012년 유럽 챔스 결승에 튀어 나올정도로 전술 발전 속도가 빨라진다. 그럼에도 그런 전술 발전을 죄다 씹어먹고 미친 활약을 선보이는 우호영 때문에 은퇴한 선수나 현역 선수나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우호영을 상대로 이기는건 불가능하다.' 이다. 감독들 입장에선 '우호영을 적으로 만나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자.' 가 공식이 되어 버렸다. 특히 2012 유로에서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 안토니오 카사노, 안드레아 바르잘리, 다니엘레 데 로시가 대놓고 호영을 담그려고 살인 공격을 시도하지만 전부 빗나가고 심지어 카사노는 야야 투레처럼 면상에 강 슛을 맞고 그 공이 굴절되는 바람에 골까지 내줬다.[12] 이 살인 공격은 이탈리아 국대 감독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지시한 내용인데 호영과 한번 만나서 박살 나본 젠나로 가투소,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지안루이지 부폰이 안 하는게 낫다고 조언했지만 트라파토니는 무시하고 강행했고 결과는 당연히 4대 1로 참패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실력적으로 워낙 넘사였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2년차부터 라커룸에서 영향력이 점점 높아졌고, 2010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선 3주장, 이적 후 차기 시즌 과르디올라 감독 선임 후의 맨시티에서는 주장을 역임하고 선수들을 실력으로 휘어잡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간혹 우호영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엇나가는 선수들[13]이 있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점차 우호영의 플레이를 보조하는 쪽이 더 좋다는 걸 깨닫는 건 클리셰 수준.[14]
워낙 많은 재능을 탐하다보니 호영의 공식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15]지만 윙어, 윙백,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까지 다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맨 시티 초반엔 뱅상 콤파니가 아예 호영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수비를 하는 어이 없는 광경이 나왔다.
별명은 회귀 전엔 호빵, 회귀 후엔 빵호. 둘 다 이름에서 유래한 별명이다.
호영은 자신이 재능이라곤 없을 줄 알았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불타오르는 투지, 투철한 프로의식, 꺾이지 않는 대담함,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 예술적인 창조성, 예리한 통찰력, 꺼지지 않는 승부욕을 발현시켰다. 첫 발현 당시 투지는 (A-) 프로의식과 대담함, 집중력은 (A+), 창조성은 (S-), 통찰력, 승부욕은 (S+)로 발현되었다.
하도 미친 활약을 선보이다 보니 심심하면 도핑 테스트를 하지만 당연히 한번도 걸린적이 없다.
3. 호영의 주변 인물
- 우황선
호영의 아빠.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한다. 작중 우호영이 큰 돈을 벌게 되면서 아들의 권유로 퇴사후 작은 축구교실을 여는데 사실상 애들 맡아주는 탁아소 같은 곳이었지만 아들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유명한 유소년 축구선수 양성소로 성장한다.
- 김희선
호영의 엄마. 그녀의 부모는 스페인에 거주중이다. 덕분에 호영이 추후 레알 마드리드로 가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으나 형편이 되지 않아 포기했지만 성공한 장남 덕에 다시 디자이너의 길을 걸으며 아들의 등번호를 가져온 Y10라는 브랜드를 론칭한다.
- 우호일
호영의 남동생. 호영이 2002년으로 막 돌아왔을때 아기였다. 나이 차이는 호영이 15세의 나이로 베이징 올림픽 나갈때 8살이었으니 7살. 워낙 등장이 적어서 존재감은 희미하지만 세계적인 유명 선수가 친형이라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 김재겸
호영&호일의 외할아버지. 스페인 마드리드 거주중. 덕분에 호영이 레알 마드리드로 갈때 문제가 없었다.
- 이문희
호영&호일의 외할머니.
- 모니카 스토키
호영이 브라질의 상파울루 FC 유소년팀에 입단했을때 한국의 태릉 선수촌과 같은 타운 빅토리아 헤시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소녀. 리듬 체조 선수 지망생으로 이때의 인연으로 커플이 된다. 훗날 호영의 전담 에이전트 지울리아노 루치의 결혼식날 호영과의 잠자리에서 임신후 호영과 결혼한다.
- 지울리아노 루치
호영의 에이전트. 유로 엑스퍼트 에 피알디(Euro Export e PRD Ltda)의 대표. 호영의 장래성을 눈여겨보고 호영의 전담 에이전트가 된다. 이후 호영이 어딜가든 함께 했고 훗날 레알 마드리드 구단의 메디컬 테스트 팀 닥터 아리아나와 속도 위반으로 결혼한다. 결혼 선물로 호영에게 스페인의 작은 섬을 증여 받는다. 담당 선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 패션 문외한인 그가 단지 호영의 다음 튜터링을 해줄 선수를 섭외하기 위한 밑 작업으로 선수들의 부인들이 참석하는 패션쇼에 참석하려고 패션을 골 빠지도록 공부해서 친분을 쌓았다. 호영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면서 그의 에이전시도 인기가 올라가서 많은 선수가 소속되기 시작했다.
- 마몬
탐욕의 악마. 친구들과 우천 경기중 벼락을 맞고 즉사한 호영에게 나타나서 시간 회귀와 탐의 이능을 준다. 사실 마몬은 육신을 얻고자해서 호영이 처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탐의 이능을 줬지만 이전대의 사람들은 초월 단계에서 부조화를 견지디 못하고 미쳐버려 파멸해서 계속 실패해왔다.
4. 축구 선수
4.1. 한국 선수
늘 그래왔듯 한국선수는 이름을 살짝 변형해서 등장한다. 초상권 문제인듯.- 차범곤
차붐, 갈색 폭격기로 유명한 차범근이다. 호영이 가장 처음으로 본 레전드 등급 재능인 차붐의 허벅지(L)의 소유자. 아들 차두림과 함께 호영의 첫 스승으로 멘탈에 관한 조언도 해주었다. 특히 축구를 해야지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해주었는데 덕분에 재능을 탐하기 위해서 성적에 목 말라 있던 어린 호영은 깨달음을 얻고 이후 다른 선수들에게도 경쟁보단 어린 시절 즐겁게 하던 축구를 해야 한다고 차범곤의 가르침을 전파한다.[16]
- 차두림
차미네이터 차두리다. 호영이 U등급 재능 차미네이터의 치고달리기를 탐했다. 이후 호영이 FC Dream 프로젝트에 참가해 독일에서 재회하는데 그 사이에 급성 노화가 와서 호영을 놀라게 했다.
- 박지석
두개의 심장 박지성. 소속 팀과 리그도 달라서 만날 기회는 적었다. 월드컵에서 국대에서 똥군기를 뿌리 뽑는것을 주도하면서 호영과 친하게 지낸다. 이후 맨시티에 이적한 우호영의 상대로 경기에서 만나나 이미 절정에 오른 우호영을 상대하는 것은 버거웠고, 맨유의 패배를 막지 못한다.
