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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3:44:24

병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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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야깃거리3. 역사
3.1. 철도 발명 이전
3.1.1. 주요 사례들
3.2. 철도 등장 이후3.3. 2차 대전3.4. 현대
4. 방법
4.1. 자력조달
4.1.1. 원료 조달4.1.2. 생산4.1.3. 수송4.1.4. 보관4.1.5. 분배
4.2. 징발4.3. 동맹국의 지원4.4. 현지조달
4.4.1. 구입4.4.2. 약탈4.4.3. 노획4.4.4. 빌리기4.4.5. 직접 생산
5. 난관
5.1. 자연5.2. 적군5.3. 전선은 움직인다5.4. 보급병 그 자체5.5. 보급 부족5.6. 보급물자의 종류5.7. 보급물자의 양5.8. 신무기5.9. 내부의 적
6. 요령
6.1. 최적화6.2. 기계화, 규격화6.3. 보급병을 늘린다
7. 군종에 따른 차이
7.1. 육군7.2. 해군7.3. 공군7.4. 그 외
8. 대한민국 국군9. 관련 문서10. 관련 명언

1. 개요

/ Quartermaster, Supply

병참은 군대에서 병기를 제외한 일반 물자를 보급하는 것 또는 그것을 담당하는 군사특기이다. 국가 및 군종에 따라서 '보급', '군수(軍需, Military Logistics)'[1], '치중(輜重)'[2]이라고 한다.

2. 이야깃거리

보급은 동서고금,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군대를 유지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지속적인 지원이자 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3] 역사적으로 기술 발전과 각 병종의 유용성을 따져 전술과 편제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으나, 보급의 경우 이를 소홀히 하거나 끊겨 패한 전투의 사례가 역사적으로 상당하고, 획기적인 자급자족 기술이 없는[4] 현재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전쟁을 직접 지휘해 볼 경험은 커녕 전쟁 자체를 겪어본 적도 없을 터인 대부분의 대중들은 대부분 이 병참의 중요성에 크게 관심이 없고, 군대 내부에서도 내부의 정치적 문제 때문에라도 병참을 전투력보다 중시하는 군대는 거의 없으며 그걸 실천한 군대, 그런 군대를 유지하는 총력전의 개념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국가는 예외없이 세계적인 강국내지는 그 이상 가는 제국의 군대로 위세를 떨쳤다. 대표적으로 로마군과 현대의 미군이 있다.

참고로 전장에서 보급선이 끊어졌다는 소리는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선[5]이 적에게 유, 무혈을 막론하고 점령 및 차단당했다.' 라는 뜻으로, 보급이 끊긴 부대 입장에선 차단중인 적들이 어느 규모와 수준인지를 가늠해 고사하기 전에 예하 부대나 타 부대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탈환하거나 이보다 더 안좋을 경우 완전히 포위당하기 전에 후퇴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도저도 못하고 부대 자체가 와해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현리 전투가 있다.

세계 최강 미군은 세계 최강의 보급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미군은 남북 전쟁 이후로 철도나 도로, 항공, 해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보급로를 확보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라도 보급이 끊겨버리는 경우가 드물었다.[6]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잠재적 적성국 소련의 장군인 게오르기 주코프가 콜라에 매료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마지막까지 소련군에게 지급된 식량이 허쉬 초콜릿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이 일반적인 식량, 탄약뿐만이 아니라 기호식품까지 머나먼 동유럽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보급 역량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보급이라고 하면 일단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식량, 즉 군량미지만[7] 그 외에도 보급품의 종류는 많다. 군인들의 생활과 활동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병참에 포함된다. 역사적으로는 가령 삼국사기에서는 신라군이 식량, 은, 옷감, 우황, 그리고 '머리카락'을 보급했다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현대인이 보면 뜬금없어 보이는 머리카락도 구하기 쉬우면서도 밧줄, 약재, 무기의 재료, 동상 응급처치 도구 등 군대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물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보급품의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분화된 현대전에는 군량 및 병기와 피복 등의 고대식 보급에다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와 탄약부터 수리와 정비를 위한 부품도 포함되어, 수송수단이 굉장히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보급에 대한 부담은 전/평시를 막론하고 군대 유지 및 작전 수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8]

뿐만 아니라 보급은 그 양 자체로도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런 것은 시대가 진행되면서 보급에 각종 무기와 탄약, 연료와 부품이 합해지는 바람에 더욱 심화되었다. 현대전에서의 보급량의 증가는 총력전이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냈으며, 현대의 국지전에서도 조금 전황이 지체되기만 하면 초강대국도 헉헉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조차 중동에 함부로 전쟁을 걸고 다녔다가 재정무리가 왔다. 전투원 1만 명이 싸우고 있으면 먹고 마시는 양과, 그외 최소한의 위생을 위한 물품, 그리고 엄청난 양의 탄약과 연료, 유지 부품을 보내줘야 한다.[9] 그리고 보급담당병력도 보급을 해줘야 하기에 병력이 늘면 늘수록 보급에 대한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미군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최대 20만 명 이상의 군대를 투입하고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지원을 완벽하게 해줘야 하는 등의 부담으로 실제 필요한 양보다 훨씬 과도한 수준의 부담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군대가 아니라도 보급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기는 마찬가지다.[10]

대량의 물자를 소모하는 현대전에서 보급이 3일 이상 끊기면 사실상 전멸로 본다. 이는 기계화, 차량화된 현대의 군대는 보급이 끊기면 이런 기계장비들을 움직일 연료가 없어 후퇴 같은 이동도 사실상 불가능해지므로, 잘 해봐야 거의 대부분의 중장비를 버리고 인원만 도보로 간신히 탈출하는 게 최상의 결과라고 볼 수준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11][12]

때문에 초보자는 전술을 연구하지만, 숙련자는 보급을 연구한다. 군대의 약탈전리품은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닌 사기, 임금, 보급을 충당하기 위한 극단적인 보급 방식이다. 따라서 전술을 연구하는 것도 국가가 보급을 지탱하기 어려울 수준에 이르기 전에 빠르게 승리를 거두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며, 방어전의 경우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면서 그 동안 전세를 뒤집기 위해 동맹국을 늘린다든지 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급이 전쟁을 지배하는 경우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덤으로 아무리 전술을 잘 짜도 보급이 안 되면 대규모 파상공세를 펼쳐도 적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다가, 지속기간도 짧아지므로 역공당하기 딱 좋다. 반대로 보급선이 끊어졌다는 건 포위 당했다는 의미와 다름없으니 말 다 한 것, 그래서 전장에서 조금만 시야를 넓게 보면 보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전장에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만 전념하는 경우라도 전투가 끝나자마자 인원의 손실과 장비의 망실, 탄약과 물자의 소모를 파악하고 당장 보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진 다음 언제까지 전투가 가능하며,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13]

군기가 엄정하다는 것을 군사 후진국에서는 경례, 구타, 욕설, 고함지르기, 광택 내기, 심부름 시키기 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군대는 대개 병참에서 상명하복에 의한 군납비리가 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말을 가르치던 군기 잡힌 군인들이 굶어죽거나 장비를 버리고 도망치는 새드 엔딩으로 귀결되기 쉽다.[14] 간혹 군기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보급을 경시하는 발언을 많이 하는데, 예를 들자면 군인한테 좋은 장비 및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 (구 일본군처럼) 군 기강과 정신 확립이 더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15]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기를 가진 군대라 해도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전투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보급과 군기의 관계는 정비례한다. 징병/모병 여부와 무관하게 질좋은 식사와 장비가 제공될수록 군인들의 사기와 전투력은 향상된다. 개별 병사가 싸울 능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국가와 지휘부가 개별 병사를 인간으로서 챙겨주고 존중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할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전투식량에 사제 간식을 포함하거나 아이스크림, 탄산 음료 등을 최대한 많이 배급하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사기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한국군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이순신 장군은 조정으로부터 보급을 받기는커녕 보급품을 뜯기기만 하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수군, 백성과 조정의 보급까지 혼자 책임져서 수군의 사기를 올리고 결과적으로 승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잘 싸우는 군대는 보급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보급을 최대한 확보하는 동시에 적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작전을 병행한다. 조조가 적군의 군량고 털기로 악명이 높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당장 고대 중국에서 강군으로 일컬어지던 항우의 군대조차 보급을 경시하다가 거의 동네 시정잡배 군단급인 유방의 군대에게 털렸으며, 삼국시대에서는 제갈량이 아끼던 무장인 마속이 가정전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물 보급로가 끊겨 패배하였다.

