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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9:46:59

토마스 칸타쿠지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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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3대 데스포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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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칸타쿠지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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ΘΩμάς Καντακουζenerνός}}}
출생 출생년 미상
미상
사망 1463년 7월 25일
오스만 제국 에디르네
재위 세르비아 데스포티스
1439년
아버지 테오도로스 칸타쿠지노스
어머니 헬레나 오우레시나 두카이나
형제 요르요스, 안드로니코스, 이리니, 엘레니 또는 테오도라
가문 칸타쿠지노스 가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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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3대 데스포티스.

2. 생애

동로마 제국 황제 마누일 2세의 삼촌으로 전해지는 테오도로스 칸타쿠지노스와 테살리아 통치자 요반 우로시 네바니치의 딸인 헬레나 오우레시나 두카이나의 아들이다. 형제로 요르요스[1], 안드로니코스[2], 이리니, 엘레니[3] 또는 테오도라[4]가 있었다.

1414년, 누이 이리니가 주라지 브란코비치와 결혼한 뒤 세르비아 전제군주국으로 넘어갔다. 1439년, 무라트 2세는 유럽에서 십자군이 재차 결성되어 장차 발칸 반도로 진격할 것이며, 세르비아 전제군주국도 여기에 가담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무라트 2세는 그 전에 세르비아를 정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60,00 ~ 70,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일으킨 뒤 한 분대를 노보 브르도로 파견했고, 자신은 주력군을 이끌고 그해 4월 말 또는 5월 초 스메데레보로 진군했다.

세르비아 데스포티스 주라지 브란코비치는 헝가리 왕국으로 망명했고, 그는 외조카 그르구르 브란코비치와 함께 데스포티스를 임시로 칭한 뒤 스메데레보 수비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3개월간의 공방전 끝에 식량이 바닥나자, 두 사람은 성이 함락되어 약탈과 학살에 직면하는 걸 막기 위해 성문을 개방하기로 했다. 그 후 오스만 제국에 끌려갔다가 1444년 헝가리 왕국과 오스만 제국간의 전쟁이 종식된 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세르비아 전제군주국 데스포티스 직위를 돌려받은 주라지 브란코비치에게 돌아갔다.

1446년 가을, 보스니아 왕국의 국왕 스테판 토마시는 스레브레니차를 점거한 뒤 주라지 브란코비치와 협의해 두 사람이 마을과 광산 수입을 나눠 가지기로 했다. 그러나 주라지는 내심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오스만 제국에 보스니아를 공격해달라고 청했다. 1448년 3월, 오스만군이 스테판 토마시의 영지를 침입해 약탈을 자행했다. 그해 9월 중순, 주라지의 처남 토마스 칸타쿠지노스는 토마시가 파견한 군대를 격파하고 스레브레니차를 공략했다. 1452년, 그는 또 다른 세르비아 군대를 이끌고 제타 공국을 침공했지만 9월 14일 보이보다 스테판 크르노예비치에게 격파되었다.

1456년 주라지 브란코비치가 사망한 뒤, 주라지의 막내아들 라자르 브란코비치가 데스포티스에 올랐다. 라자르가 어머니 이리니의 모든 권한을 박탈하고 그녀를 심하게 대하자, 토마스는 이리니, 그르구르, 마라와 함께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리니는 도중에 체포된 뒤 루드니크에서 곧 사망했다. 토마스는 오스만 제국령에 속한 에디르네에 지냈다. 1459년 8월 11일과 1462년 3월 18일에 라구사 공화국 법정에 소환되었지만, 이에 응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르비아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1463년 7월 25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1] 1390 ~ 1456/1459, 1456년 스메데레보 수비대 사령관을 맡아 오스만 제국 파디샤 메호메트 2세의 공세를 막아냈다.[2] ? ~ 1453,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대내무장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후 메호메트 2세에 의해 처형되었다.[3] 트라페준타 제국 마지막 황제 다비드의 두번쨰 황후[4] 트라페준타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 4세의 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