- 윤정호
호영의 어릴적 친구. 전생에서는 차범곤 축구대상을 받을 정도에 박주형의 계보를 이을 선수로 평가 받았으나 부상으로 은퇴한 선수. 회귀 후 호영이 가장 먼저 재능을 탐한 사람으로 축구영재(B)와 꽤나 묵직한 중거리 슛(C)를 탐했다. 인성이 글러먹었는데 전생에서도 호영을 무시했고 회귀 직후 어린 시절 같이 축구하고 호영이 재능을 탐한 후 컵떡볶이[17]를 쏘려 했지만 니네집 거지인데 안 혼나냐고 하는 바람에 호영을 열받게 해서 백원짜리 하나 받고 끝난다. 이후 호영이 세계적인 대선수가 되는것을 보며 열등감이 터진 끝에 부모님을 졸라 독일 유소년 아카데미로 유학을 가고 거기서 성장한 끝에 볼스프부르크에 입단하고 구지철의 지도를 받으면서 자연스레 홍영보의 눈에 들어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한다. 하지만 열등감에 차 있던 탓에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동창인 우호영은 뼛속까지 외국인이며 더 이상 같은 국민으로 생각 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고 경기장에서 호영에게 배신자[18]라고 깐 탓에 한국축협과의 관계 악화로 한국 국적을 버린 호영을 분노하게 해서 한국 국대는 8대 0이라는 야구 스코어로 참패 당한다. 결국 참패의 후유증으로 영국과의 3·4위전에서도 대패한다. 아마도 해당 사실이 발굴되면 엄청나게 까였을듯.
4.2. 해외 선수
- 지네딘 지단
아트 사커의 창시자, 필드위의 마에스트로인 그 지단이다. 호영의 두번째 튜터 선생으로 호영의 열정에 감동해서 은퇴를 미루고 더 오래 뛴다. 다들 아는 유명한 사건인 지단 박치기는 호영이 세바스티안 지오빈코를 도발해서 박치기를 당한적이 있다는 일화를 들려줌으로서 깨달은게 있는건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지만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넌 경기 끝나고 보자고 경고를 날리고 끝나서 지단 박치기는 사라졌다.
- 후안 로만 리켈메
마지막 10번 (El Ultimo Diez), 최후의 클래식 플래이메이커, 현대 축구의 반역자. 호영이 카카의 재능 황태자의 플레이메이킹과 리켈메의 반역자의 플레이메이킹을 탐해 월드 등급인 무결의 플레이메이킹으로 합성한다. 타이틀 재능은 리켈메의 플레이 스타일을 총평하는 [현대 축구의 반역자]다.
- 카카
황태자 카카 맞다. 호영이 상파울루 FC에 있던 시절 첫 튜터 선생으로 호영을 지도했다. 그 덕에 호영은 카카의 가르침을 받고 카카의 재능 황태자의 플레이메이킹을 탐해 그전까지의 섀도우 스트라이커에서 플레이메이커로 포지션을 바꾼다. 원래는 호날두와 함께 갈락티코 2기 대상으로 영입되었어야 하나, 새로 부임했던 칼데론 회장이 카카를 영입하지 않아 계속해서 AC밀란 소속으로 남게 된다.
- 미하엘 발락
중원사령관으로 유명한 발락이다. 신성그룹의 후원을 받은 차범곤과 대한축구협회가 추진한 프로젝트 FC Dream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독일로 해외원정을 갔을때 만났다. 호영이 중원사령관의 다재다능을 노렸는데 습득 조건이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5득점 기록, 4대륙 유소년 대회에서 공격 포인트 2점 기록, 발락의 노하우 전수 받기로 상당히 어려웠으나 2경기 도합 4득점 이후 승부차기에서 넣었던 골이 득점으로 인정되어 조건을 모두 만족해서 재능을 탐한다. 이 중원사령관의 다재다능 덕분에 재능의 그릇이 커져서 다양한 재능을 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19] 그후로도 꾸준히 재능을 단련한 결과 4년만에 SU 등급의 반코트를 장악하는 다재다능으로 성장 시켰다. 이 재능이 성장하면서 재능을 탐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20] 훗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레전드 재능 올라운더의 다재다능함과 합쳐져 W+3 등급의 필드를 장악하는 다재다능함으로 성장한다.
- 마르셀 드사이
지네딘 지단과 같은 프랑스 출신 선수이자 바위같은 단단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부동의 바위 드사이다. 타이틀 재능은 [부동의 바위]. 몬디알 풋볼 몽테규 대회에서 처음 만났으며 자신을 알아보는 우호영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듯.[21] 이후 같은 몬디알 풋볼 몽테규 결승전에서 무사 시소코가 비매너 플레이를 하고 주심에게 항의하는등[22] 더러운 성질머리를 보이자 언론 인터뷰에서 시소코를 향해 '스포츠정신을 잃어버린 어린 양, 보듬어주기보단 확실한 훈육으로 가치관을 확립 시켜야 한다.' 라고 비판하고 호영은 '스포츠맨십과 소신 모두 지켰다. 그런 선수마저 없다면 축구계의 발전 또한 없을것.' 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가뜩이나 풋볼 몽테규 결승전의 행보로 프랑스 내에서 욕 좀 먹던 시소코는 자국의 레전드가 나서면서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2006년 U-17 유럽축구선수권 대회 출전 자격 박탈, 2007년 U-17 한국월드컵 출전자격을 박탈 당하고 나락에 처박힌다.
- 이케르 카시야스
레알 마드리드 CF의 골키퍼이자 스페인 국대의 골키퍼. 통칭 성 이케르(San Iker). 호영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선수다. 호영이 스페인으로 완전 귀화하고 첫 국대 소집에 나오자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이 호영을 향해 험담하던 중 끼어들어 멱살잡이까지 하며 입 닥치라고 경고한다.
- 리오넬 메시
FC 바르셀로나에서 오랜 시간 뛰었던 그 메시 맞다. 실제 리오넬 메시는 축구의 신이라 불리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발롱도르를 양분했고 요한 크루이프와 더불어 FC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레전드 선수지만 이 소설에서는 우호영에게 밀려 2인자로 남았다.[23][24] 아무리 활약해도 호영이 더 미친 활약을 선보이니 매번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25] 스트레스가 극심했으나 호영이 멘체스터 시티 FC로 이적 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맞붙고 패배한 뒤 그의 스승 호나우지뉴로부터 호영이 에덴 아자르에게 경쟁이 아닌 어릴적부터 좋아한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영이 어릴적 나는 너를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위로를 해주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지금의 한국인들에겐 노쇼 사태 이후 날강두로 전락한 그 호날두. 멘유에서 뛰다가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왔다. 호영을 견제했지만 이후 인정하고 라이벌로 삼는다. 실제 호날두는 메시와 함께 발동도르를 양분하며 메호대전의 주역이지만 여기선 호영이 너무 압도적이라 존재감이 매우 희미하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 그 자체라 불리는 스테파노는 호영에게 경쟁이란 급이 맞는 상대와 해야 하는데 호영은 이미 호날두 보다 위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 페페
레알 마드리드 CF 선수로 한때 필드에서 온갖 또라이 짓으로 인해 깡페페라 불린 그 페페다. U등급 재능 이름이 깡페페의 폭력성이니 말 다한 수준. 호비뉴와 친해서 호비뉴를 떠나게 만든 호영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졌지만 호영이 실력으로 보여주면서 인정한다. 깡페페라는 별명답게 하는 짓이 그야말로 크레이지 수준으로 호영이 U등급 재능을 탐하는걸 포기한 선수다.
