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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02:54:39

코어4

파일:코어4.jpg
The Core four
1. 개요2. 멤버3. 결성 과정4. 활약
4.1. 1996 시즌4.2. 1997 시즌4.3. 1998 시즌4.4. 1999 시즌4.5. 2000 시즌4.6. 2001 시즌4.7. 2002 시즌 4.8. 2003 시즌4.9. 해체4.10. 재결합, 그리고 5번째 우승4.11. 황혼기

1. 개요

코어 4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뉴욕 양키스의 6번의 월드시리즈 진출 중 4번의 우승을 이끈 뉴욕 양키스의 왕조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네 명의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네 선수 모두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구단 내 명예의 전당인 양키스 모뉴먼트 파크에도 이름을 올렸다.

2.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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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

3. 결성 과정

1981년 월드 시리즈 이후 뉴욕 양키스는 1994년까지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였고, 1989~1992년에는 4시즌동안 승률 5할을 단 한 번도 넘기지 못하는 양키스 프랜차이즈 사상 최악의 암흑기에 빠지게 되자 1992년에 부임한 벅 쇼월터 감독의 지도 하에 리빌딩 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코어 4의 일원들인 데릭 지터[1], 앤디 페티트[2], 호르헤 포사다[3]를 지명했으며 마리아노 리베라를 국제 아마추어 계약[4]을 통해 영입하며 뉴욕 역사상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들을 얻게 되었다.

4. 활약

1990년대 초 뉴욕 양키스의 팜에서 성장하던 그들은 1994년 트리플 A에서 처음으로 함께 뛰며 실력을 갈고 닦아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95년 넷 모두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룰 수 있었다. 앤디 페디트는 선발진에 합류해 ERA 4.17, 12승을 거두며 만족스러운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마리아노 리베라는 선발 투수로 데뷔해 19경기 ERA 5.51이라는 썩 좋지는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데릭 지터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며 51타석 .250로 가능성 정도만 보여주었고, 호르헤 포사다는 9월에 데뷔해 한 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리베라, 페디트와 함께 1995 ALDS 명단에 올랐다.

4.1. 1996 시즌

1996년 양키스의 리빌딩을 주도했던 쇼월터 감독이 1995 ALDS에서 광탈을 당한 후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에 의해 경질되며 조 토레 감독이 부임하는데, 그렇게 코어 4는 정식으로 메이저 무대에서 날개를 피게 된다.

데릭 지터는 이해 기량이 만개해 타율 0.314에 183안타 10홈런 78타점이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호르헤 포사다는 당시 양키스의 주전 포수였던 조 지라디의 벽 때문에 8경기만 출장했지만 처음 선발 출장해 로켓의 공을 받는 등 다음 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앤디 페디트는 3.87의 평자와 21승과 221이닝을 거두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고투저가 심했던 시즌이라 사이 영 상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였으나 토론토 블루제이스팻 헨트겐에게 10표 차로 밀려 아쉽게 2위를 차지한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1995 디비전 시리즈에서 불펜으로의 가능성을 보고는 셋업맨으로 전향, 이후 순수 불펜으로서 100이닝을 넘게 던지며 ERA 2.09를 기록해 사이 영 상 투표 3위에 올랐고 셋업맨 중 사이 영 상 투표에서 1위 표를 받은 유일한 투수가 되었다.

이러한 코어 4의 활약에 힘입어 뉴욕 양키스는 포스트 시즌 원정 8연승을 거두며 길고도 길었던 뉴욕 양키스의 암흑기를 끝내는 1996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룩하게 되었다.

4.2. 1997 시즌

작년의 WS 우승 후 코어4 모두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룩하게 되는데, 작년 신인왕을 수상한 데릭 지터는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씹어먹어버리며 양키스의 리드오프 타자가 되어 .291의 타율, 10홈런, 70타점, 116득점, 190안타를 기록하였고, 1997 ALDS에서 멀티 홈런을 때리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호르헤 포사다 또한 백업으로 60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250, OPS .768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앤디 페디트는 2.88의 방어율과 18승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1997 ALDS에서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4홈런을 맞으며 탈탈 털렸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무리로 맞게 되는 첫 시즌. 시즌 초에는 3블론을 저지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조 토레의 신임으로 1.88의 평균자책점과 43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최상급의 마무리로 도약하게 된다. 그러나 1997 ALDS 4차전에서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동점 홈런을 맞으며 털린 것은 흠. 결국 이 시즌의 양키스는 1995년에 이어 다시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4.3. 1998 시즌

드디어 모두가 풀타임을 뛰는 시즌이 되었다.

호르헤 포사다는 118경기에 출전하여 17홈런을 치면서 OPS .824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장타력을 뽐냈으며 데이비드 웰스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한다.

데릭 지터 역시 첫 올스타 선발은 물론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 3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한다. 1998 ALCS에서는 타율이 0.176에 그쳤으나,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0.353을 기록하며 양키스의 우승에 기여했다.