현대의 북한군은 나라 경제부터 말이 아닌지라 교리상으로도 보급을 현지조달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상대의 청야전술 속에서 쓸 만한 걸 찾아다니느라 진격이 지체되는 건 물론 현지 게릴라와 부비트랩에 의한 피해도 누적된다. 게다가 노획한 장비와 무기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추가로 필요하다.

현대의 군대라면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만큼은 풍족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전쟁 대비를 위해 군사 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에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충분한 보급, 수송 역량을 자체적으로 가진 국가는 미군뿐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군사 강대국들조차도 미군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보급이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다.

물자를 생산하고 보관하고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다 보니 미국을 포함한 여러 각국 군대들은 거의 모든 걸 본토에서 조달하기보단 일부[16]는 현지에서 필요한 만큼 조달하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두 합쳐서 굉장히 중요한 보급품이지만 보급하기가 힘든 품목 중 하나가 바로 식수이다. 엄청난 소모량에도 불구하고 무겁기도 하고 부피도 상당히 많이 차지하면서, 액체라서 운반에 용기/캐리어가 따로 필요하고, 그렇다고 고체로 만들면 오히려 부피가 늘어나고, 장기간 보관[17]하기에는 수지가 안 맞고, 현지에서 조달하려고 해도 정수장비가 따라가질 못하거나 환경에 따라 거의 얻을 수 없기도 한데다, 수질이 좋지 않으면 사용시 질병 등으로 전투력의 저하는 기본에 아예 부대가 전멸할수도 있다. 미군의 경우에는 유류와 함께 엄청난 양의 유체 수송 트럭을 때려박거나 아예 가까운 해안에 탱크를 실은 배를 정박시켜서 파이프를 전선의 기지까지 이어서 공급한다.

3. 역사


주제는 전근대 시절의 행군이지만, 결국에는 전근대 시절의 미비한 보급수단 때문에 행군로가 제한되고, 방어측에서는 이러한 행군로에 요새나 관문, 성을 축성하였기 때문에 공성전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원인도 결국에는 병참에 있다.

3.1. 철도 발명 이전

고대 전쟁의 경우 비효율성과 시대적 한계로 인해, 현대처럼 '선'으로 유지되는 보급은 일반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에 본국에서부터의 보급은 별도로 편성된 일회성 보급대를 통해 이뤄졌으며, 한니발 전쟁에서 하스드루발이나 고수전쟁에서 수군이 그러했듯 보급대 자체도 별도로 무장한 군대였다. 비무장한 보급대가 본국에서부터 전선까지 지속적으로 물자를 운반하는 보급'선'의 개념은 철도가 보급되고 국민국가가 형성된 근대 이후에나 출현했다.

따라서 원정지의 군대는 자신들이 직접 들고 간 보급품(치중)으로 초기 보급품을 감당했고, 이동할 때마다 숙영지 근처 지방에서 적극적으로 보급을 충당했다. 철도가 일반화되어 아주 낮은 운송비로 전선까지 물자를 전달할 수 있게 되기까지, 민간 취락의 약탈에서 지역 상업망을 통한 구매까지를 포괄한 현지보급은 군대의 보급품 수급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동서양의 사료에서도 현지보급의 중요성은 풍부하게 언급된다. 현대 연구들은 중국의 고대 사서에서 일관되게 현지징발을 중요한 수단으로 언급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8] 손자병법은 '기름진 들판을 약탈하면 삼군의 식량이 충족된다'(掠於饒野, 三軍足食) 라고 하여 현지보급의 중요성을 반복해 서술하고 있다. 서양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카이사르는 현지보급이 매일매일 일상적으로(cotidiana conseutudine) 이루어져야 한다고 저술했다. [19] 카이사르 이전, 포에니 전쟁마케도니아 전쟁에서도 로마군은 현지 징발을 통해 보급을 수행했고, 이는 한 명 이상의 천부장이 주관하는 중요한 군사작전이었다.

손자병법에서는 적의 식량 한 승(10섬)을 먹는 것은 보급으로 식량 스무 승(200섬)을 먹는 것과 같다고 평하였다. 사기 주보언 열전에서는 본국에서 192곡을 보내야 1석이 도달하는 현실에 대해 강변했다. 보급에 나선 말이나 소, 사람도 밥을 먹어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므로[20], 아무리 많은 식량을 준비한들 전쟁터에 도달하는 식량의 양은 대단히 적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21]손자병법의 내용중 상당수가 보급의 곤란함과 보급품이 떨어진 상황에서의 대응방식일 정도로 고대로부터 보급은 전쟁의 핵심이었다.

상대가 청야전술을 택하면 어떻게 하냐는 의견도 나올 법하지만, 실제로 청야전술은 수비측에도 상당한 부담을 주는 위험한 수였고, 설사 청야를 실시한다고 해도 고대의 한정된 행정력, 군사력으로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엔 강제적인 청야에 불만을 품은 지역들이 상대의 침공군에 협조할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일단 청야를 택할 경우 주요 거점으로 옮겨질 수 없는 식량들은 모두 제거해야 했고, 이는 한 해의 농산물 상당수를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청야는 지역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략이었고, 수비군의 입장에서도 마지막에서야 택하게 되는 위험한 도박수였다. 또한 고대에 청야전술이란 개념이 존재했고 자주 등장한다는 것부터가 당대에는 본국 수송이 아닌 현지조달이 보급의 주요 수단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보급선의 개념이 생긴 현대에 들어서는 청야전술이 사라졌음을 생각해보자.

고대의 현지보급은 노골적인 약탈의 형태를 띌 수도 있었고, 나폴레옹 시기의 공출처럼 형식적인 (그리고 아마도 지켜지지 않을) 계약과 권리의 형태를 띌 수도 있었다. 로마 공화국이 군사령관에게 쥐어준 통수권(Imperium)은, 군사령관이 민간인들로 하여금 군대를 '지원'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 사령관들은 민간인에게 '스스로 로마군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지원하도록 명령'할 수 있었으며[22], 이 권리가 제정기까지 실제로 사용되었음은 제정 로마의 군사행정문서 등에서 확인 가능하다.[23] 이렇게 거둬진 식량은 로마 군대가 이동 중에 소모하거나, 혹은 별도로 지어진 보급창으로 이동되었다.

후한 군대의 보급도 큰 틀에서는 로마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대는 자립적인 보급체계를 갖추지 않았고 국가에서 지불받은 경비로 현지 상인들을 통해 보급을 충당했다. 후한이 붕괴하며 점차 안정적인 지역 공급망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군대와 이를 이끄는 군벌들은 자연스레 약탈에 의존하게 되었다. 약탈을 통한 현지보급은 사서에서 반복되어 언급되며, 군벌들이 위험천만한 군사적 모험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해 지역의 여력이 모두 소진된 경우, 이러한 방식의 보급은 관도대전 당시 조조나 서주에서 유비의 경우처럼, 심지어 인육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후한의 붕괴가 점차 분명해지고 군벌들이 조직화하자, 각 군벌들은 사병들을 버려진 땅의 농업에 투입해(둔전) 보급을 충당하고 여유분은 별도의 보급창을 만들어 보관하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군벌인 조조는 상대의 공격에 노출된 국경 취락들을 대규모로 소개하고 몇몇 군사거점만을 남김으로서, 상대가 아군의 땅에서 보급품을 얻지 못하게 하고 공격루트를 한정시켰다. 이렇게 취락 소개와 더불어 강화된 군사거점 중 유명한 장소로는 합비양번이 있다.