- 호비뉴
초딩요 호비뉴. 애칭은 롭(Rob). 타이틀 재능은 [드리블의 귀재]호영이 오기전까지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잘 나갔지만 호영이 1군으로 올라온 후 자기 입지가 흔들리자 감독 베른트 슈스터에게 징징대고 플로렌티노 페레즈에게 징징댔지만[26] 이미 페레즈의 마음은 호영에게 기운터라 결국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다. 이후 호영이 라몬 칼데론의 정치질에 희생되어 시티로 오자 다시 예전이 반복되지만 그동안 멘탈등에서 크게 성장한 호영이 맨체스터 더비에서 호비뉴를 교체 투입 시켜달라 요청하고 호비뉴에게 "만치니도, 언론도, 주변을 의식하지 마. 축구를 해야지 남에게 끌려 다니면 안 돼. 그건 네가 즐겨 하는 축구가 아니야. 무엇이 진짜인지, 네가 무엇을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해봐." 라고 진심으로 조언해서 나아진다.
- 파벨 네드베드
지독한 노력 끝에 양발잡이가 된 노력의 화신. 타이틀 재능도 노력의 화신이다. SU 재능은 노력으로 이루어진 완전균형의 양발.
- 야야 투레
FC 바르셀로나가 06-07 시즌에 영입한 수비수. 08-09 시즌 챔스가 진행되는 중에 열린 엘 클라시코때 호영의 정강이 뒤를 노리는 살인 태클을 하지만 호영이 가볍게 피한후 1m도 안되는 거리에서 시속 150km는 될 법한 강슛을 쏴 투레의 면상에 공을 강타 시킨다. 덕분에 투레는 코피가 터진건 기본이고 입술과 잇몸이 다 찢어지는 바람에 잠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27] 추후 호영이 맨시티로 갔을때 시티로 이전한 상태라 다시 만난다.
- 제라르 피케
바르셀로나 소속 선수. 08-09 시즌 엘 클라시코이자 호영의 프로 데뷔후 두번째 엘 클라시코때 호영의 등 뒤에서 백태클을 걸었다가 안 그래도 야야 투레의 살인 태클로 열받은 호영을 더 열받게 한다. 심지어 본인은 다니 알베스와 더불어 퇴장 처리 되는 바람에 페페 하나만 빠진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팀원 수가 부족해서 공간이 남게 되고 분노로 파워업한 호영이 맹공을 퍼부어서 5대 0의 충격적인 점수로 털린다.
- 루이스 수아레스
핵 이빨 치아레스로 불리는 그 선수. 호영이 시티로 간 이후 경기에서 만났다. 호영에게 핵 이빨을 시전하지만 호영의 반격에 이가 부러졌다.
- 펠레
저주로 악명을 드높인 그 사람이다. 심지어 이 양반의 L급 재능을 탐하는 조건중 하나가 펠레의 저주 피하기라니 말 다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조별 예선 1차전때 호영의 멋진 경기와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운것에 감탄해 기립박수를 쳤고 이후 인터뷰에서 호영의 실력을 극찬했다. 이에 기자가 이것도 저주냐고 묻자 난 그런거 안 믿는다고 잘라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는데 불세출의 선수도 못 피해간 저주를 이 친구는 피해갈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에서 발현된 악취미였다.거 너무하시네...레전드 재능으로 축구황제의 완벽한 공격 감각이 있는데 누가 펠레 아니랄까봐 정말 역대급으로 어려운 조건이 산제해 있었다. A 매치에서 70골 이상 기록, 펠레의 저주 빗나가기, 월드컵에서 헤트트릭 3회 이상 달성등이 있었는데 그중 최악의 조건은 바로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호영이 한국인일때는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스페인으로 귀화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 마르코 마테라치
그 유명한 지단 박치기 사건을 만든 장본인. 저급한 트레쉬 토크의 달인. 다만 이 세계관에선 호영이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줘서 지단이 똑같은 도발을 당했음에도 넌 경기 끝나고 보자고 말로만 경고하고 끝났다. 이후 09-10 시즌 챔스 결승때 호영과 붙어서 똑같이 저급한 토크로 호영을 도발하나[28] 오히려 분노로 파워업한 호영에게 헤딩 경합 도중 어깨에 턱을 정통으로 맞고 잠시 혼이 나가서 결국 교체로 투입된지 10분만에 교체 아웃 당했으며 인테르는 탈탈 털려서 패배한다.
- 호나우두
축구황제. 첫 등장 당시 여러 사정이 겹쳐 축구에 의욕을 잃고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에 질려서 팀을 떠나고자 했지만 루치가 아내와의 인맥을 만든뒤 끝임없이 바람을 넣고 지단과 페레스도 바람을 넣어서 호영을 한번 보기나 하려고 했다. 사실 호나우두는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여러 차례받으면서 기량이 추락했는데다가 갑상선 기능 저하증에 걸려 체중이 자꾸 불어나는데 술과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그의 식습관, 거기에 애연가이기까지 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었다. 유부남임에도 여성편력도 화려해서 나이트클럽을 제 집처럼 드나들다가 파파라치에게 찍혀 곤혹을 치른적도 많았다. 축구에 흥미를 잃은 상태고 정치질에도 질려서 AC 밀란으로 이적하려 하고 남은 기간동안 적당히 활동하기로 한다. 그때 마침 막 레알 마드리드 CF 카스티야에 올라온 호영과 가벼운 연습 경기를 가지는데 같은 팀으로, 상대 팀으로 뛰면서 호영의 미친 재능을 보고 14살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오늘의 자신은 이겼지만 14살의 자신은 패배했음을 깨닫고 호영의 세번째 튜터링 선생이 되면서 더욱 더 어릴적 자신을 보게 되고 호영의 열정이 전염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던 열정이 되살아난다. 사실상 호나우두 재활 훈련이었던 셈. 호나우두는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하고 주치의의 소견대로 고칼로리 식단을 끊고 술담배를 서서히 줄여가며 불굴의 정신으로 나이트클럽도 끊었다. 그렇게 호나우두는 축구선수의 기술을 전수하면서 몸관리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29] 마지막 튜터링을 끝내고 AC 밀란으로 떠났다. 이후 AC 밀란에서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간 겪은 일을 허심탄회하게 풀면서 호영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린다. 이후 2011년 발롱도르에서 피파 푸스카스 상 시상자로 나와 호영에게 상을 건네준다.