앤디 페티트는 16승을 기록하며 데이비드 콘의 뒤를 받치는 2선발로 활약한다. 페티트 역시 1998 ALCS 3차전에 등판해 홈런 4개를 허용하며 부진했지만 시리즈를 결정 짓는 1998 월드 시리즈 4차전에 등판해 7과 1/3 이닝 무실점이라는 엄청난 호투를 펼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한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신을 대표하는 구종인 커터를 장착하면서 철벽 마무리에 등극하는데, 이 해에도 ERA 1.91에 36세이브를 달성하며 맹활약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13과 1/3 이닝을 던지며 6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대활약, 6세이브 중 3개는 1998 월드 시리즈에서 거둔 것이며 4차전에 등판해 뉴욕 양키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헹가래 투수가 된다.

4.4. 1999 시즌

데릭 지터는 A급을 넘어선 완전한 S급 선수로 도약하며 이 해 리그를 완전히 폭격하게 된다. 타율 .349, OPS .980, 219안타 24홈런 102타점, bWAR 8.0이라는 아름다운 스탯이 이 시즌 지터의 위대함을 대신 말해준다.

호르헤 포사다는 타율 .245, 12홈런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선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충분히 1인분은 하였다고 보아도 될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다.

앤디 페티트는 14승을 기록하긴 했으나 ERA가 4.70으로 훌쩍 치솟아버리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1999시즌부터가 사실상 MLB 타자들의 대약물시대 시작점이였기에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이 대거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 이것은 감안하도록 하자. 근데 페티트도 약쟁이다

그리고 마리아노 리베라는 상술한 대약물시대를 코웃음 쳐버리며 대활약을 펼친다. ERA 1.83에 무려 45세이브를 거두었으며, 이 해 허용한 피홈런은 단 2개. 1999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애틀랜타의 타선을 그대로 잠재워버리며 1승 2세이브를 기록하였고, 시리즈 MVP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4.5. 2000 시즌

데릭 지터는 장타가 줄긴 했지만 타율 .339에 OPS .896, 201안타를 기록하며 역시나 최고의 활약을 보였고, 이 기세를 포스트 시즌까지 이어가며 2000년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 시즌 코어 4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호르헤 포사다라고 말할 수 있다. 151경기에 출장하며 완전한 주전 포수 자리를 굳힌 것도 모자라 타율 .287, 28홈런 86타점에 OPS .943, fWAR 6.1을 기록하며 리그 최상급의 공격형 포수로 도약하였고, 시즌 종료 후 커리어 첫 실버 슬러거 수상의 영광까지 누리게 된다.

앤디 페티트는 204.2이닝을 소화하며 ERA 4.35, 19승을 기록해 지난 시즌보다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이 영 상 투표 5위에 올랐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ERA는 2.85로 지난 시즌에 비해 대폭 상승하였으나 36세이브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까지 든든하게 양키스의 뒷문을 지켰다.

이 시즌 역시 코어 4의 빼어난 활약에 힘입어 WS 우승을 차지하였고, 양키스는 마침내 3시즌 연속 월드 시리즈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어마무시한 대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4.6. 2001 시즌

데릭 지터는 이제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정규 시즌에서는 3할 타율에 20홈런을 기록하며 수준급의 모습을 보였고, 10월 31일에 열린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 김병현을 상대로 1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며 미스터 노벰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호르헤 포사다 또한 시즌 22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2년 연속 포수 부문 실버 슬러거 수상에 성공한다.

앤디 페티트는 200.2이닝 ERA 3.99, 15승을 기록하며 마이크 무시나로켓맨의 뒤를 받치는 든든한 3선발로 활약했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ERA 2.34에 50세이브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는 든든한 수호신의 위용을 떨쳤으나,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뼈아픈 WS 준우승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다. 다만 이걸 절대 리베라의 탓을 해서는 안되는게, 리베라는 WS 7차전 이전에 등판한 PS 10경기에서 15이닝동안 무실점 무블론이라는 압도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리베라가 없었으면 월드 시리즈 7차전까지 오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

이렇듯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매우 아쉽게 준우승의 고배를 마시면서 양키스의 포핏 도전은 아쉽게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4.7. 2002 시즌

2002 시즌은 데릭 지터의 성적 하락과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기간이 생기는 등 코어 4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양키스는 정규 시즌에서 103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002 ALDS에서 돌풍의 팀 애너하임 에인절스을 만나 1승 후 내리 3패를 당하며 충격적으로 탈락하게 된다.

4.8. 2003 시즌

데릭 지터는 부상으로 빠진 기간이 꽤 있었지만 다시 타율을 3할대로 끌어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호르헤 포사다는 커리어 첫 30홈런을 달성하며 무려 4년 연속으로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였다. 앤디 페티트는 21승을 거두며 활약하였고 마리아노 리베라ERA 1.66, 40세이브를 달성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갱신하였다.

