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바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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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클럽 | ||||
14대 |
잉글랜드의 前 축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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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토니 바튼 Tony Barton | |
본명 | 앤서니 에드워드 바튼 Anthony Edward Barton | |
출생 | 1937년 4월 8일 | |
잉글랜드 서튼 | ||
사망 | 1993년 8월 20일 (항년 56세) | |
잉글랜드 햄프셔 | ||
국적 |
(
)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풀럼 FC (1954~1959) 노팅엄 포레스트 FC (1959~1961) 포츠머스 FC (1961~1967) |
감독 | 아스톤 빌라 FC (1982~1984) 노스햄튼 타운 FC (1984~1985) 포츠머스 FC (1991) |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인이다. 아스톤 빌라의 유러피언 컵 우승 당시 감독이다.2. 선수 경력
1954년 풀럼 FC에서 프로 데뷔했다. 49경기에서 8골이라는 시원찮은 성적으로 1959년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이적한다.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22경기에 출장해서 1골밖에 넣지 못하면서 두 시즌 만에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
포츠머스에서 130경기 34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포츠머스에서 은퇴 후 팀의 코칭스태프가 되었다.
3. 감독 경력
1980년 아스톤 빌라 FC의 코치진에 합류하면서 당시 빌라의 감독이였던 론 손더스의 수석 코치가 되었다. 빌라가 1981년에 리그를 우승하면서 1981-82 시즌 유러피언컵에 진출하였다. 8년간 팀을 이끌었던 론 손더스가 계약 문제로 1982년 2월 팀을 떠나면서, 수석 코치였던 그가 감독이 되었다. 1981-82 유러피언컵을 우승하고 1982년 슈퍼컵도 우승하면서 아스톤 빌라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되는 줄 알았으나,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1984년 경질되었다.이후 노샘프턴 타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1985년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1985년 사임했다. 이후 선수시절 친정팀인 포츠머스의 임시감독을 하다가 또 다시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4. 사망
1993년 8월 20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5. 여담
- 바이에른 뮌헨과의 유러피언컵 결승전 당일 그의 재킷에 그의 아내가 선물받은 레이스 조각을 꿰매주었다고 한다. 그 부적 덕분인지 빌라는 바이에른을 꺾고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는데, 경질 5일 후 그의 아들의 결혼식이 빌라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주변에서는 장소를 변경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바튼은 자신이 빌라에서 이룬 업적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에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고, 예정대로 빌라 파크에서 진행했다.
- 선수단의 단합과 팀 분위기 회복에 탁월했다고 한다. 선수들을 존중하면 그들도 자신을 존중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선수단을 이끌었고, 실제로도 선수단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 유럽 정상에 오른 몇 안되는 잉글랜드인 감독이지만, 언론 노출에서는 늘 조용하고 겸손한 인물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