- 파비오 칸나바로
“공은 내 앞에서 멈춘다.” 라는 명언을 남긴, 통곡의 벽과 같은 단단한 수비력을 보여준 수비수.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영에게 수비수 상대법을 가르쳐 주었고 호영은 SU 등급의 통곡의 벽을 쌓는 수비 위치 선정 재능을 탐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토대로 칸나바로의 제자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에게 크게 한 방 먹인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1군에서 처음으로 한 엘 클라시코에서도 칸나바로와 더불어 통곡의 벽 수비로 바르셀로나에 한 방 먹인다.
5. 감독
- 펩 과르디올라
현재 맨체스터 시티FC의 감독인 그 펩 맞다. 우호영과는 악연중의 악연이었다. 바르셀로나 B팀에서부터 그 악연이 시작되어 성인 프로팀까지 이어진다. 펩은 분명 명장이고 유럽 챔스나 국왕컵등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다들 알다시피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매치 엘 클라시코는 두 지역의 뿌리 깊은 지역 갈등까지 겹쳐 늘 살벌한데 이 엘 클라시코에서 매번 고배를 마시고 심지어 2008년 8월 취임후 국왕컵 2번 외엔 죄다 망해서 꾸레[30]들의 민심은 날이 갈수록 험악[31]해지고 결국 2010년에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사임함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해버린다. 호영 하나로 인해 회귀전 전관왕 바르셀로나의 시대가 사라진 것이다. 호영 역시 박수 쳐도 떠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은퇴를 안타깝게 여긴다.
그후 약 1년간 쉬었지만 라몬 칼데론이 돈 때문에 맨 시티로 팔아넘긴 호영이 그를 로베르트 만치니의 후임[32]으로 초빙하면서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33] 맨 시티의 감독이 된다. 물론 처음엔 우호영의 승리 제조기라는 굴욕적인 꼬리표도 그렇고 호영이 너무 독보적이라서 자신의 축구철학이 흔들리고 추구하는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잡아먹힐 것을 걱정했지만 호영이 펩 자신과 함께 축구관을 공유하고 배우고 싶으며 혁신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혀 시티로 향한다. 그리고 필드 위의 감독 호영과 벤치의 감독인 자신의 조합으로 호영이 시티를 떠나는 날까지 엄청난 기록을 연이어 써내려간다.[34] 호영이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돌아간 후엔 리그가 달라진 만큼 유럽 챔스외엔 마주칠 일이 없다.
자나깨나 축구만 생각하는 중증 축구 미치광이라 불릴 정도로 축구에 진심인 감독. 선수들의 식단과 스케줄까지 다 간섭할 정도라면 말 다했다. 다만 호영은 이미 1년에 마실 콜라의 양을 정해놓고 중요한 경기 전날엔 스파게티를 소스 없이 먹을 정도의 철두철미한 자기관리를 하는 선수라 펩이 유일하게 터치하지 않았다. 호영의 식단을 듣고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독한 녀석이었다는 독백은 덤. 바르샤 감독 재임 시절부터 우호영의 플레이를 깊이 연구해온 터라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은 우호영의 득점 창출 기회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제1목표로 수립하고, 이를 철저하게 구상한다. 선임 직후 우호영에게 주장직을 줄 것을 천명하였으며, 리빌딩을 하면서 우호영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선수 활용이나 전술 수립 등에 대해 우호영과 논의하는 등 자신보다 축구에 더 미쳐있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우호영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시티의 감독이 되고 호영과 친분이 깊어졌는데 호영이 한 토크 쇼에서 펩의 탈모 머리를 두고 '경기 전 헤어 스타일에 가장 신경을 쓰는건 과르디올라, 항상 거울 앞에 서 있으며 왁스와 빗질, 광 내기를 한다.' 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35]
- 알렉스 퍼거슨 경
헤어드라이어[36]의 장인이자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명언을 남기고 전세계 수많은 연예인및 공인들이 SNS상에서 실언및 망언으로 욕 먹을때마다 승리를 챙기는 전 맨유 감독 맞다. 호영과는 2008-2009 유럽 챔스 결승전에서 처음 마주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였는데 이땐 이겼다. 그러나 호영이 EPL 리그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변하는데 2010-2011 EPL 리그 38라운드에서 다시 만나는데 참패했다. 이후 2011 FA 커뮤니티 실드를 비롯한 맨체스터 더비마다 호영에게 참패하고 2011년 발롱도르 이후 매치 포 칠드런이라고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이 모여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하는 자선 경기 월드 투어를 할때 감독으로 선임되는데 이때 유일한 현역으로 들어온 호영의 엄청난 경기력을 아군으로서 체험하게 된다. 얼마나 호영에게 털렸으면 2011-2012 시즌 FA컵 결승에서는 체념해버렸고 은퇴후 집필할 자서전에 우호영 챕터를 따로 할당할 생각까지 한다.
- 베른트 슈스터
금발의 천사 슈스터. 호영이 마드리드 1군으로 올라갔을 때 마드리드를 담당하던 감독. 주제 무리뉴의 뻔한 언플에 걸려서 망신을 사기도 했지만 호영의 빠른 대처로 이미지 실추는 막았다. 라몬 칼데론이 취임하면서 루이스 스콜라리에게 자리를 넘긴다.
- 루이스 스콜라리
라몬 칼데론이 마드리드 회장이 되면서 슈스터를 밀어내고 들어온 감독. 본래 역사에선 한번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된 적이 없다. 굉장히 엄격해서 취임 인터뷰때 스타 플레이어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감독 말 안 듣는 선수는 그게 펠레라 할지라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할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때문에 칼데론이 실력으로만 주급을 책정하는 정책을 맘 놓고 펼칠 수 있었다.[37] 물론 그렇다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억압하거나 선수를 자신의 전술 내 역할에 가두는 것은 절대 아니라서 축구지능이 뛰어난 우호영과는 전술에 대해 논의하는 등 유연한 면도 있다. 그리고 사실 감독 말 안 듣고 자기 맘대로 하는 선수는 팀에 백해무익한 존재다.