물론 고대의 군대가 현지보급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청야를 펼치거나, 사막 등 현지보급이 불가능한 지역이거나, 보급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군대는 결국 적진이 아니라 본국에서 보내오는 보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에도 본국에서 보내오는 보급은 현대와는 달리 지속되는 선의 형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편성되는(즉, 일반적으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부대인) 거대한 보급대의 형태를 띄었다.

특이하게 '보급로' 그 자체를 수비한 사례로서 잘 알려진 기록으로는, 사기에서 장한의 보급로 요새화 기록, 그리고 내란기에서 브루투스의 요새화 기록을 들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원정군이 아니라 이미 인프라가 깔려 있는 본국에서 작전하는 상태이며, 또한 짧은 보급로에 대해 적군의 위협이 명확한 상태였다.

대규모 원정의 경우, 원정군이 이용할 수 있는 보급 요소는 다음의 네 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시대가 지나도 사람과 우마와 배의 한계는 거의 달라지지가 않았기에, 위와 같은 보급 양상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군대는 지역의 막대한 자원을 소모했으며 머무른 지역에 파멸적인 흔적을 남겼다. 나폴레옹의 시대에서 대육군의 보급대가 제일 먼저 수행하는 업무는, 군대가 머무는 주변에서 보급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자랑스러운 대육군의 보급 중 상당 부분이 현지 조달로 충당되었고 나폴레옹은 이런 '보급'의 귀재였다. 그는 "야전에서 마초와 식량 및 병사들의 필수품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경우 지휘관은 결코 부대를 숙영지 안에 자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라고 하여 현지 조달의 중요성을 금언으로 강조하기까지 했다.[25] 현대 연구에 의하면, 나폴레옹 시기까지도 상당수의 보급이 현지 조달에 의존하였으며 특히 식량은 5할 이상이 현지에서 충당되었다.[26] 본대를 보급하려고 보내는 부대에게도 보급이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는 나폴레옹의 시대까지도 군대를 속박하는 주요 요인이었던 것이다.

3.1.1. 주요 사례들

3.2. 철도 등장 이후

미국 남북 전쟁의 북군이 체급과 산업기반을 이용한 보급전으로 승리한 케이스이다. 남부는 그 특성상 농업 위주의 사회로 전체적인 체급도 북부에 비해 모자랐고, 북부는 갈수록 우수한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전선을 밀어냈으며, 특히 철로를 이용한 보급품 수송이 큰 기여를 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기의 프로이센 왕국군은 우수한 보급과 수송능력으로 체급적 한계를 극복하고 프랑스 제2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격파했다.[34]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기에는 각기병, 비타민, 단백질 등 식품영양학 지식이 부족해서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보다 더 강대한 국력을 지녔던 러시아가 뜻밖에도 일본에 패배했던 이유는 바로 러일전쟁 무렵,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 전이라[35] 본국에서 전쟁이 벌어진 만주 지역까지 보급을 보내기가 매우 어려웠던 데다가 전쟁 직전 러시아군 병사들이 사용할 탄약조차 무려 2,800만 발이나 모자랐을 만큼 보급에서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일본군이 압도적인 우세로 러시아군을 이겼느냐 하면 그도 아닌 것이, 일본 역시 러일전쟁 무렵에는 아직 국력에서 총력전을 벌이기 부족해서 러시아군과 벌인 봉천회전 직후에 육군 사령부가 일본 정부에 "포탄을 비롯한 물자 부족으로 더 이상 전투를 벌이기가 매우 어렵다. 어떻게든 전쟁을 빨리 끝내달라."라고 애걸하는 통신문을 보냈을 정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의 모든 군대는 식량을 던져주면 사병 개개인이 알아서 조리해먹는, 즉 재료만 던져주는 식에 취사병이 따로 없었고, 삼삼오오 모여 당번을 정하든 혼자 해먹든 알아서 조리해 먹었다.

그러나 1차 대전 초반이 되자 참호전으로 인해 식량 공급의 양식이 바뀌었다. 대군이 좁은 전역에 고착되면 연료가 부족하다. 비만 오면 진창이 되는 곳에서 마른 장작을 구하는 것은 힘들다. 더욱이 대규모 병력이 한 곳에 죽치고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는데 연료가 부족하다. 거기다 조리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하면 포격받기 일쑤다.[36] 그래서 1차 대전 후반에는 후방에서 조리하여 전방으로 추진하는 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취사병이라는 군사특기가 생기고 야전 취사 장비를 보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전문적으로 조리를 익힌 취사병들이 소량의 연료만 써서 대량으로 취사하는 것과, 소규모 단위로 전투병들이 사방팔방에 불을 피우고 찔끔찔끔 조리하는 것은 시간의 활용과 연료 소모와 음식의 품질 면에서 효율성의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전문 취사병들에게 맡기면 다른 부대원들은 전투 임무에 더 효율적으로 투입되며 조리 시간의 제약과 취사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유류관리병을 포함해 연료에 대한 보급도 1차대전 때 중요해졌다. 이런 점을 경시한 군대에서는 민간인들에게서 문짝이나 가구를 땔감으로 쓰려고 약탈했다. 물론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면 부대의 위치가 쉽게 노출되며, 2차 대전의 일본군은 이런 것을 외면했기에 나무가 무성한 정글에서조차 쉽게 발각되어 탈탈 털리게 되었다.

3.3. 2차 대전

수적 우세와 보급을 바탕으로 소련이 승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다 건너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셔먼 전차들 상대하다 말기에는 비축 보급품이 바닥난 상태에서 벌인 아르덴 대공세, 보급을 도외시하다 말아먹은 임팔 작전이 대표적 사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후반, 당시 30만에 달하는 독일 6군은 생존을 위해 하루 최소 500t의 보급이 필요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포위로 보급이 막혔고 결국 최후의 카드로 효율이 떨어지는 공중 수송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37] 공중 수송은 이론상 하루 200~300t의 보급만 가능했으며, 이마저도 이론상 그랬던 것일 뿐 실제로는 여러 악조건[38] 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해 다수의 동사, 아사자가 발생하며 B집단군의 중추를 담당하던 독일 6군은 무너지고 만다.

일본군은 병참을 경시했다. 군인의 교육이나 승진 등 전반적인 면에 있어 보급에 대한 관심이 낮았다.[39] 한두명이 정신이 흐려져서 어리석은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전쟁이 길어지다 보니 인프라가 부족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관심이 없으니 투자를 하지 않았다.[40] 애초에 일제의 군통수 기관인 대본영이 전투나 작전을 먼저 생각하지 병참은 나중으로 생각했다.

일본군이 잘 나갔던 시절에도 일본군은 야전취사 장비를 구비하는 데 이상하게 소극적이어서 전장에서 제대로 밥을 먹으려면 지급받은 쌀과 반찬으로 밥과 국을 만들던가 민가에서 징발해야만 했다. 게다가 식량은 보급하면서 식량을 조리할 연료는 알아서 구해다 조리하라는 식으로 일절 보급이 없어 개개인이 문자 그대로 알아서 연료를 찾아다녀야 했다. 특히 연합군의 공격으로 보급이 끊기자 식량을 약탈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육을 먹는 전쟁범죄가 자주 발생했다.

다만 이런 막장스러운 일본군이 다른 쪽으로, 현대전에서도 전투력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면 둔전이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둔전 하나로 식량 보급을 유지했기 때문. 물론 잘 했을 때 이야기이며, 무기 보급은 별개의 문제이고. 이마무라 히토시가 둔전과 현지 유화 정책, 상거래로 병참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케이스.

병참 능력이 모자라거나 아예 도외시하기도 했던 추축국과 반대로 연합군에서는 미국의 엄청난 병참능력으로 보내 준 스팸, 초콜릿 캔을 전투가 가장 수세일 때까지 보급받으면서 전투를 치렀다.

