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토머스 카모이스 Thomas Camoys | |
생몰년도 | 1351년 ~ 1421년 3월 28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노퍽 주 그레센홀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서식스 주 트로턴 | |
아버지 | 존 카모이스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라티머 | |
아내 | 엘리자베스 루시, 엘리자베스 모티머 | |
자녀 | 리처드, 엘리스, 로저 | |
직위 | 카모이스 남작, 가터 기사단 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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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다.2. 생애
1351년경 잉글랜드 왕국 노퍽 주 그레센 홀에서 기사 존 카모이스와 코르비의 3대 라티머 남작 윌리엄 라티머의 딸인 엘리자베스 라티머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삼촌이자 카모이스 남작이었던 토머스 카모이스가 1372년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사망한 후 상속자가 되었고, 1383년부터 카모이스 남작으로서 의회에 출석했다. 1380년 우드스톡의 토머스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한 뒤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1383년 이전에 깃발 기사가 되었다. 1385년 스코틀랜드에서, 1386년에는 카스티야에서 곤트의 존의 원정에 참여했다.잉글랜드로 귀환한 뒤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의 총신이 되었지만, 1388년 우드스톡의 토머스와 더비 백작 볼링브로크의 헨리에게 축출되었다. 1399년 더비 백작이 반란을 일으켜 리처드 2세를 폐위하고 헨리 4세로 등극했을 때 즉시 충성을 맹세했다. 헨리 4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동안 장남 리처드가 기사 작위를 받았다. 1403년, 토머스 카모이스는 헨리 4세의 왕비가 될 나바르의 잔을 프랑스에서 잉글랜드로 행차하는 동안 경호했다. 이때 그는 이 임무와 관련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재무부로부터 100파운드를 받았다.
1401년 웨일스에서 발발한 오와인 글린두르의 봉기에 맞서 싸웠고, 1404년 프랑스군의 상륙 위협을 받고 있던 와이트 섬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음며, 1406년에는 프랑스 국왕과의 협상에 참여했다. 1415년 새 국왕 헨리 5세의 프랑스 원정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의회에 참석했고, 1415년 7월 31일 헨리 5세를 폐위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적발된 케임브리지 백작 코니스버러의 리처드, 제3대 스크루프 남작 헨리 르 스크루프, 히튼의 기사 토머스 그레이를 심판하는 위원회에 참여해 사형을 언도했다.
이후 헨리 5세의 프랑스 원정에 동행한 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좌익 후위대를 지휘해 승리에 일조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1416년 4월 23일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 1419년 프랑스에서 카스티야 함대의 습격에 대비해 군대를 모으는 임무를 맡았다. 1421년 3월 28일 서식스 주 트로턴에 사망해 그곳에 묻혔다.
3. 가족
- 엘리자베스 루시: 옥스퍼드셔의 그레이터 밀턴과 치셀햄튼의 영주 윌리엄 루시의 딸.
- 리처드 카모이스: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함. 손자 휴 카모이스가 카모이스 남작위를 계승했다.
- 앨리스 카모이스: 기사 레오널드 헤이스팅스의 부인. 장미 전쟁에서 에드워드 4세의 충신으로서 활약했으나 리처드 2세 집권 후 처형된 헤이스팅스 남작 윌리엄 헤이스팅스가 이 부부의 장남이다.
- 엘리자베스 모티머: 제3대 마치 백작 에드먼드 모티머의 딸. 헨리 '핫스퍼' 퍼시의 미망인.
- 로저 카모이스: 백년전쟁 최후의 전투인 보르도 공방전을 이끈 인물.