- 주제 무리뉴
첼시 FC의 감독으로 유명한 독설가 무리뉴. 2008-2009 유럽 챔스때 레알 마드리드 CF와 만나게 되고 언플로 베른트 슈스터를 까내린다. 이에 걸려든 슈스터가 무리뉴는 감독의 수치라며 대차게 씹었고 당연히 뻔한 언플에 걸린 슈스터의 이미지만 엉망이 되었으나 호영이 빠르게 수습해서 그 이상의 타격은 막았다. 무리뉴 역시 호영의 발 빠른 대처에 고놈 제법이라며 감탄한다. 이후 펩이 떠난 FC 바르셀로나에 부임하나 무리뉴의 스타일과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고 성적 문제, 선수와의 갈등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고작 5개월 만에 잘렸다.
현실과는 다르게 우호영의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게 된 무리뉴가 과르디올라에 조언을 구한다거나, 과르디올라가 자신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에 부임한 뒤 엘 클라시코에서 된통 깨진 무리뉴에게 "호랑이 굴에 들어간 걸 축하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등 적대적인 관계로 흘러가지 않아서 서로 친분이 유지된 걸로 묘사된다. 이 후 맨시티에서 만치니의 후임으로 고려하려고 하나 우호영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 축구를 한다고 생각해 만수르에게 과르디올라를 추천한다.
6. 구단 관계자
-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CF의 15대, 18대 회장인 그 페레스다. 선수의 스타성과 인지도에 따라 주급을 책정한다. 작중에서는 08-09 시즌 종료 무렵 무리한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투표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라몬 칼데론에게 자리를 넘긴다.[38] 칼데론이 실각한 후 호르헤 발다노 회장의 고문으로 돌아온다. 애칭은 티노. 호나우두 같은 극소수나 부른다.
- 라몬 칼데론
현실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CF의 16대 회장이었던 그 사람 맞다. 다만 여기선 페레스가 연임에 성공해서 좀 더 늦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된다. 사업가 출신인 페레즈와 달리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이적 협상을 못해 선수를 너무 비싼 값에 사올 때부터 불안불안 하더니 선수의 주급을 오로지 실력과 스탯을 기준으로 책정하면서 선수단의 불만을 부른다. 특히 구단의 레전드인 라울 곤잘레스와 구티의 불만이 상당히 컸다. 물론 칼데론은 들은 척도 안하고 선수단의 불만은 스타 플레이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감독 말 어기면 펠레라도 선발 명단에서 날려버리는 감독 스콜라리를 통해 강제로 막아버렸다. 칼데론의 주급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훈련 등을 대충하면 스콜라리가 당연히 선발 명단에서 날릴 것이고 그러면 실력이나 스탯에도 문제가 생기니 자연스레 주급을 줄일 수 있기 때문. 첫 해에는 그래도 선수단이 유지되어 챔스와 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등 선방했으나, 두번째 해에 구단의 레전드인 라울과 구티가 스스로 구단을 떠나는 지경에 이르고, 그럼에도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팀의 주축인 우호영을 멘체스터 시티 FC에 6개월 바이백 조항으로 팔아넘긴다. 이는 칼데론이 취임후 페레즈가 벌려 놓은 사업이 제대로 안 되면서 재정에 타격이 왔기 때문. 호영 역시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 이딴 식으로 통수를 치는 것에 화가 났고 칼데론에게 라울이면 절대로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한마디 할 정도. 그리고 우호영을 팔자마자 바로 후폭풍이 왔는데, 상반기에 바르샤에 비해 승점을 엄청나게 벌어놨음에도 우호영을 판 뒤 호날두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공백이 생겼고, 팀의 성적이 떨어지자 분란이 생겼는데 라커룸 리더를 할 수 있었던 라울과 구티가 이미 나갔기 때문에 개판이 된 팀 분위기로 인해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체제에서 수석코치였던 티토 빌라노바가 임시 지휘봉을 잡은 바르셀로나에게 역전당해 무관이 되었다. 더구나 고작 12월까지 뛰었던 우호영이 라리가 득점왕이 된 것은 덤. 이 때문에 비난 여론이 심해지자 칼데론은 우호영의 복귀에 조급해졌는데, 이미 나가는 시점에서 칼데론의 정치질에 놀아나 그의 배만 불려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우호영은 칼데론이 있는 레알엔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고 맨시티와 재계약을 한다.
이 후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진이 벌어지자, 칼데론은 니가 저버린 베르나베우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며 베르나베우의 잔디를 규정 초과인 40mm 길이[39]로 만들고 원정팀 라커룸에 도청기를 설치하는 등 치졸하게 나가지만 호영이 전생에서 있었던 일을 토대로 도청기 설치를 눈치챘고 이를 역이용해 4:3으로 신승을 거둔 뒤, 2차전에서 0:3 참패를 안겨준다. 레알 마드리드의 탈락 이후 도청에 대해 폭로당하고 해당 시즌도 바르셀로나에게 리그 우승, 국왕컵 우승을 내주는 등 무관에 그치고 그 외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호르헤 발디노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난다.
-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
맨체스터 시티 FC의 구단주이자 부자의 대명사로 통하는 그 만수르다. 우호영의 축구를 보고 반해서 우호영의 팬이 되었다. 때문에 우호영에게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5골을 넣은 우호영에게 슈퍼카 15대를 선물로 주는 등 케이스 자체가 남다르다. 그리고 3자의 입장이 모두 들어맞아 우호영은 맨시티로 이적하게 된다.[40] 우호영이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원하는 선수나 감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하여 펩 과르디올라 감독[41]과 다비드 실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가레스 베일 등의 라인업을 영입[42]하여 멘체스터 시티가 EPL의 절대 1강이 되는 기반이 되었다. 우호영도 적극적인 만수르의 지원과 맨시티 팬들의 응원에 감동해 2013-2014 시즌까지 맨시티에 남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5억 유로 제안에 우호영이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비치자 쿨하게 이적을 승낙해주는 대인배.[43]
우호영이 한국 축협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우호영이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제프 블라터를 축출하여 자신이 지지하던 빈 함맘을 FIFA 회장으로 당선시켰고, 빈 함맘의 귀화법 개정 덕에 우호영이 스페인 국대로 합류할 수 있었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이자 명예 회장, 완전무결 올라운더 플레이어인 그 스테파노 맞다. 스테파노는 국적 문제로 월드컵을 못 나가서 평가가 낮은거지 올라운더 플레이어로서의 명성은 대단하다. 단독 대면에서 호날두와 경쟁하는 호영에게 경쟁이란건 급이 맞아야 하는거지 급이 낮은 상대와 하는게 아니라고 하면서[44] 자네는 호날두가 아니라 나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호영은 그 조언대로 하면서 스테파노의 레전드 재능 올라운더의 다재다능함을 탐하는데 성공해서 반 코트를 장악하는 다재다능과 합성해 필드를 장악하는 다재다능(W+3)으로 업그레이드시켜서 한층 더 성장한다. 칼데론의 삽질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야 하는 우호영에게 사과하였고, 우호영 역시 칼데론에게만 앙심이 있었을 뿐 레알 마드리드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 사과를 받아들인다.