2차 대전 중 병참을 최적화하기 위한 연구가 산업공학을 낳았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소련의 수송 경로는 최적제어론을 연구한 수리경제학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3.4. 현대

군대의 역량을 100이라 볼 때 전투병력은 고작 30, 보급을 70으로 칠 정도로 현대에는 그 이전 시대보다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보급을 소모한다. 무기의 첨단화는 그 대가로 엄청난 양의 보급을 필요로 하게 되어 보급을 받아봐야 사흘도 못넘기고 전부 소모하기 때문에 그냥 보급이 망하면 전투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 오히려 외국에 힘을 투사할 수 있을 역량을 가진 군대는 더 보기 드물어졌다. 미국이 바다 너머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군용장비용 유류를 항공유로 통일하고[41] 전투원 1명당 각종 보급 및 지원 병력 10명을 붙여줄 수 있을 정도로 수송과 보급 분야에 막대한 행정적,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각종 군사장비에서 전력을 사용하기에 야전에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민간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이 퇴출되고 전기차가 주류가 되면 군사장비에서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레이저같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가 실전용으로 배치되면 군사장비의 전력 사용량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미군에서는 소형 원자로로 야전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4. 방법

4.1. 자력조달

전쟁 당사국이 직접 보급을 하는 방법으로, 아래와 같은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다. 평시에도 이 모든 것을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며, 못된 놈들이 군수품을 횡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감시가 필수적이다. 게다가 전쟁 중에는 군대의 규모가 크게 팽창하며, 적군의 공격이 가해지므로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4.1.1. 원료 조달

보급을 하려면 보급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원료를 손에 넣어야 한다. 쌀을 얻으려면 농사, 물고기를 얻으려면 어업, 소고기를 얻으려면 목장에서 소를 길러야 한다. 무기를 만들려면 광산에서 광물을 캐내야 하며, 연료를 얻으려면 유정에서 석유를 뽑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명 1차 산업.

원료 조달을 자국에서 전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건 미국 정도이므로, 대개의 국가는 동맹국이나 우호국의 자원을 사오는 방법을 택한다.

4.1.2. 생산

일명 2차 산업. 원료를 공장에 가져와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현대전에 필요한 보급품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으므로 필요한 공장의 종류도 매우 많다. 공업력이 발달한 국가가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혼자서 생산할 수 없으므로, 동맹국이나 우호국에서 군수품 일부를 사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필수적인 군수품은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국가안보에 도움이 된다.

4.1.3. 수송

원료와 군수품을 목적지까지 수송한다. 병참의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이 수송 과정에서 발생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아래와 같다.

수송 방법도 다양하다.

4.1.4. 보관

원료와 군수품을 보관한다. 원료와 군수품을 마련하자마자 100% 소비할 수는 없으므로, 여분의 물품을 창고에 보관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전쟁 중에는 갑자기 소비량이 급상승하는 군수품이 있기 마련인데, 적절한 양의 비축분이 있다면 이런 경우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창고에 넣어두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군수품이 변질되어 못쓰게 되는 사태를 막으려면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맞춰줘야 한다.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손상된 군수품을 새것으로 바꿔주는 노력도 필수.

적절한 위치에서 창고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후방에 세우는 창고는 교통의 요지에 세워야 대량의 물자를 원하는 곳으로 실어나르기 편하며, 전방 부대를 위한 보급창고는 최전선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최전선에 너무 가까우면 적에게 유린당하고, 최전선에서 너무 멀면 아군에게 보급을 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1.5. 분배

필요한 부대에게 필요한 종류와 양의 군수품을 나눠준다.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려운 작업인데, 최전선의 모든 지휘관들은 자기 부대가 가장 중요하므로 최대한 많은 군수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설득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렵다.

일선 부대가 요구하는 보급품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것도 어렵다. 예를 들어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투시 롤 보급을 요청했는데, 막상 도착한 투시 롤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요구한 '투시 롤'은 박격포탄을 뜻하는 은어였고, 중공군의 도청을 우려해서 은어를 사용한 것인데 보급부대는 이걸 듣고 해병대가 사탕 투시 롤을 달라고 한 걸로 착각했던 것. 불행중 다행으로 투시 롤이 전투에 유용하게 쓰이긴 했지만, 이 사태 이후 미군은 보급요청시 은어를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4.2. 징발

군작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토지, 물자, 시설 또는 권리를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모으거나 거두는 것을 말한다.

4.3. 동맹국의 지원

우방국이나 우호국으로부터 군수품을 구입하거나, 무상지원을 받는 것이다. 이걸 하려면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등,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국군이 매우 선호하는 방법이다. 미군의 막강한 보급능력에 기대는 것으로 보급 문제를 완화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동맹국의 지원은 언제나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으므로, 여기에만 의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동맹국이 넉넉하게 지원을 해줬는데도 불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군은 유럽상륙을 준비하기 위해 영국 본토에 미군을 주둔시켰고, 영국은 동맹국에게 성심성의껏 식량을 지원했다. 문제는 영국 요리여서 당연히 미군 병사들은 "이걸 먹고 어떻게 싸우란 말이냐!"며 항의했고, 미군은 본토에서 식량을 운송해와야 했다.

4.4. 현지조달

전쟁터에서 물자를 얻는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용하게 사용된 보급방법으로, 아래와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청야 전술이라는 카운터 펀치를 맞을 수 있으며, 군대가 소모하는 물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므로 현지조달만으로 보급수요를 채우기는 불가능하다. 이걸 망각하고 "보급은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라고 외쳤다가 폭삭 망한 게 그 유명한 임팔 전투.

4.4.1. 구입

부대 주변의 민간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물품을 사오는 것이다. 전쟁터 주변의 민간인들이 부유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대량의 물자를 얻기에는 부적합하지만, 현지의 민심을 얻는 데에는 나름대로 유용하다.

4.4.2. 약탈

부대 주변의 민간인으로부터 물자를 빼앗아오는 것이다. 주로 적지를 점령한 후 현지인들의 재산을 털어올 때 많이 사용하며, 반항적인 현지인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징병해서 고기방패로 사용하기도 하고, 강제노동을 통해 군수품을 생산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즉각적인 효과는 좋지만, 반대급부로 적군의 전투력과 증오심이 강화되며 현지의 민심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4.4.3. 노획

적군의 물자를 빼앗아온다. 피해자가 적군이므로 인도적인 문제로 항의받을 일이 없고, 노획에 성공하면 아군의 사기가 올라가며 적이 그만큼 궁핍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적군이 순순히 군수품을 넘겨줄 리가 없으므로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적의 무기와 아군의 무기가 호환되지 않을 경우 노획에 성공해도 지속적인 사용이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래도 제대로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본다. 미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 항공모함 류조 소속의 코가 타다요시 1등비조가 조종하던 A6M 제로센을 노획한 적이 있다. 미군은 이를 통해 제로센의 모든 약점을 알아냈고, 이후 공중전에서 매우 큰 이득을 보았다. 노획한 물자가 적더라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노획한 물자가 매우 많을 경우 제식병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량의 물자를 노획했으므로 지속적인 사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4.4.4. 빌리기

아군 부대의 물자를 빌려온다. 노획에 비하면 난이도가 낮으며, 아군 무기이므로 호환도 잘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사용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군 부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벌이는 짓이므로, 걸리면 수갑을 찰 수도 있다.

4.4.5. 직접 생산

군대가 직접 군수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는 건 적지의 공장을 빼앗아서 돌리는 게 아니고, 전방 정비창에서 직접 무기를 생산하는 경우이다. 간단한 예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소련군 전차를 막기 위해 LT vz. 38 전차의 포탑을 뜯어낸 후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76mm ZiS-3 사단포를 얹어서 만든 마르더 대전차 자주포가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장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기 때문이다. 소련군의 막강한 T-34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대전차포가 8,8cm FlaK 밖에 없는데, 이 포는 전쟁 내내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결국 독일군은 일선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지지고 볶아서 대응수단을 만들어야 했고, 그 결과가 마르더 대전차 자주포였다.

5. 난관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전략가들이 보급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기술한다.

