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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0:01:11

캬흐타 조약


1. 개요2. 배경3. 내용4. 의의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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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27년 8월 23일시베리아의 도시 캬흐타(음역:흡극도)에서 청나라러시아 제국 사이에 맺은 국경 조약이다.

앞서 맺어진 네르친스크 조약과 마찬가지로 원본은 한문을 배제하고 러시아어, 라틴어, 만주어로만 작성되었다. 1915년 6월 중화민국, 복드 칸국, 러시아 제국 3자 간에 체결된 캬흐타 협정과는 별개이니 유의할 것.

2. 배경

러시아의 진출 이전에 북아시아 지역은 소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국가권력의 공백지나 다름없었고 중국도 전통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복자들의 갑툭튀로 졸지에 전방이 되었고, 이후 청나라와 러시아는 나선정벌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충돌한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아무르 강 인근 지역의 국경선을 확정한다.

이후, 지금의 몽골 역시 당시에는 청나라 영토였기 때문에 몽골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선을 정하기 위해 추가로 1727년 캬흐타에서 조약을 맺었다.

3. 내용

조약의 내용은 국경선을 확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간에 교역의 기준을 정했다.

4. 의의

네르친스크 조약과 마찬가지로 이 때 정한 국경선이 대부분 지금의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선이 되었다. 이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열강의 동네북이 될 때까지는 러시아와 큰 충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5. 여담

캬흐타 조약의 청측 대표였던 정황기 만주 출신 이번원 관료 툴리션(Tulišen)은 강희제 시절부터 활동한 러시아통으로, 툴리션이 강희 51년(1712년)부터 54년까지 만 3년에 조금 못 미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몽골 사막, 초원과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카스피해 북쪽에 자리잡은 토르구트부의 아유키 한을 만나 강희제의 칙서를 전하러 갔다오며 쓴 여행기인 이역록은 네르친스크-캬흐타 체제 사이 청몽러의 정세를 파악하는데에 좋은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툴리션은 캬흐타 조약 체결 후 옹정제에게 숙청되어 목이 달아날 뻔 했는데, 아무래도 옹정제가 부담스러운 외숙부인 롱코도를 숙청하면서 마찬가지로 이번원 업무를 보며 교류하던 툴리션에게까지 화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가택연금되어 사망한 롱코도와 달리 툴리션은 곧 사면을 받았고, 훗날 건륭제가 즉위한 후 다시금 공로를 인정받으며 말년을 평안히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