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sterdamsche Football Club Ajax NV | ||
이름 | 키키 무삼파 Kiki Musampa | |
본명 | 키지토 무삼파 Kizito "Kiki" Musampa | |
출생 | 1977년 7월 20일 ([age(1977-07-20)]세) | |
자이르 킨샤사 | ||
국적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 [[콩고민주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 체중 76kg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코치 | |
소속 | <colbgcolor=#ffffff><colcolor=#d50032> 선수 | AFC 아약스 (1994~1997)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97~1999) 말라가 CF (1999~200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3~2006) → 맨체스터 시티 (2005~2006 / 임대) 트라브존스포르 (2006~2007) AZ 알크마르 (2007) FC 서울 (2008) 빌럼 II (2009) 뉴 암스테르담 FC (2009~2013) SV NVC (2013~2017) CTO'70 (2017~2019) |
지도자 | 알메러 시티 FC (2013~2016 / 감독 ) 알메러 시티 FC (2016~2017 / U-19 감독 ) FC 폴렌담 (2020~2021 / U-18 감독 ) FC 폴렌담 (2021~2023 / U-21 감독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23~2024 / U-21 부수석 코치 ) AFC 아약스 (2024~ / U-19 부수석 코치 ) | |
국가대표 | 없음 | |
SNS | ||
K리그 등록명 | 무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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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축구 지도자. 현재 AFC 아약스 U-19 팀의 부수석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보유한 채로 K리그에서 활약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선수였다.[1]
2. 선수 경력
믿고 쓰는 아약스 유스 출신으로, 1994년 11월 30일 FC 도르드레흐트와의 KNVB 베이커 경기에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로는 주로 유스 팀에서 뛰었고 1군 출전 기록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이 때 잠깐이나마 UEFA 챔피언스 리그 명단에 들었던 덕에 아약스가 1994-95 UCL 우승에 성공하면서 무삼파도 데뷔 첫 시즌부터 경력에 우승 한 줄을 추가한다.아약스 시절의 키키 무삼파 |
1996-97시즌에는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모든 대회를 통틀어 32경기 5골 1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윙어로 주로 나섰던 지난 시즌들과 달리 이 시즌부터는 중앙에서의 출전 시간을 늘려나간 점이 특징. 다만 아약스는 리그에서 4위에 그쳤고, UCL에서는 준결승까지 가는 등 분전했으나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유벤투스를 상대로 합산 스코어 2:6으로 완파당하며 이번에도 우승은 물거품이 됐다.
1997-98시즌을 앞두고 무삼파는 리그 앙의 명문 구단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하며 해외 무대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보르도에서 무삼파는 2시즌 연속해서 누적 출전 시간이 시즌 당 1,000분을 간신히 넘길 정도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199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말라가 CF로 다시 이적했다. 말라가에서도 첫 2시즌 동안에는 합쳐서 1,000분 밖에 나서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1-02시즌에 드디어 각성하며 리그에서만 37경기 9골 2도움을 기록해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이어진 2002-03시즌에는 리그 개막전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전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끄는 등 기분 좋게 시즌을 출발했고, 전반기에만 8골을 몰아 넣는 득점력을 발휘하며 단숨의 말라가의 에이스급 자원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도움만 간신히 한 개를 추가한 것이 함정... UEFA컵에서는 팀의 8강행에 힘을 보탰으나 보아비스타 FC와의 8강전에서 말라가는 충격의 역전패[2]를 당하며 허망하게 탈락했다. 그나마 UEFA 인터토토 컵에서는 우승을 달성했고, 시즌 종합 52경기 9골 5도움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접근해 300만 유로의 이적료로 무삼파를 영입한다. 승격 후 상위권 재도약을 노리던 아틀레티코는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을 선임하고 무삼파를 차세대 주전 자원으로 낙점하며 도약을 노렸지만, 무삼파는 리그와 컵을 합쳐 32경기 3골 1도움에 그치며 망해버리고 아틀레티코도 7위라는 애매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결국 2004-05시즌 무삼파는 알레띠에서 자리를 잃어 리그 6라운드 이후 선발로 아예 나서지 못했고, 교체로도 단 2경기 50분 만 소화하는 데 그쳤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시티 FC로 반 시즌 간 임대됐는데, 맨시티에서는 나름대로 핵심 미드필더로 남은 리그 14경기에 전부 출전하며 3골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모습에 2005-06시즌에도 임대를 연장해 시티에서 뛰었지만, 지난 시즌과 같은 수준의 경기력은 보이지 못하며 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31경기 1골을 기록했다.
시즌을 마치고 원소속팀 아틀레티코와의 계약이 만료된 무삼파는 쉬페르리그의 트라브존스포르에 입단한다. 그러나 2006-07시즌 전반기 내내 풀타임 출전이 1경기에 불과할 정도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후반기에는 교체로도 몇 경기 나오지 못하는 등 입지를 완전히 잃은 끝에 1년 만에 계약을 해지하고 FA로 풀렸다. 이후 PL 복귀를 노리며 몇몇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영입은 성사되지 않았고, 결국 네덜란드로 돌아가 알크마르 잔스트레이크에 합류해 훈련하다가 11월에 정식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5경기만 뛰고 2008년 시작과 함께 계약이 해지됐다.
FC 서울 오피셜 |
서울을 떠난 후 한동안 팀을 구하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빌럼 II에 입단하며 네덜란드 무대에 복귀했다. 이후 에레디비시에서 6경기(5선발)에 출전했으나 그렇게 인상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다시 팀을 떠났다. 이후로는 미국으로 건너가 세미프로 구단에서 뛰면서 프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고, 2013년부터 네덜란드 무대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했다.
3. 기록
- AFC 아약스 (1994~1997)
- 에레디비시: 1994-95, 1995-96
- 요한 크루이프 스할: 1994, 1995
- UEFA 챔피언스 리그: 1994-95
- UEFA 슈퍼컵: 1995
- 인터컨티넨탈컵: 1995
-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97~1999)
- 디비지옹 1: 1998-99
- 말라가 CF (1999~2003)
- UEFA 인터토토 컵: 2002
4. 여담
- 영입 당시에도 UCL 우승 경력이 있는 빅 리그 출신 선수가 K리그에 온다는 소식에 적잖게 화제가 됐는데, 무삼파가 아예 현역에서 은퇴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삼파의 이력에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 FC의 존재 때문에 이 영입이 다시금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알레띠와 시티 모두 역사가 깊은 것과는 별개로 무삼파가 뛰던 당시에는 비교적 위상이 높지 않던 상황이었고, 오히려 그 전에 뛰었던 지롱댕 드 보르도가 훨씬 강한 팀이었다.[3]
5. 관련 문서
[1] 물론 바로 밑에 나오듯 아약스가 빅이어를 차지한 1994-95 시즌에는 챔스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2]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1:0으로 이긴 뒤 원정 2차전에서도 리드를 잘 지키고 있었는데, 정규시간 종료를 10분도 안 남기고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승리가 날아갔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향했고, 말라가 키커 3명 중 2명이 실축하는 대참사가 벌어지며 1:4로 참패해 8강에서 탈락했다.[3] 아틀레티코는 충격의 강등 이후 간신히 다시 라리가로 승격하면서 이제야 팀을 좀 추스르고 있었고, 맨시티 역시 프리미어 리그에 복귀한 이후 여전히 하위권을 전전하던 상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더 높은 평가를 받던 보르도가 구단 운영 실패와 재정난 끝에 2024년 사실상 해체 상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