5.1. 자연

전쟁터의 기후날씨는 보급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 하나 때문에 보급의 난이도가 급상승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어 냉대 습윤 기후인 지역에서 작전을 펼칠 경우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므로 제설작전을 벌여야 하고, 봄과 가을에는 도로가 진흙탕이 된다. 날씨라도 좋으면 좀 낫겠지만, 전쟁터에서는 보급할 때가 되면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거나 강추위가 몰아닥치는 게 일상다반사다. 전쟁터에서 일기 예보가 중요한 게 다 이유가 있다.

지형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눈앞에 강이 있고 다리가 끊어져 있다면 보급 난이도가 크게 올라간다. 보급로를 만들 때 지도를 펼쳐놓고 고민하는 것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효율적인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냥 평지라도 라스푸티차 한 번으로 애로사항이 꽃 피는데, 산악지대나 사막, 숲, 늪지대라도 앞에 있으면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한다.

5.2. 적군

당연히 적군은 아군이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하기를 원하므로, 24시간 내내 아군의 보급을 방해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점령지의 게릴라, 특수부대, 포병과 공군, 잠수함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보급로를 끊으려고 한다. 이걸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렵다.

5.3. 전선은 움직인다

전황이 정체상태라서 전선이 고정되었다면 그나마 낫지만, 전선이 움직일 경우 그에 맞춰서 수송대가 움직여야 하므로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아군이 진격할 경우 보급계획이 크게 꼬인다. 아군이 진격한 만큼 수송대가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보급품을 실은 트럭이나 헬리콥터의 연료가 그만큼 더 소비되지만 이건 사소한 문제다. 진격하면서 최소한의 길은 열어놓았겠지만, 궤도식 차량으로는 갈수 있어도 트럭으로는 지나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적의 패잔병이 습격한다던가, 적의 발악으로 멀쩡하던 다리가 끊어진다던가, 지뢰를 묻어놓았다던가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진격한 아군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제때 찾지 못하면 진격하던 아군은 그대로 주저앉는다. 1944년에 미군 수송대가 미군의 진격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조지 S. 패튼은 "내 부하들은 벨트라도 씹어먹을 수 있지만, 전차는 연료가 필요하단 말이다."라며 분개했다.

아군이 후퇴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잘못하면 적에게 죽거나 생포당할 수 있으므로 빨리 후퇴해야 한다. 후퇴하는 아군과 뒤엉키기라도 하면 전차에 트럭이 깔려서 보급품이 박살날 수도 있지만 이건 사소한 거고, 보급품을 최대한 빨리 후방으로 옮겨놓거나 파괴해서 노획당하는 참사를 막아야 한다. 제2방어선에 보급물자를 미리 쌓아두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이걸 까먹었다가 방어선이 다 뚫리는 대참사가 날 수도 있다. 전선이 움직일 때마다 보급계획이 바뀌게 되므로 보급담당자는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5.4. 보급병 그 자체

보급을 하려면 보급병들이 필요하며, 이들은 상당한 보급물자를 소비한다. 트럭을 모는 운전병만 해도 자기 몫의 식량과 식수, 트럭 연료, 그리고 적군의 공격에 대비한 무기와 탄약 등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짐을 트럭에 실을 지게차 같은 부수적 요소까지 합하면 필요한 물자는 더 늘어난다.

게다가 전방에서 직접 적과 싸우는 부대가 아니라면서 보급병 자체를 경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서도 안 된다. 비전투병에 대한 전투병의 비하야 일반적으로 있긴 하지만 일본군같이 보급병에 대한 천시가 군 전체에 걸쳐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이면 보급병의 충원 자체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5.5. 보급 부족

전쟁 이전 아무리 보급 계획을 잘 세우더라도, 전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이유로 보급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보급계획을 짤 때는 필요한 수준보다 보급능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전방의 군인들이 얼어죽을 수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겨울용 피복을 보내야 한다. 보통은 기후와 날씨를 고려하고 보급계획을 짜지만, 갑작스러운 폭염이나 폭설, 한파 등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 외에도 적의 공격으로 탄약고가 파괴되어 탄약을 급히 보내야 하거나, 점령지의 주민들이 아사하지 않도록 식량을 긴급히 보내는 등 예상하지 못한 보급수요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필요한 수준보다 보급능력을 더 높여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걸프 전쟁에서는 미군의 보급능력이 워낙 대단해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여겨졌으나, 승리를 거듭하다 보니 예상보다 연료를 많이 쓰는 바람에 연료를 전방에 보급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참고로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의 하루 연료소모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의 창설부터 해체까지 소모된 연료량보다도 많았다.

5.6. 보급물자의 종류

전쟁에 필요한 보급품의 종류는 너무 많다. 군장 문서에 나오는 단독군장만 봐도 어지러울 정도로 많으며, 완전군장에 들어가는 물품은 훨씬 더 많다. 일개 보병 한 명이 휴대하는 물품들도 수십 종류에 달하니 기갑이나 포병 같은 다른 병종까지 살펴본다면 그 종류는 셀 수도 없다.

비슷해 보이는데 전혀 다른 물품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군은 30X113mm 탄종을 AH-64 아파치용으로, 30X165mm 탄종을 BMP-3무레나급 공기부양정용으로, 30X170mm 탄종을 K-30 비호용으로, 30X173mm 탄종을 SGE-30 골키퍼CIWS-II용으로 사용한다. 30X165mm 탄종은 러시아제 무기가 퇴역하면 쓸 일이 없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보급할 때 세 종류의 30mm 탄약을 구분해야 한다. 당연히 보급담당자가 할 일이 늘어난다.

보급품이 많으므로 수송 및 보관 시 주의사항도 그만큼 늘어난다. 똑같은 식품이라도 통조림은 실온에 보관해도 되지만, 냉동된 고기는 반드시 냉동창고에 집어넣어야 한다. 탄약을 아무렇게나 보관하면 습기를 먹어서 못쓰게 되거나, 충격을 받아서 폭발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수십만 종의 군수품에 붙는 주의사항이 모두 다르므로, 보급담당자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5.7. 보급물자의 양

전쟁에서는 특히 많이 쓰이는 보급물자가 있으며, 양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보급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비량이 많은 보급품을 소개한다.

5.8. 신무기

전쟁이 벌어지면 반드시 신무기가 출현하는데, 이는 병참에 있어 난관이 된다. 기존의 병참능력으로는 대응하기 곤란한 경우가 수두록하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군의 경우, 1943년에 M26 퍼싱 중전차를 500대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AGF의 레슬리 맥네어 장군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퍼싱이 너무 무거워서 수송 체계에 극심한 부담을 준다는 게 반대 이유였고, 그 덕에 미군의 주력 전차는 M4 셔먼이었다.[44] 그러나 1944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후 미군이 만난 전차는 티거와 판터였고, 미군 전차병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걸프 전쟁에서도 신무기 문제가 생겼다. 이라크군의 슈퍼 벙커는 너무 튼튼해서 2000파운드 폭탄이 튕겨나가는 경우가 속출했던 것이다. 결국 미군은 GBU-28이라는 신형 벙커버스터 폭탄을 개발했으나, 생산시설과 인력이 부족해서 납기일에 맞출 수 없었다. 다행히도 대량으로 퇴역하던 M110 자주포의 8인치 포신이 있었기에, 이걸 잘라서 폭탄을 만드는 방법으로 간신히 납기일을 맞출 수 있었다. 단기전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을 정도이니, 장기전에서는 신무기 때문에 병참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매우 많다.

5.9. 내부의 적

군수품을 훔쳐먹으려는 탐관오리는 어디에나 있다. 이런 놈들을 신속하게 때려잡아야 보급이 원활해진다. 또한 보급담당자의 실수도 주의해야 한다. 엉뚱한 곳에 보급물자를 보내거나, 현지 부대의 요구와 다른 보급품을 보낸다면 곤란하다. 일선부대와 보급담당자 간의 의사소통이 잘못될 경우 이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표적인 예가 위의 분배 항목에서도 언급한 투시 롤 사건.

6. 요령

보급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군인들은 어떻게든 보급을 쉽게 할 묘안을 찾고 있다.