- 요한 크루이프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토탈 풋볼의 창시자이며 FC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L급 재능을 탐하는 조건이 '독자적인 전술을 개발해 월드컵 결승전 진출하기.'로 되어 있다.유로 2012에서 호영이 보여준 모습에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다. 바로 우호영의 축구. 혁신이 되어가고 있는 그것이다." 라고 극찬했다.
-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갈문어, 갈기꾼으로 유명한 갈리아니. 칼데론이 자금 문제로 호영을 보내려고 하자 AC밀란으로 영입하려고 수를 쓰지만 호영은 이미 전생에서 갈리아니의 사기꾼 행적과 이 당시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막장 행보[45]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했다.
7. 축구계 관련 인물
- 조준형
한국축협 회장. 12세였던 우호영을 U-16, U-17 국대로 차출하는데 도움을 줬었다. 그러나 마냥 좋은 인물은 아니라 비리혐의 등도 있었던 인물이고, 우호영을 발탁한 것도 한국 축구계를 위함보다는 축협의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발탁한 것. FIFA 부회장이었던 정현성이 사임하면서 그의 라인이었던 축협회장 정현규 역시 동반 사임하자, 회장 대행이 되어 우호영의 귀화를 막고 다시 한국 국대로 돌아오게 설득[46]하려 하나 우호영은 이미 스페인 왕실과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 감독 델 보스케의 권유를 받고 귀화를 결정한 이후였다. 내민 조건도 한국 축구 협회에 묶어둘 것만 생각했었기에 이미 결정을 내린 우호영의 마음을 뒤집지 못했고[47], 이에 분노하지만 우호영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48] 이후 어찌저찌 회장직은 유지한 듯 하나, 우호영에 대한 앙심 때문에 런던 올림픽 4강에서 전력 상 비교조차 되지 않는 스페인전에서 (큰 점수차로 패배하면 비난 여론을 받을까봐) 전력을 쏟으라고 감독에게 주문을 넣었다가 대패하여 체력만 소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홈 이점을 가진 영국에게도 패배하여 노메달이 된다. 물론 이 대패의 원인에는 윤정호의 같잖은 도발도 있었다.
-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 비리로 얼룩진 남자로 호영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한국 축구계에 신물이 나 귀화를 생각하면서 전생에 2015년에 밝혀진 이사람의 비리를 시티의 구단주 만수르에게 자기 에이전트 루치가 알아냈다는 식으로 알려서 난리가 나게 만든다. 겉으로는 스위스 월드컵 3·4위 전때의 오심에 화나서 피파쪽 사람과 촘촘한 인맥망이 있는 루치에게 부탁→루치가 조사해옴→호영이 만수르에게 폭로→만수르가 아시아축구연맹 회장 무함마드 빈 함만과 함께 조사단을 꾸려 정보력과 자금력을 토대로 조사→아일랜드에 오심에 대한 입막음 비용으로 돈을 준 것 등 수많은 비리 사실이 드러남 순서다. 아무튼 이러한 비리가 드러나고 FBI 등의 수사기관의 표적이 된 블라터는 일찍 퇴임하고 빈 함만이 차기 회장이 되었다.
- 무함마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 회장. 호영이 블라터 회장의 비리를 만수르에게 알리고 만수르와 함께 조사하여 블라터를 완전히 박살내고 피파 회장 자리에 오른다. 이후 자신이 내건 공약대로 귀화법을 개정[49]해서 호영의 스페인 귀화를 돕는다.
- 정현성
국제 축구연맹 부회장. 피파 회장이 되려고[50] 우호영이 자기를 지지해 줄 것을 원하나 이미 칼데론의 수작을 겪은 호영은 정치적 희생양이 될 생각이 없었다. 우호영이 맨시티와 연장계약을 하자 자신을 지지할 것을 거절한 우호영이 혹시나 빈 함맘을 지지하는 제스쳐를 취할까 초조해진 정현성은 축협 회장이었던 정현규에게 호영을 강제로 모든A 매치에 차출시키라는 지시하는 치사한 수[51]를 쓰나 호영은 첫 매치를 치른 뒤 국대 은퇴를 선언한다. 우호영의 은퇴선언 당시만 해도 (제프 블라터가 연임을 할 것으로 짐작했으므로) 우호영이 스페인으로 귀화하려 해도 규정 상 스페인 국가대표로 뛰려면 2번의 월드컵을 건너뛰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를 믿고 갑질을 하려 했으나 우호영은 제프 블라터의 비리를 알고 있었고, 만수르와 빈 함맘에게 정보를 풀어 물증이 갖춰진 비리를 폭로당한 블라터가 축출당한다. 우호영의 은퇴 선언으로 인해 정현성에 대한 여론이 나락을 간 상황이라 단독 후보[52]가 된 빈 함맘이 회장에 당선되면서 피파 귀화법 개정을 추진하게 되어 한국 국적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에 최후의 발악으로 우호영의 귀화를 막으려고 치졸하게 여론전을 시도해보았으나 우호영에게 협박을 한 건들이 모조리 폭로당한 터라 여론은 우호영에게 우호적이었고, 비난 여론에 밀려 사임한다.[53]
8. 기타 스포츠 선수
- 라파엘 나달
스페인의 테니스 선수. 호영과 인간의 한계 돌파라는 주제로 나이키 광고를 찍는데 나달이 라켓으로 치는 공을 호영은 발로 받아서 넘기는 경이로운 랠리를 한다. 라켓을 안 쓰는 호영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 이 시점에서 탐해온 수많은 재능들로 강화된 호영은 무리 없이 랠리를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호영이 시저스 킥으로 급습하자 본능적으로 톱스핀을 제대로 먹인 포핸드샷으로 반격한다. 원래도 호영의 팬인데 랠리에서 보여준 호영의 경이로운 실력에 반해서 팬심이 더욱 깊어진다.
- 미하엘 슈마허
현재는 불운의 사고로 인해 은둔중이며 근황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전설적인 F1 레이서인 그 슈마허다. 페라리에서 들어온 자동차 광고를 함께 찍으면서 차원적 사고능력(A+3), 엄격한 신체 통제력(A+3), 천부적으로 타고난 경이로운 목 근육(SS+)을 탐하고 슈마허가 관람 오는 경기에서 2점차 이상으로 승리하며 공격 포인트 2점 기록을 달성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체시력(W+3)까지 알차게 탐한다. 그리고 덕분에 호영은 한층 더 강해진다.
- 우사인 볼트
단거리 육상 선수인 그 볼트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100m 부분에 출전한 호영에게 패배한다. 이후 점심에 치킨 너겟을 안 먹었으면 내 승리라고 추한 변명을 시전했다.
9. 연예인
- 김정국
터보의 맴버이자 지금은 예능으로 더 친숙한 가수 김종국이다. 2002년 MBS[54] 해피 선데이에서 기획·제작하는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 뛰어라 슛돌이에서 감독을 맡았다. 호영이 헬스맨의 탄탄한 근육(C)를 탐했다.
