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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8 21:44:14

테피크 음보르야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테피크 음보르야
Tefik Mborja
파일:Tefik_Mborja_(portrait).jpg
본명 테피크 셀림 음보르야
Tefik Selim Mborja
출생 1891년 11월 6일
오스만 제국 모나스티르 빌라예트 음보르야
사망 1954년 7월 1일 (향년 62세)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 버렐 감옥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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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주프 카자지 (아들)
학력 로마 대학교 (법학 / 박사)
종교 종교
직업 정치인, 외교관
소속 알바니아 파시스트당
서명

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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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바니아의 정치인. 알바니아 파시스트당의 대표직을 역임하였다.

2. 생애

테피크 셀림 음보르야는 오스만 제국의 모나스티르 빌라예트 음보르야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있는 튀르키예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으며 이스탄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로마 대학교의 법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조구 1세를 반대하고 판 놀리를 지지했다. 1921년 알바니아 의회에서 코르처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그는 로마 주재 알바니아 외교 대표로 파견되어 1925년까지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갈레아초 치아노 가문과 친분을 맺었다. 조구가 알바니아에 군대를 끌고 들어와 판 놀리를 쫓아내고 대통령에 오르자 1925년부터 1928년까지 그는 이탈리아 왕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28년, 그는 티라나로 돌아와 외무부에서 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다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한 후, 알바니아 파시스트당이 창설되면서 그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 의해 당의 총서기로 임명되었다.

1944년 12월, 알바니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체포된 그는 1945년 프란베라 특별 법원에서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독살되어 1954년에 사망했다.

3. 활동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