6.1. 최적화

보급품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짓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적화가 필요하다. 각종 보급품을 통일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고대에는 로마군이 이 표준화로 유명했다. 병참으로 이긴다는 평가를 듣던 군대답게 표준화와 대량생산의 이점을 빨리 파악했기 때문. 로마군은 마리우스의 개혁 이후부터는 자비로 무장을 갖출 수 없는 무산자 계급을 직업군인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무산자 계층은 기존의 중산층 시민병과는 달리 복무 중 손상된 장비는 본인 월급으로 구매한다 해도 입대 시 초도 장비를 자력 구매할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가에서 초도 장비를 제작/지급하게 되었다. 때문에 국가에게 외주를 받는 대형 공방에서 동일한 사양으로 대규모 생산되는 무기가 통일성 있게 지급되었고, 이 무기를 지급받아 사용하는 무산자 계층 군인들도 굳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자신의 손에 익은 초도 보급 장비를 계속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군장의 표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현대에는 미군이 표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각종 항공기는 물론 주력전차/장갑차량/전술차량, 심지어 오토바이[45]나 난로용 연료까지 모두 항공유로 통일하여 보급효율을 높였다. 항공유이기 때문에 취급방식이 까다롭고(JP계열 항공유를 포장할 때에는 반드시 재활용 드럼이 아닌 새 드럼만을 사용해야 한다) 단가가 일반적인 휘발유보다 높지만, 군대의 규모가 차원이 다른데다 전세계의 미군에게 보급을 해줘야 하는 미군 입장에서 일일이 여러 종류의 연료를 따로 구입하여 수송하는게 더 골치아픈 일이라 아예 이 연료로 통일시킨 것. 휘발유나 경유가 아닌 항공유로 연료를 통일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항공유를 쓰는 전차는 만들 수 있었지만 휘발유를 쓰는 제트기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 연료를 통일해 행정소모 비용[46]과 연료 수송비용이 절감되기에 전체 비용 면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군대에서 표준화를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쟁이 벌어지면 자국산 군수품 + 노획한 군수품 + 외국에서 들여온 군수품의 3종 세트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같은 규격을 쓸 가능성은 매우 낮으므로, 전쟁 중에는 잡다한 군수품을 섞어서 운용해야 한다.

6.2. 기계화, 규격화

인간의 손으로 보급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크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해서 보급의 효율성을 높인다. 과거에는 말 같은 가축을 동원했지만, 현대에는 트럭, 수송선, 수송기 등 다양한 기계가 있으므로 기계화가 용이하다.

간단한 예로 상품적재용 깔판인 파렛트와, 강화 플라스틱 케이스인 펠리칸이 있다. 펠리칸에 보급품을 집어넣고, 이것을 파렛트 위에 쌓은 후 지게차로 들어서 차량에 싣는 것이다.

컨테이너는 이런 기계를 통한 선, 하적과 운송의 용이함을 위한 화물의 규격화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컨테이너에 보급품을 집어넣으면 품목이나 형태 불문하고 컨테이너에 맞춘 크레인과 트레일러, 선박, 화차로 장비와 시설을 통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6.3. 보급병을 늘린다

의외로 간단한 해결법이다. 혼자서 옮기기 어려운 보급품이라도, 여러 명이 들면 비교적 손쉽게 옮길 수 있다. 이것을 눈치챈 미군은 보급병의 수를 대폭 늘려서 보급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했다. 1명의 전투병의 보급을 위해서 평균의 10명의 보급병이 움직이니 능률적일 수밖에 없었다.

7. 군종에 따른 차이

7.1. 육군

특별할 것도 없이 위의 '방법' 문단에서 설명한 내용이 그대로 적용된다.

7.2. 해군

해군의 보급은 각 함정들이 군항에 정박해 보급품을 싣고 다시 출항하는 것이다. 보통 자국 군항에 들어가지만 원정군 성격의 해군은 외해까지 나가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외국 항구에 정박할 수도 있다. 평시에는 우방국 항구에 들어가므로 정상적인 보급품 수급이 가능하지만 전시에 만약 적국이나 비우호국 항만을 점거했을 때는 육군처럼 현지 약탈을 할 수도 있다.[47]

고대에는 배가 작아서 항해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으므로, 그만큼 자주 항구에 들러야 했기에 항구의 중요성이 매우 컸다. 이것은 중세에도 마찬가지였으나, 대항해시대가 되어 배가 커지고 원양 항해를 하게 되면서 배에 최대한 많은 양의 보급품을 싣는 방향으로 나간다.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건빵이나, 현대인은 절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는 염장고기 등이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근대에는 해안 봉쇄가 가능해져 원시적인 군수지원함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항구가 아닌 해역에서 보급이 가능해졌다. 항구에 들락거리는 일이 줄어들면 그만큼 작전을 오래 할 수 있으므로,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석탄운반선, 급양함 등이 순양함에 동행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 급유, 급양(식수, 식량), 급탄, 수리 및 공작 등의 기능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각 함종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은 하나의 군수지원함이 급유, 급양, 급탄을 통합해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기에는 공작함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현재는 대함 미사일의 발전으로 피격되면 곧바로 격침 내지 전투불능이 되는 문제가 생겼으므로 별도의 공작함은 더 이상 운용하지 않는다.

해군의 기지에 넣는 보급은 육군의 것과 비슷하지만 해군은 공군과 마찬가지로 기지를 굳이 옮길 필요도 없고 안정적인 보급이 가능하므로 구매, 조달, 분배 등이 훨씬 여유롭다.

지상군인 해병대는 위 문단들의 내용이 적용되는 육상 보급이 주류지만 해군 군수지원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상륙전 시에는 안정된 아군 점령지가 없으므로 해군 함정에 물자를 실어놓고 사용해야 된다.

7.3. 공군

해군은 바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경우가 있어 육군과 상이한 점이 많지만 공군이 하늘에서 사는 건 아니니까 보급 받는 방식은 육군과 비슷하다. 그러나 전시에 부대가 이동하는 육군과 천지차이로 공군은 활주로를 갖춘 기지에 눌러앉아 살아서 육군보다 더 안정적인 군수보급이 가능하다. 또한 공군기지의 환경은 험한 두메산골일수록 지형의 전술 이점을 잘 받는 육군과 딴판이다. 공군기지는 웬만한 도시에 붙어있거나 철도가 연결된 곳에 위치하여 민간 물자와 서비스를 받기 편하고 교통의 이점이 우수하다. 군용 물자와 서비스의 한계를 민간 서비스로 충족하는 경우가 많아 장병들의 사기와 삶의 질이 상승한다. 여기에 공군 활주로와 수송기의 시너지가 합쳐져 항공수송으로 물자를 쉽게 보급받을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지게 된다.

다만 공군은 비싼 항공기와 항공유, 한발 한발에 수십억이 넘는 미사일과 폭탄들을 달고 살아 유지 비용이 육군의 포병과 기갑부대를 후려친다. 평소에 육군이 매일 전차를 가지고 위수지역을 순찰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공군은 평소에 매일 전투기를 띄운다. 작전 한번에 기름, 엔진과 레이더와 항전장비와 계통 관련 각종 부품, 미사일과 탄약이 소모되고 비행할 때마다 수G에 달하는 중력을 받는 조종사의 심리적 신체적 소모도 육군보다 더 심하다. 비싼 항공기를 정비하고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정비사들의 스트레스도 무시 못한다. 스텔스 전투기면 스텔스 도료의 추가까지 들어 취급하는 군수품의 레벨이 상승한다. 한 마디로 공군은 안정적인 연료 & 무장 & 부품의 수급과 고품격 인력 유지에 신경써야 현상유지가 가능한 비싼 군대이다. 이 점은 함정 한척이 최소 수천억~조 단위까지 오르는 해군도 비슷하다.