[1] 주급을 받는 선수로 뛰었다면 모두 포함한다.[2] 그것도 칼데론 본인이 변호사 출신이라 사업 감각이나 수완이 부족하여 적정가보다 훨씬 비싸게 + 팀의 재정 역량을 초과하여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으로 이들 중 주 전력이 된 선수는 많지 않았다.[3] 타 팀의 경우 최소 3억 파운드부터 제시했으며, 거액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리버풀과 아스날은 언론에 대고 구차하게 구애를 하는 실정이었다.[4] 일부 선수들은 재능을 탐하려면 반드시 그 선수가 소속된 팀에 들어가야만 했다. 다만 월드컵 같은 국가 대표 팀에 들어가면 조건이 바뀐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아 이니에스타가 작중 그 예시로 나온다.[5] 외조부모가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었고, 우호영이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5년 넘게 뛰었기 때문에 귀화 자체는 조건을 이미 만족하였다. 결정적으로 블라터가 축출되고 빈 함맘이 차기 FIFA 회장이 되어 귀화법 개정으로 바로 스페인 국대로 월드컵에 뛸 수 있게 되었다.[6] 정작, 우호영은 스페인 귀화는 당장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었다. 맨시티로 간 것도 단지 칼데론의 정치질에 화가 나서 간 것일 뿐 대한축구협회와 대립각을 세우겠단 의도는 없었는데, 회장이 되고 싶어하던 정현성 FIFA 부회장의 욕심과 그의 영향력 하에 조종당하는 대한축구협회의 개수작 때문에 이에 휘둘리고 싶지 않던 우호영이 블라터 축출로 귀화법을 개정할 기반을 마련한 뒤 스페인 귀화를 선택한 것.[7] 100m 한 종목만 출전했다. 축구 대표로도 출전했고, 애초에 우호영을 귀화하는데 호의적인 여론이 축구선수로서의 공헌도였기 때문에 200m와 같은 추가 종목에 더 출전하는 건 본말전도고, 혹시나 축구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여론이 뒤집힐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8] 이에 볼트는 점심에 치킨 너겟을 안 먹었음 내 승리라고 추한 변명을 늘어놨다.[9] 구원이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10] 다만 명예 작위인지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작위인지는 불명이나 아마도 호영만이 누릴 수 있는 명예 작위로 보인다.[11] 예시중 하나로 야야 투레가 있다. 투레가 바르샤에 있을때 08-09 시즌의 엘 클라시코때 호영에게 살인 태클을 시전했다가 실패후 보복으로 영거리에서 면상에 시속 150km는 나올 법한 풀 파워 슈팅을 맞고 쌍코피는 기본에 입술, 잇몸이 다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심지어 이때 호영은 한국 태권도 선수 김성민에게서 탐해온 각력 재능과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킥력, 디에고 포를란의 슈팅 능력, 차붐의 허벅지를 탐한 상태라서 인테르 전때 시속 154km라는 경이로운 속도의 중거리 슈팅을 날렸었다. 인테르의 거미손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가 공을 막았다가 속도와 파워에 밀려 공을 놓치고 새끼 손가락이 퉁퉁 붓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걸 영거리에서 맞았으니... 심지어 같은 경기에서 제라르 피케가 백태클로 호영을 저지했으나 투레의 건과 겹쳐 되려 호영을 열받게 해버리고 결국 5대 0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로 털렸다.[12] 카사노의 타이틀 재능 괴짜 판타지스타를 탐하는 조건이 카사노의 코피 터뜨리기였기 때문.[13] 레알 마드리드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시티 - 에덴 아자르/호비뉴, 스페인 국가대표 -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그에 해당한다.[14] 특히 공격수의 경우 우호영의 움직임을 보며 움직였더니 어느새 이걸 못 넣으면 축구 선수 자격이 없는 수준의 노 마크 찬스가 떡하니 배달되어서 깜짝 놀라는건 기본이다.[15] 메인 포지션은 소위 트레콰르디스타라 불리는 어드벤스드 플레이메이커. 서브 포지션은 폴스 나인.[16] 에덴 아자르, 호비뉴, 리오넬 메시가 대상이다. 단 메시는 에덴 아자르에게 이야기 하는걸 본 메시의 축구 스승 호나우지뉴가 말해준다.[17] 과거 많이 팔던 종이컵에 담아주던 분식집 떡볶이.[18] 사실 얼토당토 않은 것이, 정작 한국 축구팬들은 축협에게 갑질당할 바에 귀화하는 게 낫다는 것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이미 올림픽 메달로 군 면제가 된 상황이라 군 복무때문에 귀화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게 당연했다.(군 복무 관련해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우호영이 한국 최초 올림픽 축구 메달 수상, 아시아 최초 월드컵 3위, 아시아 선수 최초 골든볼-골든슈 수상 등 온갖 영예를 한국 국대에 안겨준 1등 공신이었기에 스페인으로 귀화해서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한국 국대로 뛰어도 이 이상의 업적을 더 거두기는 어려우므로 우호영을 응원하게 되는 것.[19] 실제로 재능을 탐할때 재능의 그릇이 확장되면서 재능을 탐하는 시간이 줄어 들었다. 물론 그 후에도 재능의 그릇이 부족해 지단의 예술적인 볼 컨트롤(SS+)를 완전히 탐하지 못할뻔 했으나 축구신동(S) 덕에 겨우 탐한다.[20] 차붐의 허벅지를 탐하는 중이었는데 탐하는 시간이 67일에서 32일로 줄어들었다.[21] 내심으로는 자신이 지단과 다르게 프랑스 대표팀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걸 서운하게 생각했었는데, 우호영은 립서비스로 첼시팬이라고 했던데다 자신을 바로 알아봐주었기 때문이다.[22] 그냥 항의 수준도 아니고 언어 폭행, 그러니까 막말 논란까지 나왔다.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으로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다가 옐로 카드로 끝날거 레드 카드를 받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제하기 때문에 필드에선 심판의 판정에 이의 제기를 해도 적정 선을 지켜야 한다. 근데 시소코는 막말까지 했으니...[23] 그도 그럴게, 원래는 바르셀로나에서 2009 6관왕 + 2015 트레블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게 되지만, 우호영의 등장으로 우호영이 있던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엘 클라시코 10연패 + 리그챔스 무관의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로도 우호영이 챔스에서 계속 우승해버리니 1인자로 지지해줄 건덕지가 없어졌기 때문.