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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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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폭행 논란3. 더티 플레이 논란

1. 개요

코비 브라이언트와 관련된 사건 사고 및 논란을 다룬 문서.

2. 성폭행 논란

코비에게는 큰 흑역사가 있었는데 2003년 덴버에서 케이틀린 페이버(Katelyn Faber)라는 백인 여성이 코비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소하여 경찰에 체포된 것. 코비는 혐의를 전면부인했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맞섰다. 코비의 변호인단은 해당 여성의 남성 편력과 스스로 번복한 진술, 그리고 정신분열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으나 피해자 여성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로 증언을 거부해서 형사 소송은 기각됐으며, 비공개로 합의함으로써 민사 소송도 마무리지었다.

사건 바로 다음 날 실시된 DNA 검사 결과에 의하면 사건이 일어난 뒤 얼마 있지 않아 페이버가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으며, 이는 그녀와 그녀의 변호인이 처음 주장하던 것과 상반되는 사실이다. 그녀가 코비와 성관계를 가졌던 날 입은 보라색 G스트링 속옷에서 코비가 아닌 다른 남성의 정액이 검출되었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입었던 노란색 팬티에서도 또 다른 남성의 정액이 다시 한번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이틀간 치러진 청문회에 유일한 증인으로 참석한 포렌식 전문가 Dr. Elizabeth A. Johnson에 의하면 그녀가 주장한 것처럼 코비를 만나기 전 성관계를 가졌을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고 말했으며, 이유인즉슨 만약 그녀의 주장대로 코비와 만나기 전 해당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코비의 몸이나 옷에서 그 남자의 DNA 샘플이 검출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남성의 DNA는 코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코비가 페이버를 성폭행하지 않았다는 정황상 증거도 아주 많은 편이다. NBC 뉴스의 의하면 페이버는 코비를 고소하기 3일 전에 열린 한 파티에서 그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으며, 당시 파티에 참석했던 Steve Evancho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파티를 즐겼다고 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고 했다. 그녀의 수상한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추후에 공개된 법정 서류들의 의하면 그녀는 코비를 고소한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친구들에게 피해보상금으로 가슴 확대 수술을 하고, 또한 반려동물로 코알라를 사겠다고 자랑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송이 기각되기 전 법정에 증인으로 참석 예정이었던 페이버의 옛 친구 Laie Weatherwax에 의하면 페이버는 오랫동안 유명 연예인과 잠자리를 가질 계획을 세웠으며, 특히 래퍼 에미넴과 성관계를 가진 뒤 돈을 받으려고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다고 말했다. 당시에 콜로라도 주 베일이란 도시에서 에미넴의 연말 공연이 있었으며, 그녀는 에미넴이 있는 호텔에 일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그의 방 번호를 알아낸 뒤 그쪽으로 유인할 계획이었던 것.

이러한 직접적, 정황적 증거들을 고려해보면 페이버는 진정한 강간 피해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꽃뱀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일 알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을 수도, 파티에 참석해서 그 일에 대해 자랑하고 다녔을 수도, 그리고 친구들에게 돈 자랑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코비가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이후 대대적인 추모가 이루어지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워싱턴포스트의 한 여기자는 트위터로 위 기사를 링크했고 또다시 팬들에 의한 신상유출과 살해협박 등을 겪으며 정직 처분을 받고야 말았다(...) 워싱턴포스트 노조는 당연히 즉각 반발했으며 언론사로서 어떤 인물에게 인기가 있든 없든 모든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즈는 한술 더떠 다음날 장문의 칼럼으로 이 사건에서 코비가 죄를 인정하기보단 얼마나 이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괴롭게 했는지, 또 이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 추락을 극복하기 위해 "블랙 맘바"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마케팅을 한 것 등을 비판하고 있다.

이 일로 코비는 자신을 후원하던 스폰서와의 계약이 해지되었고 한동안 엄청난 야유를 받아야만 했었다. 특히나 덴버에서는 더 심했었다. 유니폼 판매도 급락해 버렸다. 이 때문에 팬들 상당수가 그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었다.

종합하자면 해당 사건에서 코비는 부인을 놔두고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점[1], 이후 동료들을 겨냥한 실언으로 인한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순 있지만, 성폭행이라고 법정에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를 성폭행범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3. 더티 플레이 논란

팔꿈치 사용 논란이 있었다.

특히 셰인 배티에한테 시전했던 니킥+엘보 콤보는 "경기 매너 좋은 코비"의 반박영상으로 종종 등판했다. 사실, 코비의 매너가 좋았다는 것은 존 스탁턴[2] 마찬가지로 대외 이미지가 좋았던 것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실제로 외신이 뽑은 더티 플레이어 리스트에 가넷과 함께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 선수였으며, 이 점은 그가 팀의 중심이 된 2000년대 중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동료 샤킬 오닐의 엘보우 문제가 커 비교적 묻힌 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초창기 밀레니엄 레이커스 시절까지는 철썩 달라붙는 수비수를 떨쳐낸 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팔꿈치를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사용했다.[3]

때문에 잔뜩 쌓여있던 안티들에게 더럽다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다. 시끌시끌했던 새크라멘토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특히 잘 나타냈는데, 마이크 비비가 팔꿈치에 얻어맞고 피를 철철 흘리는 상황에서도 파울 한번 불리지 않아 가뜩이나 편파판정으로 말많았던 시리즈에 기름을 부었다. 거대한 몸뚱이의 샤크가 팔꿈치를 휘둘렀거나 자유투라인에서 슬금슬금 벗어나 던진 것이 더 눈에 띄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언급 되었을 뿐이다.

추가로 할리우드 액션에 대한 논란도 존재했다. 경력 후기에 이르러 문제가 된 것은 슛동작 이후 파울을 당한 것처럼 팔을 휘두른 동작이었는데, 이건 사실 다른 선수들도 하는 거지만[4] 코비의 경우 너무 자주해버린 데다가 그 동작이 지나치게 커 상대선수들이 맞아서 다친 경우까지 있었다. 2007년에는 이걸 하다가 마누 지노빌리의 머리에 강하게 맞았고 피까지 났다. 이후 NBA에서 1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1] 간혹 이 부분까지 부인하는 팬들이 있는데, 코비 측은 재판 내내 합의에 의한 성관계란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저 여성이 꽃뱀이라도 해도 코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후 부인 바네사가 용서하고 넘어갔으니 망정이지...[2] 존 스탁턴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좋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선수생활 내내 사생활 관련 잡음이 한반도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선수인데다 슈퍼스타인데도 파이널에 미니밴을 타고 와 가족들을 내려줄 정도 가정적이었다. 그러나 코트에서는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 굉장히 거칠고 더티하게 플레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트래쉬토킹이나 싸움을 하지 않고 조용히 더티하게 플레이하는 선수이고, 동료이자 마찬가지로 조용한 더티플레이어인 말론처럼 다른 선수들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 일은 없었기에 묻힌 부분.[3] 슬램덩크의 북산대 풍전전 서태웅의 눈을 가격하는 남훈의 모션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4] 일종의 할리우드 액션, 이상민의 "만세"를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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