7.4. 그 외

21세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우주군을 창설하거나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으로 우주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았으므로 우주에서의 병참은 본격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군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면, 보급을 위한 우주선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8. 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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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이고!! 잘입히고!! 잘재우자!!
육군 병참의 모토
한국에서 군사 물자에 대한 보급을 주로 책임지는 부대는 육군군수사령부, 해군군수사령부, 해병대 군수단, 공군군수사령부, 육군 야전군 직할 군수지원사령부 및 군단 직할 군수지원여단, 공군 비행단 작전지원전대 예하 보급대대 등이 있다. 공군에서는 병참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수송 분야까지 아울러 특기명[48]이 보급수송이다. 부사관[49], 병[50]으로 갈수록 세분화된다.

대한민국 육군은 보급의 중요성을 각 부대에 일깨우기 위해 KCTC 등의 훈련을 주기적으로 시킨다.

휘발유 등 난방/발전/군수용 기름, 군량, 세제 보급은 넉넉하게 지급되고 있다. 문제는 남을 만큼 나오는데 남으면 불이익(낭비=처벌)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각종 문제가 발생해 여기는 부족하거나 저기는 넘치는 것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각종 보급품들이 줄줄이 새고 장부가 조작되어 부족해도 알맞고, 넘쳐도 딱 맞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휘발유의 경우 상사 혹은 대위급 '짬 되는' 간부들이 자가 차량을 끌고 들어와서 기름을 채우고, 그렇게 부족해진 기름은 휘하 부대에 보급할 때 200ℓ 짜리 드럼통에 180~190ℓ 정도만 채워서 보급하는 식으로 남겨서[51] 대대본부, 연대본부만 해도 항상 기름이 넘쳐 겨울 내내 찜통 난방을 하거나 여름에 뜨거운 물 샤워 등 갖은 혜택이 넘쳐난다.

특히 맛스타, 딸기잼, 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양념, 특히 육류 등은 육군 보급수송대대(보수대대)의 경우 사단 전체의 물자를 1차적으로 수령하는 보급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으므로 짬으로 밀어붙이거나 앞서 말한 장부조작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한 결과 굉장히 풍족한 군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듯 보이나 예전에는 그렇게 남은 기름, 육류 등 보급품을 반출해 헐값에 팔아넘겨 제 배를 불리는 간부들도 제법 되었다.[52]

전시 보급 수송 역량도 60만 대군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소위 자주국방이라는 기치하에 온갖 첨단 무기들을 개발, 배치하고 있지만, 실제 한국군이 가장 절실한 것은 육공트럭이라고 할 정도로 보급과 수송 능력이 부족하다. 물론 기본 전쟁물자야 충분하지만 수송수단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전쟁나면 민간 차량을 징발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53]

이러한 문제가 일어난 것은 오랫동안 미군의 지원에 의존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로 큰 훈련에서 다치거나, 중간에 전입 온 신병, 중도 휴가 복귀자들 그리고 전역이 얼마 남지 않는 병장들이 주로 훈련하는 병력을 위해 치중대를 편성하고 물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9. 관련 문서

10. 관련 명언

"패전하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하수는 공격을, 중수는 방어를, 고수는 병참을 생각한다."
아마추어가 전략전술을 논할 때 프로는 병참을 논한다.
"안개를 먹고 싸울 수는 없다."
- 30년 전쟁 초반 사보이아 공국의 용병대를 이끌고 신교측에 참전한 에른스트 폰 만스펠트가 한 말이다.[54]
"군대는 잘 먹어야 진격한다."
- 나폴레옹 1세의 발언으로 알려져있지만 근거는 없고, 나폴레옹 사후 후대에 위인전에서 발견되는 문구다.[55]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56]
"빵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굶주린 병사들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 러시아 속담.


