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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코리안시리즈 | 1978년 코리안시리즈 | 1979년 코리안시리즈 | 1980년 코리안시리즈 | 1981년 코리안시리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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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실업야구에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도입한 토너먼트 결승전으로 현재의 KBO 한국시리즈의 전신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한국야구사 최초의 포스트시즌이라고 볼 수 있는 경기로 실업야구 흥행을 위해 일본프로야구의 제도를 가지고 온 것이 시초다.역대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를 설명한 관련 글이 있으니 참고.
2. 경기 방식 및 진행
한국실업야구는 연고지가 없었던 만큼 모든 대회를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했다.- 1977년: 실업야구 연맹에서 프로화를 대비해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에서 시행했던 전후기 제도를 도입했고[1] 실업리그와 금융리그가 모두 전기리그 후기리그를 가지며 그중 실업리그[2]의 상위 2개팀, 금융리그[3]의 상위 2개팀이 포스트시즌을 가져 우승팀을 가리며 우승하면 1차리그 우승팀이 된다. 이렇게 전기 1차리그, 전기 2차리그 우승팀이 맞붙어서 전기리그 최종우승팀이 되고 코리안시리즈에 진출, 후기리그도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해서 전기리그 최종우승팀 VS 후기리그 최종우승팀이 맞붙는 코리안시리즈를 갖도록 했다.
- 1978년: 기업은행 야구단이 해체되고 포항제철 야구단이 창단되어 금융리그와 실업리그간의 균형이 맞지 않아 풀리그로 전기리그 1차~2차 우승, 준우승팀과 후기리그 1차~2차 우승, 준우승팀이 결승풀리그를 진행해 우승을 가린다.
- 1979년: 전기리그, 후기리그제도와 결승풀리그제도를 폐지하고 1차리그~4차리그까지 진행하며 각리그 우승, 준우승팀이 코리안시리즈를 진행하도록 변경되었다. 8강, 4강, 결승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팀수가 맞지 않을 경우 우승을 많이 한 팀이 부전승 팀을 선정했다. 실제로 이 부전승 혜택은 2차리그, 3차리그 우승으로 2회 우승을 기록한 상무 야구단[4]이 부여받아 롯데와 농협의 승자와 붙었다.
- 1980년: 1979년에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롯데 자이언트와 포항제철 야구단이 결승에 올라가자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이런 논란을 막기위해 전기리그 1~4차리그를 진행하고 각 리그 우승팀끼리 맞붙는 전기리그 통합우승전을 치러 전기리그 우승팀이 코리안시리즈 직행을 했고, 후기리그 1~4차리그 우승팀끼리 맞붙는 후기리그 통합우승전을 치러 후기리그 우승팀을 뽑은후 코리안시리즈로 진출하게 변경되었다.
- 1981년: 전기와 후기리그가 각각 1~2차리그만 진행되도록 간소화 되었고 이 1~2차리그 통합 승률이 높은 팀이 코리안시리즈로 진출하게 되었다. 전기리그 1~2차리그 통합 1위팀인 롯데 자이언트와 후기리그 1~2차리그 통합 1위팀인 육군 경리단이 진출했다.
3. 역대 대회
3.1. 연도별 우승 구단 및 전적
연도 | 우승 | 감독 | 성적 | 준우승 | 감독 | 성적 | MVP |
1977년 코리안시리즈 | 육군 경리단 | 심말용[5] | 3승 1무 1패 | 한국화장품 야구단 | 유백만 | 1승 1무 3패 | 이선희(육군 경리단) |
1978년 코리안시리즈 | 육군 경리단 | 심말용 | 3승[6] | 성무 | 2승 1패 | 이선희(육군 경리단) | |
1979년 코리안시리즈 | 롯데 자이언트 | 박영길 | 1승[7] | 포항제철 야구단 | 허정규 | 1패 | 이해창(롯데 자이언트) |
1980년 코리안시리즈 | 육군 경리단 | 심말용 | 3승 1무 | 성무 야구단 | 1무 3패 | 권영호(육군 경리단) | |
1981년 코리안시리즈 | 롯데 자이언트 | 박영길 | 3승 1무 2패 | 육군 경리단 | 심말용 | 2승 1무 3패 | 최동원(롯데 자이언트) |
3.2. 구단별 우승, 대회 참가
우승 | ||
육군 경리단 | 3회 | 1977, 1978, 1980 |
롯데 자이언트 | 2회 | 1979, 1981 |
코리안시리즈 참가 | ||
육군 경리단 | 4회 | 1977, 1978, 1980, 1981 |
롯데 자이언트 | 2회 | 1979,1981 |
농협 야구단 | 1회 | 1979 |
성무 야구단 | 1회 | 1980 |
상업은행 야구단 | 1회 | 1979 |
포항제철 야구단 | 1회 | 1979 |
한국전력공사 야구단 | 1회 | 1979 |
한국화장품 야구단 | 1회 | 1977 |
3.3. 여담
-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 최다 우승팀은 당대 최강의 팀인 육군경리단이 3회 우승으로 기록했으며 최다 진출팀도 육군경리단이 4회 진출로 최다.
- 최다 진출팀인 육군경리단의 4회 진출은 심말용 감독이 이뤄냈다.
- 롯데 자이언트는 2회 진출에 2회 우승을 달성했다.
4. 관련 문서
[1] 1973년 ~ 1982년까지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보다 떨어지는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전후기 제도를 도입해 리그 우승팀을 가렸다.[2] 롯데 자이언트, 한국화장품 야구단, 한국전력공사 야구단, 철도청 야구단, 육군 경리단, 성무 야구단. 이상 6팀.[3] 한일은행 야구단, 기업은행 야구단, 상업은행 야구단, 제일은행 야구단, 농협 야구단. 이상 5개팀[4] 공군 야구단으로 이후 육군 경리단에 흡수되었다.[5] 1939~2007. 경남고에서 활약했으며 대학교 생활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ROTC 2기생으로 임관해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6] 풀리그 토너먼트 제였다.[7] 단판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