[24] 호영이 시티로 떠난 후 17경기 32골 기록을 세웠지만 호영은 자력으로 공을 높이 띄우고 시저스 킥으로 득점 같은 외계인 쇼를 펼쳐서 묻혔다. 오죽하면 2011년 발롱도르 시상식때 로타어 마테우스, 루드 굴리트가 메시가 챔스 우승을 했다면 이번 발롱도르 수상을 했을건데 아쉽다며 우호영이 은퇴하지 않는한 희대의 2인자로 남을거라고 할 정도.[25] 우호영에게 9연패를 한 뒤 10번째 엘 클라시코에서 4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했는데, 우호영이 무려 5골을 넣고 팀의 5:4 역전승을 이끌어서 묻혀버렸다.[26] 이전에도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달래줬지만 이젠 지친듯.[27] 심지어 이때 호영은 한국 태권도 선수 김성민에게서 탐해온 각력,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킥력, 디에고 포를란의 슈팅 능력, 차붐의 허벅지를 탐한 상태라서 인테르 전때 시속 154km라는 경이로운 속도의 중거리 슈팅을 날렸었다. 인테르의 거미손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가 공을 막았다가 속도와 파워에 밀려 공을 놓치고 새끼 손가락이 퉁퉁 붓는 부상을 당했었다. 그걸 영거리에서 맞았으니...[28] 호영의 여자친구 모니카를 건드리고 호영의 엄마 김희선을 건드는 등 아주 막 나갔다. 하긴 지단의 여동생을 창녀같다고 했으니 뭐...[29] 본인도 무릎 부상으로 기량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30] FC 바르셀로나의 팬을 지칭한다.[31] 엘 클라시코 자체가 패배하면 감독직이 위태로워진다고 할 정도로 단두대 매치다. 바르샤의 레전드였던 로날트 쿠만조차도 프리메라리가 엘 클라시코 3연패로 부진하자 경질당했는데, 작 중에서 펩 과르디올라는 2시즌 간 엘 클라시코 6연패를 당했다. 이렇게 엘 클라시코에서 매번 물 먹으니 아무리 팀의 레전드 출신이라도 이 성적이면 더 이상 감독직을 유지해줄 명분이 사라지는 것.[32] 만치니가 마지막 시즌에 UEFA컵 + 리그 + FA컵 우승으로 미니 트레블을 이루었으나 챔스에 약하다는 평가 때문에 구단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미니 트레블도 호영 덕에 달성한거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라 재계약을 할 건덕지가 더욱 없었다.[33] 현실의 펩은 2016년부터 시티의 감독이 된다.[34] 데뷔 시즌의 34승 4무 리그 우승 포함 전관왕, 차기 시즌 35승 3무로 최다 승점 갱신 등.[35] 동서를 막론하고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개그 소재로 쓰려면 친분이 있어야 한다.[36] 선수의 머리카락이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맞은것처럼 휘날릴 정도로 분노를 퍼붓는다는 말이다.[37] 선수단의 반발은 스콜라리 감독을 압박해서 해당 선수를 못 뛰게 만들면 된다는 말이었다.[38] 호영의 전생, 그러니까 현실에선 반대로 라몬 칼데론이 구단 총회에서 투표 조작 파문을 일으키는 바람에 자진 사퇴로 물러나고 2009년에 페레즈가 돌아온다.[39] 단순히 길이만 오버한 것이 아닌, 잔디 상태도 일부러 패싱 축구를 하기 힘들게 개판으로 놔뒀다.[40] 우호영은 마라도나의 능력을 탐하는 조건 중 하나가 UEFA컵 우승이 있었고, 만수르가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구단의 내실이 무너져가는 AC밀란보다는 맨시티에 마음이 갔다. 칼데론은 (6개월만 이적시킬 셈이었으므로) 챔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맨시티로 보내는게 그나마 덜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41] 맨시티 보드진은 포르투에서 트레블이라는 성적을 거둔 무리뉴 쪽에 좀 더 마음이 가 있었으나, 우호영은 자신의 전술관과 맞지 않는다며 만수르에게 과르디올라 감독을 추천한다.[42] 물론 이들의 영입에는 우호영과 펩 과르디올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의 설득에, 다비드 실바와 가레스 베일은 우호영이 자신과 같은 팀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에 바로 이적을 승낙하였기 때문.[43] 물론 만수르 입장에서도 우호영을 통해 이득을 본 게 많은데, 작 중 제프 블라터와 미셸 플라티니가 중동 자금의 유입에 대해 경계하는 실정(정확히는 경쟁자인 빈 함맘의 지지세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경계)이어서 맨시티가 알게 모르게 배척을 받아왔는데 이들이 모조리 비리 혐의로 축출당해 맨시티 역시 간접적으로 이득을 많이 봤기 때문.[44] 이 대목까지 듣고 호영은 동양인인 자신은 호날두에게 안된다고 하는 줄 알고 분노하다 이어진 말을 듣고는 벙찐다. 역시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45] 여자에 미쳐 주축 선수를 팔아치우는 미친 짓을 한 양반이다.[46] 개정된 귀화법은 FIFA 공인 국제대회 2회 출전 시 기존의 귀화법과 동일한 제한이 걸리므로, 어떻게든 우호영을 설득해서 월드컵이나 아시안컵만 뛰게 하면 우호영을 한국 국대에 묶어놓을 수 있다는 심보였다.[47] 델 보스케는 우호영에게 국대에서 맡을 역할과 축구관, 앞으로의 국제대회에 관한 얘기를 했으나, 축협에서는 애국 선전용 자료와 온갖 정치적인 혜택만을 얘기했다. 당연히 축협의 제안들은 우호영이 실력으로 충분히 타낼 수 있는 것들이기에 전혀 와닿을 리가 없었다.[48] 애초에 우호영은 한국축협 측의 방문을 계속해서 거부해왔었다. 마지막에 오라고 한 말도, "제안을 거절해도 좋으니 차 한잔만 하게 해달라고"해서 말 그대로 돌려주었을 뿐이었다.[49] FIFA 공인 대회 2회 미만 출전자에 한해 국적을 변경하여 출전 가능. 우호영이 월드컵만 대표로 뛰었고 아시안컵은 불참했기 때문에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50] 정확히는 블라터가 임기를 마친 후 차기 회장자리를 노렸다. 당장의 목표는 빈 함맘을 밀어내고 부회장이 되어 아시아 축구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51] 우호영이 차출된 중국전은 우호영 외에는 죄다 국대 2군 라인업이었고, 국제대회 진출 예선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국대 에이스를 성적을 낼 필요가 없는 매치에 소집한 셈.[52] 인판티노 같은 블라터와 연계된 사람들이 후보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셸 플라티니는 블라터와 함께 비리 때문에 사임했다.[53] 정작, 이런 여론전조차도 한국 내부에서만 먹힐 뿐 국제 여론에 미칠 영향은 미비하다시피 했다. 오히려 A매치 강제 출전으로 갑질을 시도한 증거가 폭로당해 국제 여론이 나락을 간 상황이었기 때문.[54] 현실의 KB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