[1] 군수는 병기와 병참, 수송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2] 짐수레(輜)와 짐(重)을 뜻하는 단어로,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용어다. 참고로 구한말과 구 일본군, 그리고 이들의 체제를 받아들인 국군에서는 병참과 수송을 싸잡아 부르는 단어로 대한민국 육군으로 치면 (사단 예하) 보수 대대에 대응하는 명칭이다. 참고로 여기 병사를 치중병, 이들이 모인 부대나 행렬을 치중대라 부르기도 한다.[3] 마르틴 반 크레펠트 저, <보급전의 역사> 서문.[4] 과거 오랫동안 운용했던 부대원과 민간인에게 농사를 짓게 하는 제도인 둔전이 있으나, 이것은 군대의 운용에서 병력 수의 비중이 컸던 근대 이전의 군대에서나 통용되는 것으로 탄약이나 연료 등 다른 물자들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커진 현대에는 행할 수 없는 방식이다. 심지어 전근대에도 둔전은 식량의 해결만 가능했지 화살이나 병장기의 추가 보급은 공방에서 제작해 수송해야 했으므로 둔전을 하면서도 물자 보급은 여전히 필요했다. 물론 둔전을 해서 식량을 자급하면 보급 부대의 규모를 줄일 수 있는데다 병장기는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기 때문에 보급 편의성도 개선되는 건 사실이다.[5] 보급이 오는 길.[6] 태평양 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역사보섬 해전에 패배하여 일시적으로 제해권을 상실하고 보급이 중단된 사례가 있다. 미드 퍼시픽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는데 보급 중단으로 일본군 패잔병이 남기고 간 군량미로 밥을 지어 먹어야 했다.[7] 사실 간과하기 쉽지만 식량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물, 즉 식수이다. 인간은 못 먹고 버틸 수 있는 시간보다 못 마시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짧으며, 정화되지 않는 물을 마시면 식중독이나 수인성 전염병 등의 질병으로 전투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8] 보급할 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대전에서 군은 30%가 붕괴 혹은 전투력을 상실하면 보통 전멸한 걸로 본다. 전쟁과 전투에서 전투력 상실 혹은 지휘체계의 붕괴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 저 30%가 대부분 전투병이고 전부 전투병이라 하면 전체 인원의 반은 무력화된 것인데 그 지경까지 가면 나머지도 성치는 못하기 때문이다.[9] 서양에서 전통적인 보급의 요소를 3B로 표현한다. Beans(음식과 물), Bullets(병기와 탄약), Bandages(의료지원 및 위생)[10] 특히나 군산복합체가 팔아먹는 첨단무기 따위보다 식량과 물, 탄약, 의료품, 그리고 주둔지를 건설하는 건설자재를 팔아먹는 민간기업의 이득이 훨씬 크다.[11] 물론 이렇게 되면 전투력이 제로에 가까워지므로 인명 손실이 없더라도 전멸이다.[12] 걸어서 피해없이 탈출한다고 해도 그 버리고 간 장비의 비용은 어찌할 것이며 만약 적이 노획해서 쓰거나 카피생산한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그 무기를 또다른 적성국에다 넘기고 그 대가로 물자나 병력 혹은 장교단을 초빙받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우수한 초급장교들을 유학보낸다면?[13] 아주 간단하게 각개전투 훈련에서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점령한 다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분대 인원의 손실 및 남은 탄약량 보고다. 최소 단위인 분대 전투에서도 자기 분대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전투를 지속시키거나 다음 전투에 대비할 수 있다.[14] 애초에 '엄정'을 따질 군기라는 것은 지휘관 및 전체 명령 체계가 위반이나 일탈 없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상태가 군기가 엄정한 거지, 병계급이 까라면 다 까는 일방적인 '부조리'를 군기라고 부를 수는 없다.[15] 당장 국군에서 7~90년대까지만 해도 행해지던 군수품 횡령이 거의 사라진 이유가 군 간부들의 봉급이 올라 횡령의 이득보다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16] 구경이 호환되는 탄약, 식재료와 신선식품, 음료 등.[17] 살균밀봉 등.[18] Raimund Kolb, Die Infanterie im Alten China / Michael Loewe, The Campaigns of Han Wu Ti[19] BCiv. 1.40.3, BGall. 7.14[20] 로켓으로 물체를 우주로 쏘아올리려면 물체 중량의 수십배의 연료를 태워야 하는 것과 거의 같은 원리이다.[21]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은 호치민 루트를 통해 인력이나 트럭을 통해 물자를 보급했는데, 인력의 경우 전장에 쌀1kg을 보급하기 위해 5kg의 쌀을 준비했다. 손망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정말 운 좋은 상황이라 해도 호치민루트를 타고 종단하는 기간동안 소모되는 인당 쌀의 무게가 보통 3~4kg였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전쟁 기간 내내 폭격을 얻어맞았으며 덥고 습한 정글이라는 호치민 루트 특성상 실제로 전장에 전달된 쌀은 더 적었을 것이다.[22] 민간인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군 사령관이 소정의 댓가를 지불하기는 했으나, 그 댓가는 언제나 준비한 식량과 물자의 원가보다 낮았고,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원가와 댓가의 차액만큼이 징발된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그 많은 물자를 사령관이 원하는 위치로 운송하는 것도 민간인의 의무였다.[23] Jonathan P. Roth, The Logistics of the Roman Army at War[24] 상술했지만 반드시 '약탈'을 뜻하지는 않는다. 침공군에 굴복한 취락에서의 합법적인(하지만 강제적인) 공출, 혹은 지중해와 중국 모두에서 빈번하게 이뤄진 지역 상업망을 통한 보급도 이에 해당한다.[25] Military Maxims of Napoleon[26] Supplying War: Logistics from Wallenstein to Patton. Martin van Creveld[27] Donald W. Engels, Alexander the Great and the Logistics of the Macedonian Army[28] Peter Green, Alexander of Macedon, 356–323 B.C.: A Historical Biography[29] Lukas de Blois, The Crisis of the Third Century A.D. In the Roman Empire: A Modern Myth?[30] 촉서 제갈량전. 목우 기록 바로 다음에는 군량이 부족해졌다는 말이 뒤따른다.[31] 촉서 제갈량전 주석 위서[32] 이종봉. 임진왜란시기 일본의 병량미 보급과 그 정책[33] 이종봉. 임진왜란시기 일본의 병량미 보급과 그 정책[34] 물론 이때의 승전이 오히려 패착이 되어 훗날 독일은 초반 수송, 동원, 치중능력을 맹신하고 무리한 전략을 세우다가 몰락했다.[35] 심지어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러일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완공된다.[36]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병사들이 고향에 보낸 편지중에는 고체 알코올을 보내달라는 편지도 있다. 연기가 나지 않기에 포병으로부터 안전하고 그나마 음식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37] 사실, 이전에도 데미얀스크 전투 당시 고립된 아군에게 공중 수송을 통한 보급이 성공한 적이 있었기에 공중 수송이 가능할거라 믿은 독일군 상층부와 괴링의 판단도 완전히 뜬금없는 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데미얀스크에서 포위된 부대는 다 합쳐야 기껏해야 군단 하나 정도였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아예 야전군-집단군급 부대가 통째로 갇혀 있었으니 보급해야 되는 물자의 양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놓친 것이다.[38] 수송기의 가동률, 악천후, 행정적 실수, 적 공군 및 방공부대의 위협, 그리고 이착륙 가능한 비행장의 부족으로 보급에 성공한 보급품은 요구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39] 이는 일본군이 병참과 물자 부족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던 러일전쟁의 영향 때문이었다. 실제로 러일전쟁 와중에 벌어진 봉천 회전에서 일본군은 가지고 있던 포탄을 거의 다 소모해 버려 현지의 일본군 수뇌부가 일본 정부에 보내는 전문에다 "전선에 군수품이 모자라서 더이상 전투를 하기 힘들다. 그러니 휴전을 하든지 보급을 주든지 혹은 전쟁 좀 빨리 끝내달라." 라고 호소할 만큼 물자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미완성으로 인해 무기와 물자의 보급이 어려웠고 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전쟁을 하기가 어렵다 보니 일본과 종전협상을 맺어 일본측이 승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군 수뇌부는 러일전쟁의 승리에 계속 도취한 상태에서 물자와 병참이 부족하더라도 단기결전에 승리하여 전쟁을 끝내면 된다라는 집착에 매달렸다.[40] 당시 일본군이 보급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느냐 하면, "보급병 따위가 군인이라면 나비나 잠자리로 쳐야겠다."라는 말이 버젓이 돌아다닐 정도로 보급을 가볍게 여겼다.[41] 군용 전술기는 당연하고 전차와 자동차, 심지어 오토바이 연료까지 죄다 항공유로 통일했다.[42] 우리가 몇 시 몇 분에 한 대 있다고 하는 게 한 편성이다.[43] 항구로써의 입지가 좋다 -> 물자와 사람이 모이며 도시가 커진다 -> 상업과 교통이 발달한다 -> 각종 산업들이 발달한다 -> 물자와 사람이 모인다.[57][44] 사실 이건 나름 합당한 이유였다. 독일은 철로나 자력주행으로 옮길수 있지만, 미국은 크레인으로 배에 실고 해로로 운송하고 또 크레인으로 내려야되니 무게에 제한이 있을수 밖에 없고 안그래도 많은 물자를 운송하느라 물류 시스템에 과부하 걸린 상태에서 다른 탄종을 사용하는 전차를 옮기면 더더욱 과부하가 걸릴테니.[45] 때문에 가솔린 엔진이 일반적인 오토바이지만 미군의 군용 바이크는 디젤 엔진을 사용한다.[46] 다른 종류의 연료를 분류, 저장하는 비용, 연료간의 서로 다른 취급 방법을 훈련 및 관리하는 비용 등. 미국은 인건비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업무효율성 증대로 인건비를 아끼는 조치를 통해 많은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47] 사실 우방국이어도 치안이 좋지 못하다는 등의 위험 요소가 있으면 군함만 딸랑 보내지는 않고 경비대원들을 바리바리 싣고 가서 항구에 전개해놓는다.[48] 과거에는 독립된 병과였으나, 현재는 항공무기정비 병과와 합쳐져 군수 병과를 구성하는 특기이다.[49] 장비물자보급관리, 수리부속보급관리, 항공운수, 수송운영,[50] 장비물자보급, 유류보급, 급양, 항공운수, 일반차량운전, 특수차량운전, 방공포차량운전, 차량정비[51] 보급병이 썰 풀면서 낄낄대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52] 보릿고개가 남아있던 1970년대의 경우 매일 수통 2개에 쌀을 가득 채워 퇴근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물론 그 쌀은 병사들 것을 착복한 것이다. 요즘은 이런 일이 사실상 없는 이유도 간단한데, 고작 보급품 따위를 착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봉급이 충분해서다. 처벌은 큰데 이득은 적다.[53] 일정 수준 이상의 운송차량은 전시에 당연히 징발된다.[54] 당시 프리드리히 5세와의 거래실패로 사보이아 공국이 회군을 명령하고 지원을 끊어버리자 용병대를 데리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교측이 기용할 수 있던 병력 중에서 가장 쓸 만했던 만스펠트의 용병대가 철수하자 신교측은 구교측을 막을 수 없었고 프리드리히 5세는 본거지를 잃고 처가가 있는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55] 물론 나폴레옹이 크게 패배한 러시아 원정 당시 보급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병참장관에게 충분한 식량과 건초, 그리고 이를 나를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였고, 여기에 12,000프랑 - 한화로 1억이 넘는 상금까지 걸면서 최초로 병조림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이 준비한 어떤 전역보다 방대한 보급체계가 갖춰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러한 역대급 준비로도 부족했다는 것이었다.[56] 이 말은 병참 외에도 경계, 배식에도 쓰이는 말이다. 다만 어느 대대식당에서는 장수 대신 병사란 단어를 사용하여 크게 써붙여놓자 '그럼 배식 담당 간부는 책임없나' 하는 식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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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대표적으로 2차세계대전 서부전선과 태평양 전쟁. 노르망디 상륙 성공 후 영미연합군의 진격루트의 목적지는 독일과 항구 둘로 양분 되어 있다고 과언이 아니며, 태평양 전쟁사는 항구와 비행장 확보를 위한 미군의 상륙과 그것을 저지코자 하는 일본군의 전투에 대한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