코어 4가 다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양키스는 작년의 아픔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월드 시리즈 무대에 올랐으나, 이번엔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2승 1패로 리드를 선점한 후 또 내리 3연패를 당해버리며 다시 한번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4.9. 해체

2003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앤디 페티트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떠나며 전설을 써내려갔던 코어 4는 이대로 해체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4.10. 재결합, 그리고 5번째 우승

휴스턴과 3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앤디 페티트가 양키스로의 리턴을 선택하며 2007년 다시 한 번 코어 4가 기적적으로 뭉치게 되었다! 다시 힘을 합친 코어 4는 여전히 강력하였는데, 2007 시즌과 2008 시즌 모두 우승은 못했지만 네 명 다 여전히 녹슬지 않고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9년이 밝았다. 데릭 지터는 타율 .334을 기록함과 동시에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골드 글러브와 실버 슬러거를 동시에 수상하였고, 호르헤 포사다는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22홈런에 OPS .885를 기록하며 뛰어난 타격을 보여주었다. 앤디 페티트는 194.2이닝을 던지는 동안 ERA 4.16에 14승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이닝이팅 능력을 자랑했고, 마리아노 리베라는 ERA 1.76에 44세이브를 기록하며 여전히 양키스의 뒷문을 흔들림 없이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양키스는 정규 리그에선 103승 59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손쉽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미네소타 트윈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7년 전 아픔을 안겼던 LA 에인절스를 차례대로 박살내며 6년 만에 월드 시리즈 무대에 복귀하였다.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 월드 시리즈에서도 페티트가 2승, 리베라가 2세이브를 거두며 활약하였고, 지터는 시리즈 타율 .407을 기록하는 등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마침내 양키스는 9년 만에 왕좌 탈환에 성공한다. 양키스의 황금기를 상징했던 코어 4가 다시 뭉쳤기에 가능했던 우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4.11. 황혼기

2009년 WS 우승을 이뤄낸 시점에서 이미 코어 4 일원들의 나이는 30대 후반을 넘어 불혹을 바라보고 있었고, 코어 4의 남은 선수 생활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황혼기였다.

제일 먼저 커리어를 마무리 한 것은 호르헤 포사다. 2010년까지는 포수와 지명타자를 오가며 그냥저냥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2011년부터 공격과 수비 모두 퇴보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결국 2011 시즌이 종료된 후 은퇴를 선언하며 17년 동안의 양키스에서의 커리어를 마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유니폼을 벗은 건 앤디 페티트. 사실 2010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를 1년 쉬었기에 따지고 보면 포사다보다 먼저 은퇴를 하였으나, 2012 시즌 시작을 앞두고 뜬금없이 은퇴 번복 후 현역 복귀를 선언하며 다시 양키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012 시즌은 폼이 늦게 올라온데다 중간에 부상도 겹쳐 많이 등판하지는 못하였지만 12경기에서 5승 ERA 2.87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고, 다음 해인 2013 시즌은 185.1이닝 동안 ERA 3.74에 11승을 기록하며 이게 진짜 1년 쉬다 온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의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종료 후 이제는 진짜 은퇴할 것이라며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 통산 256승으로 페티트의 커리어는 마무리 되었다.

마리아노 리베라 또한 페티트와 같이 2013 시즌을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떠났다. 엄청난 것은 은퇴 시즌의 성적이 ERA 2.11, 세이브는 무려 44세이브를 기록했다. 정녕 43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 하지만 이미 600세이브라는 금자탑을 달성하였고, 통산 652세이브라는 앞으로 깨지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을 보유 중이기에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시즌이 종료되기 전 홈 최종전서 열린 은퇴식에서 리베라의 등번호인 42번이 영구 결번에 지정되었는데, 이는 현역 선수가 영구 결번에 지정된 최초의 사례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것은 데릭 지터. 페티트와 리베라가 은퇴하고 1년이 지난 2014년에 은퇴하였다. 2013 시즌을 부상으로 인해 몽땅 날려버리고 그 여파로 인해 2014 시즌의 활약도 그닥 좋지 못했으나, 20년 동안 양키스를 위해 헌신한 지터에게 양키스 팬들과 메이저리그의 모든 팬들은 떠나는 그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리베라와 동일하게 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등번호인 2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이후 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마지막까지 뉴욕의 연인답게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하였다.


[1] 1992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코어 4의 멤버들 중 유일하게 입단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선수이다.[2] 1990년 신인 드래프트 22라운드 지명. 22라운드라는 숫자만 보아도 알겠지만 완전히 하위 라운드에서 뽑힌 선수이다. 별 기대 없이 긁어본 복권이 대박이 터진 셈.[3] 1990년 신인 드래프트 24라운드 지명. 페티트보다 2라운드 늦게 뽑혔다. 역시나 하위 라운드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4] 리베라 역시 입단 당시 기대치는 제로였다. 입단 계약금이 2000달러였으니 여기서 설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